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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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문 칼럼: 두 여인, 장영희와 박근혜

2009.05.15 11:41

이범상 조회 수:4611

  헤랄드경제:  [경제광장]    두 여인, 장영희와 박근혜   
   
                                               민병문 주필
   
  평생을 저자세에서 사랑과 희망, 축복을 헌정한 장 교수

    고자세 권력의 자리 누린 박 의원에게 부족한 2%…

 

 
지난 9일 이후 갑작스레 두 여인이 도하 신문을 두드린다. 이날 낮 타계한 서강대 장영희 교수와 같은 날 방미 순방 중 침묵을 깨고 한국 정계를 강타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그들이다.

장 교수는 두 발과 오른쪽 팔이 마비된 소아마비 1급 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국 최고의 문장가, 수필가, 시 해설자 겸 영문학 교수. 하지만 그녀의 뛰어났던 모습은 그런 인간 승리에 앞서 항상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축복의 화신이었다는 점일 게다. 무려 3가지 암과 싸우면서 꾸준히 좋은 영미 시 해설과 수필들을 써내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그녀의 언니인 장영자 씨와 초등학교, 여학교 동창인 아내의 기억으로는 갓나서부터 행보가 힘든 그녀를 업고 매일처럼 재동초등학교에 등교하던 어머니의 서늘했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6ㆍ25 전쟁 직후 셋집에 살면서도 미국 작가 펄 벅의 ‘대지’를 번역했던 아버지 장왕록 서울대 교수의 방에 도서관 식으로 가득 비치됐던 서적들, 아마 그 속에서 장 교수도 문학의 숲을 거닐 정신적 토대를 마련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장 교수의 유작인 ‘축복’을 다시 꺼내들고 거기 소개된 월트 휘트먼의 ‘나의 노래’ 끝 부분을 읽어본다. /나는 공기처럼 떠납니다. 도망가는 해를 향해 내 백발을 흔들며 /내 몸은 썰물에 흩어져 울퉁불퉁한 바위 끝에 떠돕니다 /내가 사랑하는 풀이 되고자 나를 낮추어 흙으로 갑니다 /나를 다시 원한다면 당신의 구두 밑창 아래서 찾으세요/

여기 해설에서 장 교수는 떠날 준비를 한다고 썼다. 구두 밑창에서 날 기다릴 사랑과 행복을 찾아간다고 했다. 얼마나 낮은 자세인가. 문득 박근혜 의원과 장 교수의 상이점을 찾던 나에게 아내의 말이 비수처럼 찔러든다. 장 교수는 일생을 낮은 데서 생각하고 사물을 본 반면 박 의원은 높은 데서 생각하고 권력의 정점을 보았다는 것이다.

두 여인, 장 교수와 박 의원은 나이가 57세로 같다. 서강대 동문의 수재형이고 평생 독신이다. 엄마 사랑들이 남다르다. 두 사람 모두 성공한 인생을 산 공통점이 있다. 박 의원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권력 집착을 줄이면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 너무 크게 다가선다. 바로 그들이 살아온 저자세와 고자세 인생 길 때문이다. 영문학 박사에 사랑받는 문장가, 영미 시 해설자가 결코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는 아니다.

하지만 박 의원이 걸어온 고자세의 권력길과 비교하면 장 교수의 자리는 소박하기 짝이 없다. 목발 짚고 명동 상가에 섰다가 쫓겨날 뻔까지 했다니까. 박 의원은 지금 집권당의 명백한 지분권 소유자다. 지난 5일 방미 때 공항 환송한 의원들만 29명이란다. 친박 의원 수가 60여명 수준이다. 총리 자리를 주어도 안 받겠다는 자세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헛발질이 계속되는데 발 담그기 싫다는 태도다.

과거에는 혁명군 사령관과 종신 대통령의 딸이고, 어머니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영부인 역할을 잘해냈다. 부모 암살이란 치명적 비극을 겪고 나서 추종자들이 주위에 끊이지 않는 것은 그녀의 탁월한 정치술 까닭일까. 위기 때마다 짧은 몇 마디 말로 나라를 쥐고 흔드는 재주가 비상하다. 이제 지난번 경선 실패를 딛고 차기 대선에 눈이 가는 창창한 권력 창출자다.

하지만 세속적 권력의 자리는 바람 같지 않은가. 평생을 고자세로 살아온 박 의원은 자신의 가족사에서부터 그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장 교수는 저자세에서 옹색한 몸으로 암 투병까지 해가며 끊임없이 삶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과 축복을 말했다. 13일 그녀를 마지막 보내는 발인식에 그처럼 많은 조문객들이 몰려 눈물 지은 사실을 보라. 몸은 갔으되 부활의 기쁨을 그녀는 분명히 느낄 것 같다.

문득 박근혜 의원이 잠시 눈을 돌려 이런 동년배 장 교수의 행복한 삶을 한번 반추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혹시 켜켜이 쌓인 정적에 대한 미움과 아쉬움 대신 사랑의 상생정치 구도를 한번쯤 그려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