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한국어

글모음 1

노오현 論檀


 [서울고 40년 동창 문집 - 새 나라의 주역들]

    장(章)에   실린글

                                                                    

 

                                   <  나와  서울고  >     

   
                                                                                                     노 오현
 
추력을 최대로 올려라.


개교4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고여! 다시 발전의 추력을 최대로 올려라>.


졸업한지가 28년이 되었으니 고등학교 생활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도 평범하게 보냈으니 말이다. 공부를 아주 잘했으면 김원규 교장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기억이나마 남으련만 그렇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다른 특기도 없었으니 자랑할 만한 추억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원고청탁을 그냥 묵살할 수도 없고 뭐라도 써야 할 판인데 그저 아까운 지면이나 축내는 것이 아닌지 마음이 안타깝고 부담을 느낀다.


내가 서울고등학교에 지원한 동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나는 경상도 시골 중학(경북 예천군 예천중학교)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스스로 일류라고 하는 서울,경기,경복 세 고등학교의 입학원서를 모두 써 가지고 무작정 상경하여, 막상 어디에다 원서를 제출하여야 할지 망설이고 있던 차에 우연히 길거리에서 어느 학생을 만나 내 뜻을 말 했더니 자기도 서울고에 지원한다면서 서울고가 우리나라에서는 제일이라고 하늘만큼 늘어놓는데, 순진한 촌놈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밖에...
에라, 모르겠다. 떨어질 때는 미역국을 먹더라도 남아로서 그런 소리를 듣고 다른 학교에 지원할 수 있겠는가. 요사이 말로 배짱 지원한 것이 되었다. 지원을 하고 접수번호를 받아보니 이건 또 죽을 4자가 왜 그렇게 많은지 시작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는데 꿈보다 해몽을 잘 하라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도 서울고 입학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입학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나한테 그렇게 자랑한 학생이 서울중 3학년 학생이었으니 자기학교 자랑하지 않는 놈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 친구덕택에 나와 서울고는 영원한 인연을 맺게 되었고, 나의 아들놈까지 서울고에 다니게 되었으니 그 친구 다음에 조용히 만나서 톡톡히 한 턱 내기로 하고 우선 지면을 통하여 감사한 마음 전한다.
막상 입학을 하고보니 입학의 기쁨도 그저 잠깐. 서울 양반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무슨 업보인지, 경상도 촌놈이 입학을 하고보니 나의 일거수일투족(경상도사투리)이 서울양반의 웃음거리일 수밖에.


말을 할 때나, 특히 영어나 국어시간에 재수 없어 선생님으로부터 질문을 받거나, 읽어보라고 할 때는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없으니 이거야말로 진퇴양난. 6.25사변통에 서울친구들 경상도로 피난 가서 한두 말 경상도 사투리 주어 와서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데 이건 친절을 배푸는 건지, 놀려대는 건지 정말로 서울고 입학한 것이 후회막급일 때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키는 왜 그렇게 작은 도토리였는지, 키나 컸으면 물리적으로나마 놀려대는 친구들을 때려잡기나 하였을 텐데...그러나 체육시간에는 키 때문에 덕을 봤다고 할까. 축구니 배구니 하는 운동은 키 친구들이 땀 뻘뻘 흘려가며 하고, 꼬마들은 그저 나무 그늘에 앉아서 구경이나 하고 잡담이나 하다가 체육시간을 보냈으니 편하기는 한데 체육점수는 겨우 낙제 점수를 면치 못해 지금처럼 내신제가 있었으면 나는 틀림없이 대학문을 영원히 두들겨보지도 못하고 썩었으리라.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3 화학은 나의 담임선생님이신 노성완 선생님이 가르치셨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질문을 하셨다. 예습을 안 해간 탓에 대답을 못했더니 <이 놈 노씨 가문에서 없어져라>라고 하셨다. 그레도 선생님께서는 종씨라고 나한테 약간의 기대를 거셨던 모양인데 질문에 대답도 못했으니 선생님께서는 실망이 크셨으리라.


