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한국어

글모음 2

     

 

     청당 민 병문 주필(헤럴드경제신문 주필)께서 

 

     대한언론인회 회보1월호에 쓰신

 

     글(경제위기와 전직대통령)을 옮김니다. 

 

     一讀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별 신통한 지형이 아니다.협곡에 조그만 들이 비좁게 들어앉았을 뿐 답답하다는 인상이다.좌청룡 우백호는커녕 앞 쪽으로 흐르는 강이라던지,큰 시냇물도 눈에 띄지 않았다.아마 실개천 정도 흐를지 모른다.

 

 

여하튼 왕후장상이 나올 지형은 아니었다.거기다 노무현 16대 대통령의 생가라는 게 도무지 오종종했다.옛날 동구 밖 삼거리에 오고 가는 객들의 속을 풀어주는 주막집,그래 바로 그런 일자집 주막 모양과 흡사했다.일단 눈에 띄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의 다른 집들과 비교해도 초라했다.

 

 

두가지 상상이 가능하다.이런 집에서 대한국의 대통령을 배출했으니 얼마나 한국이 차별없는 주주의 국가인지 실감할 수있다는 게 첫째일 것이다.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게 아니고 산골짝 빈촌에서 호랑이가 나온 셈이다. 빈촌 출신으로 후한을 건국한 유방은 그래도 삼국지의 촉나라 유비 후손임을 나중에 팔고 다녔지만 오기 가득찬 노무현씨는 그러지도 않았다.

 

 

그런데 생가 소개 게시판에는 호랑이가 아닌 백말 얘기가 나온다.백마 탄 왕자님 얘기는 비단 서양 동화만은 아닌 듯 싶다.태몽을 그의 어머니 이순례여사가 꾸었을 때 “엄청나게 큰 말뚝에 매어있는 백말의 고삐를 할아버지가 주면서 타고 가라고 했는데 말발굽 내딛는 소리가 너무나도 우렁찼다‘라는 것이다.

 

 

백두산 정기를 타고 났다는 북한 김정일 탄생 신화와는 비교되지 않아도 역시 뭔가 특징을 부각시키고자 한 점은 대동소이하다.도대체 그런 태몽들이 살기에도 바쁜 서들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전승이 되었는지 역시 미스테리다. 없는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이왕 빽도 절도 없는 농부 아버지 밑에서 오로지 공부를 잘해 사법고시에 합격한게 최상의 선택이었다면 그냥 소박함 그대로를 유지하는 게 더 그다왔을지 모른다.

 

 

하물며 봉화산 기슭에 지어놓은 저택과 생가와는 너무 대조가 되었다.하긴 퇴임 직전 국고 495억원을 들여 주변 개발을 하고 생가만도 9억8000만원을 들여 새로 복원하며 사저에는 12억1000만원의 예산 배정,이밖에 경호 및 경비 시설에 35억원을 투입,근접 경호동과 직원 대기동들을 짓도록 했으니 조만간 별 차이가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차이는 엄연했다.

 

 

그런데도 그의 지금 사는 저택이 종합부동산세를 몇 만원 밖에 내지 않는다면 몇백만원씩 내야 하는 서울 강남의 35평 아파트 소유자들이 납득할 수있을까. 아무리 시골 땅이라지만 시세로 보아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혹시 퇴임 이후 수입이 없어 봐준 것이라면 몰라도 지금 그는 퇴임 대통령에게 지급하는 막대한 봉급과 복지,경호 혜택을 받는 처지다. 이역시 형평 차원에서 틀렸다. 하물며 자신이 만든 종부세 아닌가.

