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9 09:43
고향 가는 길
우리 부부는 2010년 4월 5-26일에 걸친 3주 동안 고향나들이를 다녀왔다. 서울은 우리 부부의 일가친족과 죽마고우들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흘러간 시절의 추억어린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고향이라 믿고 싶은 곳이다. 우리들은 서울에 입성한 후 쌍문동 언덕에 위치한 형의 집에서 며칠을 쉬고, 한 주간 한국의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서울을 탐사하고, 시카고로 돌아오는 여정을 잡았다.
이번 여행 중에는 서울-대관령-경주-안동-대구-부산-진주-남해-순천-보성-강진-목포-담양-부안-전주-서울의 큰 한 바퀴를 육박칠일의 일정으로 돌아다닐 것이니 여러 곳을 볼 것이고, 지방마다 서로가 다른 전통음식을 맛볼 것이며, 지방 특유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로 머리가 차고 넘칠 것이다.
그래도 주된 스케줄은 서울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만나고, 인사동 길을 걷고, 남대문시장을 돌아다니고, 작은 선물들을 어디서고 찾아내고, 난타와 마당극을 관람하고, 이곳저곳의 책방을 들리고, 대학가를 즐기는 일이다.
아시아나 항공은 탈만한 비행기였다. 승무원들이 참으로 친절해서 우리 부부를 푸근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이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한 시가 조금 지났을 터인데 비행기는 하바러스크 해협을 지나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까지는 1250마일을 더 가야한다니 아직도 세 시간은 더 견뎌야한다. 나오는 음식이 좋다. 미국 것들은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형이 생각보다는 좋아 보인다. 좋아 보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조금씩 병들어가고 시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하는 말이다. 그런데 형의 머리스타일이 전과는 달라 보인다. 원래는 귀를 덮는 긴 머리였는데 짧아진 것이다.
사연인즉 고려대학교 병원벤치에 앉아있는데 누가 머리를 깎아드린다고 해서 화장실로 따라 들어가서 <이런 아이디어로 어렵게 돈을 벌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중 머리는 벌써 깎여 있었고 칠천오백 원을 달라는데 수고했다고 만원을 주었단다. 형은 한 주에 세 번 투석을 받으러 고대병원엘 다닌다. 투석이란 인공 신장기를 이용해서 혈액을 체외로 끌어내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한 후 다시 집어넣는 일인데 서너 시간 동안을 누어서 견딘다니 고통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좋아지고 있다니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동문수학하던 50년 지기들과 연 이틀을 보내면서 시차를 풀었고 남도여행을 마친 후 여러 명을 더 만났다. 하루는 백승욱, 이범상, 김춘길 그리고 나 넷이서 강진수산이란 횟집에서 술을 퍼부었다. 술이 달고, 생선이 싱싱하고, 오가는 말이 정겨웠다. 그리고 하루는 정윤표, 김병학, 김춘길 그리고 우리가 부부동반으로 여덟 명이 <Grill-H>에서 좋은 한식을 들었다.
나는 <갈비와 냉면>이란 메뉴를 골랐는데 이것저것 진미의 접시들이 많이도 나왔다. 남한일주에서 돌아와서는 수요일마다 함께하는 모임에서 김대호, 김상필, 박관영, 오수현, 원방현, 김윤환, 이학종, 이홍근, 이희경, 정희준, 최승환 들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재동 사거리에 위치한 <호반>에서 즐긴 토속음식이 구수하고 푸짐도 했다. 비빔국수는 단연 일품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란 모두가 아는 일상적인 내용이라서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저 70의 노인들이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살아가는 이야기니 건강관리에 관한 소식, 손자와 손녀의 재롱 등으로 뻔하다.
내가 <호반>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동안 용인은 이태원에 위치한 <Leeum> 미술관을 방문해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를 전시하는 특별기간이라 산수화, 삶의 단면을 보이는 다양한 풍속도 그리고 꽃과 새와 동물들의 대작들을 감상했다.
