SF 중앙일보의 휴간에 따라 [정신건강에세이]를 더 이상 올리지 못합니다. 1992년 4월에 시작해서 만 26년간 매주 써서 1,307개의 에세이를 발표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를 발췌하여 8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한 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유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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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사도 없이’
“테스”의 작가로 유명한 토머스 하디(Thomas Hardy,1840-1928)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활약한 영국의 소설가며 시인이다. 그는 작품에서 자신 속에서 터져 나오는 열정과 주위의 압력사이에 놓인 주인공들의 고민을 즐겨 다뤘다.
하디는 도체스터 동쪽에 있는 스틴스퍼드 교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석공이었지만 어머니는 책을 많이 읽은 야심 있는 지식인이어서 스스로 아들을 공부시켰다. 그는 인생의 초반을 건축가로 성공해서 대영제국 건축가 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문단 진출은 시로 시작되었다. 시는 “내 첫사랑”이라고 했다. 그의 종교적 사상은 항상 심령주의와 불가지론 사이를 넘나들었다. 이들은 그의 초기 시작에 자주 반영되었다. 하디가 생각하고 또 작품에 반영시킨 심령은 우주를 지배하고 있지만 어떤 굳건한 의지가 아니라 변덕과 무관심 속에서 행한다고 보았다. 그는 유령이나 심령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독교 의식과 교회 예배에는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1867년 처음으로 소설에 손을 대었지만 출판사를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원고를 태워버렸다. 친구들의 끊임없는 권고로 인해 책 두 권 ‘필사적인 치료’ 와 ‘그린우드 나무 밑에서’를 출간했는데 그 다음 번 책 ‘한 쌍의 푸른 눈’(1873)에서야 작가의 이름을 밝혔다.
1878년 런던에서부터 시골로 돌아와서 ‘고향사람의 귀환’을 썼다. 1891년에 발표한 ‘테스’에서는 정절을 잃은 여성을 적극 옹호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상당한 비판을 받았고 처음에는 출판조차 거절되었다. 그는 이 작품에 부제로 ‘순수한 여인/성실한 기록’이라고 적었기 때문에 더더욱 당시 빅토리안 중류 지식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895년에 발표한 ‘애매한 주드’(Jude the Obscure)는 아주 노골적인 섹스 묘사로 인해 강한 비판을 당했는데 당시 일부 사람들은 이 작품을 Jude the Obscene(음란한 주드라고 할까)이라고 낮게 표현한 별명으로 불렀다. 또 이 책에서 결혼이란 전통적이나 낡은 관습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어떤 책방에서는 이 소설을 브라운 백에 넣어 판매했고 웨이크필드 대주교는 이 책을 태워버렸다고 유명해졌다. 이 두 책으로 인해 사회에서 크게 지탄을 받은 후로 그는 소설에서 손을 때고 시작에 전념했다.
그는 1870년 엠마 기포드란 고향 처녀를 만나 4년 후에 결혼했다. 그들의 생활이 항상 평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그녀가 ‘모호한 주드’는 남편의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밝히면서 그들 사이는 틀어졌었다. 그래도 그녀가 19ㅛ2년 사망하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는 엠마와 연관되었던 장소, 서로 사귀었던 곳 등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연작 시 ‘1912-13년의 시들’로 표현했다. 그는 1914년 자기보다 40년이나 어린 여인 플로렌스와 결혼했다. 그는 그녀를 1905년에 비서로 채용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마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뜬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힘이 들어 계속 시를 지으면서 상한 심령을 극복하려고 했다.
하디는 1927년 늑막염에 걸렸고 다음해에 이로 인해 사망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마지막 시를 엠마에게 바쳤다.
“손님이나 친구들, 친척들이 물러갔을 때/ 안에 아직 그대가 있을 듯하여/ 급히 그대 찾아 들어가 보면/ 한 마디 말도 없이 사라지는 것/ 그것은 그대의 버릇이었소.
또 어디라고 가령 시내라도/ 가려고 그대가 마음을 먹으면/ 어느새 그대는 가버렸소. 내 미처 그럴 줄 모르고/ 짐 꾸리는 것을 보기도 전에.
그래서 그대가 그 모양으로/ 어느새 영영 사라져 버렸구려./ 그대 생각엔 아마도/ 옛날처럼 이러한 가 보오./ ‘작별 인사는 해서 무얼 해요.”
(‘인사도 없이’ 전문)
그의 장례식은 1928년 1월 1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렸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시신은 스틴스포드에 묻히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그의 유언 집행인은 이 사원에 있는 ‘시인 코너’를 주장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지하실에는 대영제국의 이름을 날린 대 시인들을 묻는 코너가 있었다. 타협한 결과 그의 심장을 도려내어 스틴스포드에 엠마의 무덤 옆에 묻히고 나머지 부분은 화장되어 사원에 있는 시인 코너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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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중앙일보의 휴간에 따라 [정신건강에세이]를 더 이상 올리지 못합니다. 1992년 4월에 시작해서 만 26년간 매주 써서 1,307개의 에세이를 발표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를 발췌하여 8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한 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4월 18일 - 정유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