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6 01:47
김기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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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된 대군 부인의 행보♧
이 숙 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송 씨는
세종의 며느리로 역사에 등장하여
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중종
여섯 왕의 비호를 받으며
호화로운 삶을 살다 갔다.
그녀의 남편 영응대군은
38세의 세종과 40세의 소헌왕후가
여덟 번째로 낳은 막내아들이다.
송 씨는 대군의 나이 12살 때
부인으로 봉해졌는데,
4년을 살고는 쫓겨났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송 씨를 내치고
새 부인으로 바꾼 것은
순전히 시아버지 세종의 뜻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세종은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집에서 눈을 감는다.
☆세종이 내보낸 며느리,
다시 돌아오다
3년 상을 치른 영응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재가를 얻어
현재의 부인과 이혼하고
전처 송 씨와 재결합하였다.
송 씨를 잊지 못해 몰래 만나
딸 둘을 낳았던 것이다.
(단종1년, 1453)
재결합에 성공한 그들은
곧이어 단종의 혼인에 간여하는데,
친정 조카가
왕비로 간택되는 쾌거를 이룬다.
정순왕후 송 씨는
대군 부인 송 씨의 조카이다.
영응대군은 안국방의 저택에다
재물 또한 누거만(累巨萬)이었다.
늦게 낳은 아들을 너무 사랑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으로
내탕고의 모든 보물을 받게 된 영응대군은
노비 1만 명을 거느리는
거부가 된 것이다.
그런 영응대군이
34세의 젊은 나이로 죽자
모든 보물은 송 씨의 것이 되었다.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세조는
그 부인 송 씨와 조카 딸 길안현주(吉安縣主)를
극진히 보살피고
많은 재물을 내려주었다.
왕의 비호를 받는
송 씨의 권력도 점점 높아졌다.
한번은
대신들을 초청하여 진수성찬을 차렸는데,
보장(寶障)으로 두른
특별한 한 자리에
사위 구수영(具壽永)을 앉혔다.
그리고 궁정 옷을 입힌
여종 수십 명을 좌우로 시립(侍立)하게 하였고,
객으로 온 대신들에게
사위 구수영을 받들도록 했다.
(예종 1년, 1469)
이른바 ‘궁정놀이’를 한 것인데,
뒷말이 많았다.
송 씨는 궁궐에 무시로 출입하면서
왕실의 남다른 총애를 받았다.
송 씨가 진상(進上)한 비(婢)가
대내(大內)에 깔려 있어
궁중의 내밀한 정보까지
밖에서 다 받아볼 수 있었다.
대신들에게
송 씨는 당연히 눈엣가시였고,
그로 인해
왕과 신하들의 논쟁이 잦았다.
어느날 성종 임금은
외출했다 환궁하면서
송 씨 집으로 행차하여
곡식 50석을 하사했는데,
경연에서 이 행차가 문제 되었다.
신하 :
구수영으로 말하면
일개 어린 신하인데,
전하께서 무엇 때문에
몸을 가벼이 하여 가서 보십니까?
임금 :
구수영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세조 때부터 대군의 부인을
매우 후하게 대우했기 때문이다.
또 지나다가 들른 것이지
일부러 간 것은 아니다.
신하 :
부인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잘못입니다.
부인을 보기 위하여
여항(閭巷)으로 행차를 하심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전하의 동정(動靜)은
사관(史官)이 반드시 기록을 하니,
이렇게
경솔하게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임금 :
내가 참으로 실수를 했으니,
앞으로는 마땅히 삼가겠다.
신하들에게 혼이 나고도
송 씨에 대한 성종의 비호는
그치지 않았다.
그런 틈을 타
송 씨는
임금의 뜻에 영합한 대사헌을 움직여
송사가 일어난 재산·전답·노비 등을
가로채기도 했다.
(성종 22년, 1491)
왕은 또 송 씨 소유의 암태 목장을
호조에게 사 주라고 명령했다.
호조에서는
“물과 풀이 부족하여
말을 먹이기에 적당치 않은 허허벌판인 땅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라고 하며
사줄 수 없다고 했다.
(성종 24년,1493)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 씨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졌다.
왜 이렇게까지 지나치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대신들에게
왕은
"어찌 연유가 없겠는가"
라고 했다.
☆국왕과 거래하며 재산 늘려가
성종이 보위에 오를 때
송 씨는 자신의 저택을 기증했는데,
바로 연경궁(延慶宮)이다.
재물로
왕과 일종의 거래를 한 셈이다.
송 씨를 비호하는 절대 권력은
연산군으로 넘어갔다.
새 왕이 탄생하자 송 씨는
각종 보물과 노리개를 바쳤다.
이에 신하들은
그런 물건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이치에
어긋난 일임을 설파했지만,
왕은 듣지 않았다.
송 씨는 권력을 이용하여
재물을 끌어들이고,
그것을 다시 재투자하여
키우는 방식으로 재물을 관리했다.
즉 국왕을
비즈니스 파트너로 삼아
통 크게 베풀고 거둬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재물로 절을 창건하여
절 출입이 잦았던 송 씨는
결국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동대문에 방(榜)이 붙었는데,
“영응대군 부인 송 씨가
중 학조와 사통(私通)을 했다”
는 것이다.
그런데 연산군은 도리어
이것을 상언한 신하를 구속하였고,
사관에게 명하여
송 씨에 대한 소문을
기록에서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연산군의 이 말까지 기록한
조선시대 사관의 기록 정신이
새삼 돋보인다.
70을 바라보는 송 씨에게
그 추문은 어쩌면
지나친 탐욕이 불러온
모함일 수도 있겠다.
왕과 송 씨의 거래는 계속되었다.
송 씨는
양주 석도(石島)의 뽕나무 밭 7결(結)을 바치고,
쌀 80석을 하사받았고
(연산군 6년, 1500)
몇 달 후 은을 진상하자
왕은 그 대가(代價)로
면포 1천 1백 필을 하사했다.
송 씨의 행보는
80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중종은 송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소선(素膳-고기를 먹지 않음)을 행했다.
송 씨가
여섯 국왕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재물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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