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1 13:05
통학길에서
- 정열-
이승복 군은 대우 그룹의 전무 출신으로
그가 멕시코에서 사업을 벌인 이후에는 별로 접촉을 못 가졌지만,
20년 전
내가 영국 런던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에는 그 곳에 출장을 자주 왔고,
그때마다 식사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데
느닷없이 타계했다는 통보를 받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우리 나이에 몸에 불편한 곳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군은 원체 준수한 용모와 건장한 체격을 갖고 있어
쉽게 돌아 갈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는데,
입원한지 두 달 만에 타계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두보杜甫의 시구가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서 친구의 영면과 명복을 빌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에는 낯익은 고교 동창 여러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최종후(의사)군과 백린(명예교수)군도 먼저 와 있었다.
최종후군은 자주 만나는 형편이 못되지만
어쩌다 만나게 되면 초등학교 1학년 때
하교 길의 란도셀 분실 해프닝 때문에 언제나 파안대소 하게 되는데
이 날도 이 사건이 화제에 회자膾炙되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둘은
새로 산 란도셀을 메고 방과 후 함께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10대 소년 하나가 나타나서 사탕을 주면서 수작을 붙이는 것이었다.
란도셀을 벗어 놓고 경주를 하고 돌아오면
상품을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서 뛰어 갔다 오니
란도셀이 없어진 것이다.
요즈음 아이들 같으면 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그런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더욱이 기가 막히는 것은 이야기 하는 도중에
그 소년이 당주동에 산다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나
학교도 가지 않고 이틀 동안 당주동에 있는 집을 일일이 방문하여
그 소년을 수소문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그 당시 서울의 북촌은 대부분 한옥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골목길에 들어서 가가호호 방문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처음에 체부동(종로구)에 살다가 만리동(서대문구)으로 이사를 가서
6·25 전쟁이 발발했던 당시의 5학년 때까지
수송국민학교(현 종로구청사)에 다녔는데
그 당시에는 변변한 대중교통수단이 없어서 줄곧 걸어서 통학하였다.
길에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교통사고의 위험은 훨씬 적었고
사대문 안의 정경情景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낭만적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걸어서 다니는 것이 통상이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드럼통을 펴서 미군 중고 트럭에 조립한 버스가 대중교통수단으로 등장하면서
버스통학을 하게 되었지만
만원버스로 통학하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직장에 들어가니 통근버스의 편의를 제공받아
출퇴근시간이 한 시간 이상 걸려도 쾌적한 좌석 때문에 안온한 느낌을 받았다.
차창 밖의 풍경을 즐기기도 하고 가벼운 상념에 빠져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자유와 평화를 만끽滿喫할 수 있는 순간으로 삼기도 하였다.
회식이 있거나 잔무 처리로 늦게 되면 버스나 합승을 타야 하는데
통금시간의 제약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지하철도 자가용도 없는 시절이라
교통지옥은 형언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고
싸움하듯 승차를 하다보면 외제 손목시계를 탈취 당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다행이 영국 런던에서 근무할 기회를 갖게 되어
좋은 외제 승용차를 몰고 전원풍경의 교외에서 출퇴근 하는 추억을 만들기고 하고
아이들의 통학도 도와주었다.
1990년 귀국한 이후로는
네 자매 모두 중고등학생으로 과외수업의 시달림을 받아야 했는데,
봉고차로 소녀들을 납치해 간다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심야에 버스 정류장에 나가 가다리면서 아이들을 데려오던 기억이 난다.
강남에 살다가 분당으로 이사를 갔는데
네 아이 모두 서울시내의 대학교에 다니느라 통학에 시간을 모두 빼앗겨
즐거운 학창시절의 여유를 누리지 못한 것을 못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후 은퇴할 때까지 직장으로부터 승용차 혜택을 받아
통근에는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요즈음 나는 아침에 초등학교 1학년인 외손녀를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지하철을 타고 분당 소재의 헬스클럽에 운동하러 가는 것이 주요 일과인데,
최근에 재건축한 도심의 아파트 단지가 되어
통학 길에는 연못과 분수도 있고, 다리도 있으며 조경이 잘 되어 있어서
통학 길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다고 하겠는데
가능한 한 주변의 경관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연못에 사는 오리도 만나 인사하게 하고 새소리도 확인하고
나무 이름도 익혀가며 즐거운 감정을 느끼도록 노력하고 있다.
말끔히 정비된 보도위에는 여러 개의 맨홀이 있고,
그 덮개에는 한글로 ‘우수’, ‘오수’라 씌어 있지만,
이를 한문으로는
‘비 우, 물 수’ 그리고 ‘더러울 오, 물 수’라고 설명하면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지난 6월까지 미국에서 2년 동안 영어교육을 받아 영어는 잘하는 편인데,
하교 길에 데리러 가는 경우에는 “What's new today?"하고 물어보면
'Nothing special.'이라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지만,
줄넘기 시험에 합격하였다든지, 사행시 작문제출로 학교장 우수상을 받았다든지,
국어시험에 만점을 받았다든지 등등의 낭보를 전해주어
귀가 길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행복을 안겨주고 있다.
인생의 가는 길이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의 통학 길 추억이
내 외손녀의 장래에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빌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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