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한국어

글모음 2

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157.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현존하는 미국 극작가들 중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에드워드 올비( Edward Albee)가 1962년 브로드웨이에 발표한 첫 장편 희곡인데 이것이 곧바로 성공하여 대표작이 되었다.  그는 지난 주에 별세했다.
 

9월 초 어느 날 뉴잉글랜드 지방의 한 작은 대학 캠퍼스에서 새벽 2시부터 5시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 내용을 이룬다. 
 

「조지」는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중년 남자. 그의 부인 「마사」는 건강하고 풍만한 육체를 지닌 여인으로 이 대학 총장의 딸이다. 
 

그들은 총장이 주최한 신입 교수 환영 파티에 참석했다가 둘이 다 무척 취해 집에 돌아온다. 조지가 잠을 자기위해 침실로 올라가려는데 마사는 손님이 올 것이라 한다. 그녀의 아버지인 총장으로부터 이들을 공식 파티 후에도 각별히 잘 대접하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서로 말다툼을 하는 사이 새로 생물학과에 부임한 「닉」이란 젊은이와 그의 부인 「하니」가 도착했다.
 

그들 사이의 공기가 험악한 것을 보고 곧 돌아가려 하지만 조지 부부는 말린다. 술을 계속 권하고 점점 취해가면서 조지는 내일이면 21살이 되는  아들이 집에  돌아온다고 자랑한다. 마사는 젊은 닉에게 추파를 던지는 한편 남편 조지가 무능하게 과장 자리 한 번 못하고 항상 평교수로만 머물러 있다고 불평한다.
 

취한 하니가 구역질을 일으켜 여자들이 무대에서 사라지자 닉은 조지에게 원래 하니를 임신시킨 줄 알고 결혼했으나 나중에 [상상 임신]으로 판명되었고 아직도 자기들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고 했다. 또 그는 실상 돈 때문에 결혼했음을 인정한다.
 

닉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영향력 있는 위치의 부인과 정을 통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마치 마사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한다. 조지는 이 말을 취중의 농으로 받아들인다.   
 

여자들이 등장하여 마사가 조지의 무능을 다시 공격하자 조지는 화가 치밀어 마사의 몸을 올라타고 목을 조르려는 것을 닉이 말린다.
 

술잔이 계속 돌려지면서 하니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닉이 자기들 결혼의 비밀을 발설한 사실을 알고는 몹시 분개하여 방에서 나가자 닉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그녀를 뒤따른다. 조지와 마사도 또 다시 취중에 언쟁을 벌린다.
 

닉이 혼자 돌아오자 마사는 그를 유혹한다. 조지는 꾸벅거리면서 마사의 행동을 취한 척 용인한다.

 

 마사는 닉과 함께 침실로 사라진다.  아직 무척 취한 상태에서 하니가 등장하여 자기는 아이 낳을 때 고통을 참지 못할 것 같아 아이 갖기를 원치 않으며 사실은 임신 때마다 중절 수술을 받았음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조지는 하니에게 조금 전에 자기도 아들이 죽었다는 전보를 받았다고 실토한다.
 

침대에서 닉은 발기부전으로 인해 제대로 기능을 못해서 마사의 조롱을 받는다.
 

두 부부가 다시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조지는 엄숙한 표정으로 아들이 죽었다고 발표한다. 그러자 갑자기 마사는 분노를 터트리면서 조지가 아이를 자기 마음 대고 죽이고 살릴 수 없다고 소리친다. 닉은 그제야 아들이란 것이 그들 부부사이에서 만들어진 허구의 존재였음을 깨닫게 된다.
 

조지는 자기들이 아이를 가질 수 없음을 알았을 때부터 부부가 상의하여 아이를 상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젊은 부부는 떠나고 조지는 아들을 잃고 애도에 빠져 있는 마사를 위로하며 연극이 끝난다.
 

이 연극의 주제는 불임(不姙)이다. 조지와 마사 부부가 가공으로 아들을 만들어 키우는 소재를 중심으로 해서 젊은 부인 하니의 상상 임신과 반복된 임신 중절, 마사와의 정사에서 보이는 닉의 성 기능 장애,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조지의 무능력 등이 모두 생식과 임신 능력 결핍이란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연극에서 조지 부부가 상상 속에서 자식을 만들어 키운다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지만 좀 무리가 있고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나 작자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취중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무리가 없다고 변명하려는 것 같다.
 

사실 이 연극에서 내용의 줄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끊임없이 언어를 구사하여 농담이나 풍자라는 구실을 통해 적대감, 비난,  조롱 등 평소에 교양 속에 감추어져 있던 거친 감정을 표출시키면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권위와 자부심, 우아함과 품위 같은 위선으로 무장한 주인공들의 껍질이 차차 벗겨지면서 불임이 초래한 그들이 공유하는 고통, 불안, 무력감, 공허함 같은 약점들이 한 꺼풀씩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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