 

 

두 번째 상상은 이런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노무현씨가 평소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았을지가 관심사다.단순한 어린이라면 그저 뛰어노는 정도로 차별화한 세상에 눈길이 안갔을지 모르나 생가 소개판에 나와 있듯이 그를 여섯 살에 천자문을 외운 ‘노천재’로 불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나는 이런집에서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를 원망 비슷이 마음 속에 되새기며 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결국 노무현씨가 재임중 부자와 서, 수도권과 지방을 편가르고 서울 강남 주과 서울대 출신을 증오하다시피 대한 이유가 그가 살던 고향 마을에 와보니 대충 짐작이 가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차이’는 존재한다. 아무리 평준화 교육을 펼쳐도 세월 지나면 우등과 열등, 부자와 빈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자신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국회의원 당선, 대통령 당선 이후 까마득한 신분 처우를 받으며 일반 서과 차별화한 생활을 즐겨오지 않았는가. 좌파 정권이 퍼주기에 급급했던 북한 사회도 평등하지 못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능가한다. 당원과 비당원, 평양 주과 시골 주과의 차이는 상상을 불허한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까닭이 봉하마을, 그의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이라면 정말 착잡해지는 심정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첫 추위가 닥치기 일주일 전인 08년 11월28일에 찾은 봉하마을 인상기는 하이라이트가 따로 있다.퇴임 후 하도 구경꾼이 많이 찾아서인지 동리에는 ‘봉하 빵’을 만들어 파는 집도 보였다.주인이 시식을 권해 먹다가 일행 중에 누군가 지금 노무현씨가 연설중이라는 소리에 황급히 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구경꾼은 우리 말고 많지 않았다. 아마 취재진이 더 많았을지 모른다.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은 축대 위에서 그는 예의 겸손한 듯, 오만한듯한 얼굴로 막 질문에 답을 하고 있었다.누군가가 아직 구속 엿새 전인 그의 형 노건평씨에 관해 물어본 것같다.잠시 곤란한 표정이더니 순식간에 제 얼굴로 되돌아왔다

 

 

요지는 언론이 이문제에 너무 앞서 나간다.조사는 받아야 하겠지만 자신은 형을 믿는다라는 것이다.그러나 그의 말은 엿새 뒤인 08년 12월 4일 저녁 노건평씨의 구속으로 다 허무맹랑해졌다.거짓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며칠 뒤 일어날 사실에 관해 끝까지 언론 탓을 하며 형의 결백을 믿고 싶어했다.형제니까 굳이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노건평씨는 이미 몇차례 전과가 있다. 대표적인 게 대우건설 남상국전 사장이 유임 청탁과 함께 건넸던 3000만원 수뢰 사건이다. 이때도 노무현씨는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서 좋은 학교 나온 출세한 분이 시골 농부 찾아가 청탁이나 한다는 식 야유로 끝내 남사장을 한강에 투신 자살케 했었다.그렇다면 내가 찾아갔던 날도 형이니까 믿는다고 하기보다 좀 더 친인척 관리에 신경썼어야 했다는 자책을 다소라도 비쳐야 하지 않았을까.

 

 

구경꾼과 지근 거리에서 호흡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밀착해 일주일에 월요일,목요일을 뺀 닷새동안 이른바 ‘방문객과의 대화’를 갖는 진정한 이유는 또 뭘까. 좀 야릇하다. 소탈하게 대중과 그냥 소통하고 싶어 그런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넓은 집에 일없이 들어앉아 책을 보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일반인들처럼 자유롭게 헬스에 다니고 산책을 하고 그럴 처지가 못된다.이따금 지인들과 골프치러 지방 여행을 한다지만 그것도 노상 할 일은 못된다.자칫 구설수에 오르기 쉽다.

 

 

결론은 아직 60세 갓 넘은 나이에 좀이 쑤시니까 일꺼리 만든다는 게 그런 대화 시간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도 따져하면 묘해진다. 그 대화 시간에 곧잘 정치적 발언이 튀어져 나오는 것이다.기자들이 현장에 상시 배치되지 않을 수없게 만드는 셈이다.

