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3 17:33
이태훈 아들 결혼식장에서 1960년도 Mr. KOREA 박국경을 만났다.
(원방현): 『작년 50주년 행사에 못 참석하였지?』
(박국경): 『응, 그때는 독일에 있었어...』
그의 몸은 여전히 우람하였고 당당하였다.
『아직도 운동을 계속하나?』
『응, 아침 5시면 깨어서 체육관에 나가지..
나가면 늙은이들이 이미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지...』
나는 Mr. KOREA시절이 궁금하여 캐어 물었다.
『체육관은 어디였었나?』
『한국체육관이지...
그때는 모두 어렵게 살때라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한국체육관에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먹고 자며 한 1년 반 보내고 있었어..
그때 권투선수 김기수 등과 여러사람이 같이 있있지.
김기수가 자꾸 지는 것이 스피드는 있는데 주먹의 힘이 부족한 것 같아
역도실로 데리고 가서 주먹의 힘을 키우는 운동을 하게 하였지...
얼마후 과연 그는 벤베누티를 누르고 챔피언이 된 거야.....
그의 승리는 주먹의 힘을 배나 더 세게 향상시켰기 때문이야.』
그 밖에 박국경은 서울법대 2학년 때 경희대에 가서 유도를 가르치기도 하였는데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경희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체육관에서 유도 이외에 역도를 하였었는데 그 당시는 200KG을 들 수 있었다고 한다.
역도를 할 때 한국체육관에서의 권유로 MR KOREA에 출전하여 1등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박국경은 3공화국 시절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4년을 근무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많은 사업을 기획하였고 후에는 정부부처에서 근무하다가
대우 김우중 회장에게 발탁되어 약 20년 동안 대우맨으로 일하다가 은퇴를 하였다.
중국에서 일하면서도 많은 일을 하였었는데
친구들과 후세를 위하여 Mr. KOREA 시절, 청와대와 정부부처 근무, 대우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걸 해서 뭐하나...』
그러면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열심히 일한 회사가 정부와의 불화(?)로 쓰러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도 그의 마음을 붙들어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15조의 재산이 날라가 버렸어...
그게 다 우리 대한민국의 재산인데 말이야...
국가에서 도와주면 충분히 살아날 수 있는 회사였는데....』
우리들의 친구 Mr. KOREA 박국경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늙으니까 힘이 많이 줄었어...
그전에는 200KG을 들곤 하였는데 지금은 120KG 밖에 들수가 없어....』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아니, 70 노인이 아직도 120KG을 들수 있단 말이야?』
나는 한동안 그를 보면서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리곤,
초등학교에 다니는 다 큰 손자를 귀여운 마음으로 업어주었다가
한달 동안 허리가 아파서 끙끙대던 나의 모습과 비교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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