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3 21:49
2016. 2. 13. 엘림회
특강제목 : 제비(之)章
霽山 김세신(法博)
오늘 이처럼
반갑고 오랜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촉촉이 내리는 단비는
어김없이 기쁜 봄철이 돌아왔음을 알려주는
희망의 신호가 아닌가 싶습니다.
위와 같은 제목으로 서두를 꺼낸 것은
머지않아 우리들 어린 시절 귀에 익숙했던
봄의 전령사인 제비들의 지저귐도 다시 들을 수 있는
봄철의 기분을 한껏 이끌어내어 볼까 해서입니다.
이야기 내용은 '제비'와는 전혀 무관하지만,
재미삼아 다시 한 번
옛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해학(유모어)에 능했던
삶의 흔적들을 떠올려보기 위해서 랄까요?!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이 문장을 우리말 발음으로 계속해서 읽으면,
마치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와 같이 들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제비 章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 당시
공부(한문공부)를 시키기 위해
아동들에게 재미있도록 유인책을 썼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근엄했지만,
아동심리를 파악할 줄 아는
유모어나 위트에 능한 삶을 살았다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논의의 중점은
논어에 나오는 위의 문장 내용이 될 것입니다.
知之爲知之(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不知爲不知(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是知也(이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
이 글은 공자가 그의 제자를 상대로
진실로 '아는 것'에 대하여 교육한 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즉, 공자의 제자 중 자로(子路)라는 사람은
충직하고 용감하였으나, 하나 결점이라면
애써 아는 체하는 것이었다 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그를 교육시키는 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由, 誨女知之乎. 하고,
知之爲知之, 不知爲不之, 是知也. 하는데,
즉 이는 由(자로의 이름)야,
내가 너(女 = 汝)에게
아는 게(知之) 무엇인지 가르쳐 줄까(誨女知之乎)라고
타이르는 장면이 보인다.
이 문장은 論語 爲政篇 17章에 나옵니다.
여기서 爲政의 '政'은 바를 正 자와 통합니다.
따라서 위정은 '바르게 한다',
'바르게 잡는다'는 뜻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계속하여 논어 學而篇에서 공자는
不患人之不己知(남이 너를 몰라준다고 불만스러워(근심)하지 말고),
患不知人也(네가 남을 알지 못 함을 안타깝게 여겨라).
또 不患莫己知(네가 네 자신을, 알려고 해도, 알지 못 한다고 근심하지 말고),
求爲可知也(네 자신이 알 수 있는 것은 알려고 노력하라,
즉 네 자신을 알라!)고 제자를 타이르곤 했습니다.
이처럼 공자는 조용하면서도
제자들 교육에서 핵심을 잡아서
문답식으로 깨우치게 하는 교육을 시켰던 것입니다.
요즈음 세상에서 특히 우리나라를 보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식으로 지식을 과장 ·과시하여 글을 써야
유식자로 취급받으며
또 그런 사람을 우러러보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할 것인 바,
알다시피 학문(지식)이란 한이 없어서
더 이상 추구할 여지가 없을 때에야
그 사명을 다한다 할 것이지만,
그런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 아닌가 싶습니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고 외치면서,
스스로 알지 못 함을 깨닫지 못 하고
알고 있는 양 지식을 매매하던 소피스트들에게
일침을 가했던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거니와,
공자도
인식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제자들에게 자제시키면서 타일렀던 것입니다.
즉,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줄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 하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즉 알고 모르는 것의 구분을 확실히 하는 것,
이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라는 공자의 위의 말씀은
공자의 학문에 대한 겸허한 求道者的 情神을 말해주는 동시에
學問의 本質을 잘 지적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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