 

 

특히 지난 가을 MB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을 우회적으로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 두드러진다. ‘10.4남북 정상회담’을 가리켜 ‘버림받은 선언’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전임 사장이 계약한 일은 후임 사장이 이행하는 줄 알았다’등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행보를 계속할 것인가.

 

 

나라는 지금 미중유의 경제 위기 속으로 침몰해가고 있다. 유능해보이지 않는 이명박정부를 이런 때 한껏 흔들어 정치적 이득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지 않은 세태다. 내년 우리 경제가 정부와 한국은행 전망에 의하면 2%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혹자는 이마저 의심한다. 자칫 마이너스 성장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누구도 언제 어떻게 회복이 될지 불가측의 시대다. 오로지 믿는 것은 한국인이 지난 40여년간 보여준 성장 저력 뿐이다. 다시 일어설 수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것을 믿는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많은 구조조정보다는 규모를 줄여 축소 경영을 해가며 어려운 시절을 참아내 언젠가 올 호황기에 대비하기를 희망한다. 이는 지난 98년 외환 위기 때 우리가 너무 내용 좋은 기업들을 헐값에 팔아치워 외국기업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준 쓰린 경험이 뒷받침한다. 그런 점에서 LG그룹 구본무회장이 줄곳 현재 기업을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 표시를 하는 것에 공감한다.

 

 

이기업이 꼭 형편이 좋아서가 아닐 것이다.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서이며 동시에 현재 구조조정이 얼마나 가계에 아픈 추억을 줄지 알기 때문이리라 믿는다.여기에는 노사 합심이 필요하다.사회 화합은 더욱 중요하다. 어려운 시기라면 서로 참고 인내하며 도와야 하는 것이다. 기다리면 반드시 호기는 온다.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

 

 

그런 시기에 노무현씨가 계속 고향 마을에 앉아 낭비적 훈수를 두고 기자들이 이를 받아적는 일이 계속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말이 아니면 가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정권은 MB에게 넘어가 있다. 훈수 둔다고 들을 사람들도 아니다. 나라 들어먹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들도 종로로 가던,을지로로 가던 어떻튼 좋은 길을 찾아가려 노력할 것이다. 시행착오 비용이 크기는 하지만 어차피 국이 선택한 정부다.

 

 

최근 그리스가 16세 소년 사살 사건과 관련, 전국적으로 시위 열풍에 말려있는 현상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의 얼토당토 않은 미친 소 시위 파동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이른바 거리 주주의 효시 국가나 다름없다. 정치인이 군중들 앞에서 연설하고 정책 결정과 참전 결정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도시 국가 형태로 오늘의 주주의 모범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 날 그리스는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거리 주주의라는 기본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태 정치 체제가 으뜸 아닐까. 인구 4800만명의 세계 13대 경제 대국인 한국이 이런 식으로 주주의를 해나갈 수 없다. 한국식 주주의는 일단 뽑았으면 임기중에는 일하도록 맡겨두고 나중 선거로 결판짓는 게 낫다.

 

 

다행히 노무현씨가 08년 12월5일 대화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무자년 군중 앞 출현은 안하겠다고 선언했다. 해가 바뀌어도 그랬으면 좋겠다. 선언 전날 형인 노건평씨 구속으로 사실 더 말할 입장도 아니다. 이유야 어떻튼 그가 다시 봉하마을 축대 위에 할 일없이 나타나 몇 몇 구경꾼 상대로 국정에 관해 간접 훈수를 두는 그런 모습이 사라지게 된 것은 반갑다.

 

 

봉하마을이 개인 정치 도장 또는 연설 연습장,구경꾼 모이는 동물원이 아닌 바에야 전직 대통령이 함부로 나서 정기적으로 대중과 접촉하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고향 마을 관광 수입 증진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 전체 위엄과 경쟁력 강화다. 차라리 대학 강단에 서던지,미국의 카터 전대통령처럼 빈 구제 해비탓트 운동이라도 하던지 남은 세월 활용 방안을 재검토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대한언론인회 회보 1월호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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