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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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고흐의 귀붕대 자화상/정유석

2017.02.15 11:13

원방현 조회 수:76

[정신건강 에세이]

고흐의 ‘귀 붕대 자화상’ 

 

1888년 12월 30일자 프랑스 아를 지역의 한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지난 일요일(12월 23일) 오후 11시 30분 네덜란드 출신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란 화가는 유곽 1호에 나타나 라셀이란 창녀를 찾았다. 그녀에게 자기 귀를 주면서 “이 물건을 잘 간직하시오.”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경찰이 그 미친 사람의 집을 찾아갔더니 그는 침상에 누워있었는데 죽은 것 같았다. 경찰은 즉시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경찰이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이유는 아래층 두 방까지 피가 흥건히 괴어 흘렀기 때문이었다. 고흐가 자기 왼쪽 귀를 면도칼로 잘랐을 때 동맥을 건드렸던 것이다.

 

12월 23일 고흐는 두 달 전에 입주했던 동료 폴 고갱(1848-1903)과 심하게 다투었다.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돈을 꾸었던 고갱은 고흐가 동생과 공모하여 자기를 속인다고 의심해서 떠나겠다고 통고했다.

 

동료에게 버림받기를 극도로 두려워한 고흐는 면도칼을 들고 고갱에게 달려들었다가 결국 자기 귀를 자르고 만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고갱은 동네 호텔에서 그날 밤을 머물렀다.

 

다음 날 새벽 7시에 고갱이 돌아왔을 때 경찰이 이미 그 집을 방문한 후였다. 경찰은 그를 살인 미수범으로 간주하여 체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풀어주었다.

 

고갱은 파리에 사는 테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날 밤으로 동생이 도착했지만 별로 할 일이 없어서 그는 네덜란드 개혁 교회 목사에게 형을 입원시켜 돌보아 주길 부탁하고 크리스마스 날 귀경했다.

 

고갱은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파리로 돌아갔으며 그 후 고흐를 다시 만난 적이 없다.

 

정신이 없었는지 고흐는 병원에서 다른 환자들과 동침하겠다고 소리치고 간호사들을 괴롭혔으며 석탄 통에 물을 받아 세수를 했다.

 

입원 시 그는 영양 부족, 알코올과 압상스 중독 그리고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환각을 동반한 측두엽 간질이란 진단을 받았다.

 

고흐의 자해행위는 고갱에 의해 버림받기를 두려워한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고흐는 동생과 함께 남부 프랑스에 화가들이 어울려 살면서 함께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 마을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고갱이 떠나면 그 꿈을 접어야했다. 고흐가 버림받았을 때 자해행위를 한 것은 전에도 있었다.

 

코넬리아란 여성이 청혼을 거절했을 때 그는 등잔불에 손을 대면서 그녀의 아버지에게 “내가 불꽃에 손을 대고 있을 때 그녀를 내게 데려오시오.”라고 위협했다.

 

다음 달인 1월 7일 퇴원해서 집에 돌아온 고흐는 정양을 취하는 사이 유화로 ‘귀 붕대 자화상’(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을 그렸다.

 

자른 귀는 왼쪽이었지만 그림에서는 오른쪽 귀를 턱까지 붕대로 감쌌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좌우가 바뀐 것이다.

 

그는 턱 밑까지 잠근 초록 외투를 입고 있었으며 깎은 머리 위에는 검은 털로 장식된 푸른 모자를 쓰고 있다.

 

얼굴 표정은 근엄하며 약간 오른쪽을 보고 있다. 배경에는 통풍을 위해 약간 열려진 창이 있으며 화가에 걸린 캔버스가 보이고 ‘게이샤가 있는 풍경’이란 일본 목판화도 있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세 명의 게이샤가 야유회를 즐기는 그림이다. 고흐는 평소에 일본 목판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동생 테오와 함께 약 4백 점의 일본화 판화를 수집했으며 비록 유화로 그렸지만 3점의 일본 목판화를 확대시켜 모사한 적도 있었다.

 

게이샤는 가무와 함께 몸을 파는 직업여성들이다. 귀를 자른 후 방문한 곳은 고갱과 함께 자주 드나들던 유곽이었다. 고흐는 코넬리아에게 청혼한 것이 거절되자 창녀에게 찾아갔다.

 

타락에서 구하기 위해 아들이 달린 그녀와 동거했고 그녀를 모델로 해서 그림도 그렸다. 그가 거절당하고 창녀들에게 달려간 것은 그들이 심리적으로 그의 마지막 피난처였기 때문이리라.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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