그런 사건이 있은 지 몇 달 후 화학시간에 선생님께서 어려운 문제를 손수 흑판에 가득 차게 풀고 계셨는데 아무리 봐도 잘못 푸시는 것 같았다. 아무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길레 내가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잘못된 곳을 지적하였더니, 한참생각하시더니 <네가 옳다>고 하시더니 <너 오늘부터 다시 노씨 가문에 복적하라>고 하셨을 대는 기분이 꽤나 좋더군.
선생님께서는 지금 나의 성장을 보셨으면 꽤나 기뻐하시리라 생각되나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 그러나 선생님의 한 가닥 뜻은 제자에게 전해졌으니 나는 그 뜻을 영원히 간직하리라.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2 독일어시간. 키가 작은 탓으로 그날도 맨 앞줄에서 졸고 있었는데 시간강사이셨던 독일어선생님(허인목 교수, 서울의대 교수로 계시다가 올해 정년하셨음)께서 보기에 하도 딱했던지 한 대 때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레도 유학(독일)갔다 오신 신사체면에 직접 때리시지는 않고 다른 방법을 택하셨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꿈나라를 해매고 있는 나를 내 짝(장용복, 일리노이 대학에서 공학박사 받고 미국에 거주)이 꼬집길래 졸다가 갑자기 눈을 뜨니 그 친구 왈 <팔>이라고 빨리 대답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엉겹결에 <팔>이라고 크게 외쳤더니 온 반이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지. 물론 선생님도 어이가 없으신지 웃고만 계시더군. 질문은 독일어 <arm>의 뜻을 물으셨는데 나는 내 짝이 시키는 대로 영어 <arm> 단어의 뜻을 대답하였으니까 웃음바다가 되었을 수밖에. 나 자신이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갑자기 내 짝인 장군이 보고 싶어진다.
참고로 독일어 arm의 듯은 <가난한> 이며 독일어를 다 잊었지만 arm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래도 선생님께서는 나보고 항상 가난하게 살라는 뜻으로 간직하고 싶고, 지금 내가 택한 직업이 돈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으니 이것 또한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들놈 보고는 서울고등학교에서 독일어 말고 불어를 택하도록 하였던 것도 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이다.
또 한번은 고2 세계사 시간. 숙제는 세계사에 나오는 인물조사. 세계사 선생님께서 국립도서관에 가서 인명사전을 보고 자세히 조사하여 오라고 하셨는데 그 때 나는 국립도서관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이니 교과서 보고 간단하게 조사하였을 수밖에. 실력이 있으신 선생님 눈에 찼을리가 만무했다.
나의 짝 장군은 손도 안 댔고 그 외 여러 학생이 숙제를 하지 않았으나 조사가 시작 되자마자 노트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시작하더니 우리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통과. 선생님께서는 우리 두 놈을 앞으로 불러내시더니 대가리 박치기를 시키는데 하늘에 별이 번쩍 번쩍하면서 그때는 무척 아팠던 같은데 지금은 통 아팠다는 기억이 없을뿐더러 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뿐이다. 그래서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 선생님 교사직 그만두시고 국회의원도, 사장도 하시고 이리저리 자리 찾아다니시는 느낌이고, 못난 놈 못난 자랑 이정도로 해두고 지금부터는 다른 얘기 좀 하여 보자.
 
나는 아직까지 동기동창회에도, 은사님들 초대하는 모임에도, 동창 어느 분이 장관이 되었다, 사장이 되었다하는 모임이나 축하 모임에 거의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참가한 이 못지않게 축하를 보낸다. 그러한 유명한 동창들 때문에 서울고가 빛나고 있지 않는가 하고.
하지만 아무 소식 없이 자기 삶에 충실하고 있는 동창들이 더 귀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그런 동창들의 소식이 간절히 기다려지고 있다. 임제록에 이런 말이 있다.<수처작주 입처개진>. 뜻은 대략 이렇다. 수처에 주가 되면 입처가 모두 진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하여 노력하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진실한 생명을 찾을 수 있다. 즉 삶의 보람을 느낀다는 뜻이다. 김원규 교장님의 언제 어디서나 주인이 되라는 뜻과는 약간 뜻이 다르다.
나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원 까지 다 다른 학교를 다녔지만 서울고등학교가 그 중에서 내 성장과정에 제일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그 학교터(경희궁), 그 교훈, 훌륭하신 교장님과 여러 선생님들, 본받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선배님들, 똑똑하고 다정한 친구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후배들 때문이리라. 서울고등학교 시절에 배우고, 익히고, 체험했던 것들이 세계 어느 학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하고 독특한 것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우리가 성장하는 데 여러 단계와 과정을 밟게 마련인데 고등학교도 단지 여러 과정중의 하나이므로 서울고,서울고하는 너무 한 학교에 고착된 생각을 고집하여도 좋지 않다. 서울고등학교는 세계속의 작은 학교에 불과하다. 다른 여러 학교들과 더불어 성장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잇다.
21세기에는 지금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지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구는 시기, 전쟁, 가난이 없고 사상과 인종을 초월한 하나의 국가가 될지도 모르고 달과 다른 행성등에 지구촌이 형성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지구에 고착된 생각, 사상, 이념등을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40년을 맞이하는 서울고등학교는 시대에 앞서가는 학교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한국속의 서울고등학교가 아니라 세계속의 고등학교로 성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언제 어디에서나 부끄러움 없고 떳떳한 그 선배에 그 후배가 많이 배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 40주년이 우주 로켓의 첫단 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두 번째 단에 해당된다. 바야흐로 제2단 로켓이 점화되었다. 더 빠르고 더 큰 발전을 위하여 추력을 최대로 올려야한다. 동창 개개인의 힘을 뭉치는 길 밖에 없다.
서울고등학교의 영원한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영광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항상 헌신적으로 동창회를 이끌고 계시는 동창 임원 여러분들께, 그리고 40주년문집을 준비하고 계시는 편집위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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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오현
                                                                                               10회/서울대 공대 교수, 항공우주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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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경문화(1986. 6월호) <수필>난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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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승무원들에게 지상관제소에서 보낸 마지막 지시는, <챌린저호, 추력을 최대로 올려라>였다. 이것보다 더 상직적인 메시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