나는 서울의 건물마다 참으로 너절하게 붙어있는 간판을 읽고 나의 작은 노트에 기록하면서 웃는다. <품질은 UP 가격은 확 DOWN>이란 옷가게, <똥값으로 드려요>란 잡화상, <지지고 볶고 자르고>란 미용실, <Mr. 빈대떡>이란 피자가게, <하나 사요 뭘 사던지>라는 선물가게, <거기 노래방> 등이 보인다. <來人保宇>아파트가 보인다. <Rainbow>란 의미일까? 귀엽게 봐줄 수가 없다.
<뉴길고속관광>이란 여행사버스가 보이는데 뉴길이란 <new road>를 의미하는 모양이다. 하회마을을 돌아가는 강가에는 <국가하천/낙동강/국토해양부장관>이란 참으로 천하게도 생겨먹은 푯말이 박혀있다. 낙동강이 국가하천임을 모르는 바보도 있을까?
국토해양부장관이라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그리도 없단 말인가? 경주의 보문관광단지에서는 <밀면>이란 국수집을 보았는데 밀가루로 만든국수라는 말일까? <왕손 짜장>이란 음식점도 보이는데 왕의 후손이 만드는 자장면이란 의미인 모양이다.
상호가 그저 <맛>인 멋진 음식점도 보인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응봉산은 정상에 정자가 있어 돋보일 뿐만 아니라 들어난 바위를 제외하고는 온통 노란색이여서 개나리 산이라 부르고 싶다. 한국은 어찌 보면 개나리 나라라는 인상을 풍긴다. 반면 생각보다는 진달래가 보이질 않으니 웬일일까?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릴> 소월(素月)의 <진달래 꽃>을 어데서 찾아볼 수 있을까? 시(詩)에도 시향(詩鄕)이 있다. 언젠가 봄이 오면 소월의 <영변(寧邊)에 약산(藥産)>을 찾아가보고 싶다.
나의 <고향 가는 길>에서는 언젠가는 <개나리 꽃>이라도 한 아름 따다 임에게 드리고 싶다. 소월이 서른둘을 살았다니 봄에 낳아 봄도 다 못살아보고 가버린 진달래를 닮은 사람이 아니던가? 나는 솔직히 무궁화보다는 개나리를 좋아한다.
무궁화보다는 개나리가 나라꽃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이 백성이 좋아하는 이 땅의 꽃으로 국화를 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또한, 애국가도 우리의 노래로 바꿔야한다는 생각이다. <Auld Lang Syne>이 아련하게도 들리고 아름답게도 들리는 가락이긴 하지만 우리의 것은 아니다. 이 백성은 표절(剽竊)해다 불러온 남의 노래를 버리고 이 땅의 노래를 신명나게 부를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응봉산을 뒤덮은 개나리가 참으로 아름답다.
남한일주를 떠나는 일행이 28명인데 별나고 요상한 사람은 없어도 모두가 제멋대로이고, 대부분이 60은 넘어 보이는 늙은이들이다. 그래 치아가 그 모양인지 내가 즐기는 오징어무침은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아들만 셋이라고 자랑이 보통이 아닌 엄청 시끄러운 경상도 부부,
시카고의 로렌스 길에서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미국전문가처럼 떠들어대는 막 가는 부부, 영어를 꾀나 잘한다고 생각하는 캐나다 교포, 벚꽃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눈만 뜨면 말도 많은 진명 46회라는 권사님, 전화가 걸려오면 전화기를 찾느라고 주머니마다 뒤지느라 쩔쩔매다가 끝나는 장로님, 일요일 아침에 방을 얻어서 예배를 드리자고 제안하다가 돈을 내라는 통에 슬그머니 물러앉은 말 많은 늙은 목사님, 한 60쯤 되어 보이는 아무거나 게걸스레 집어먹는 생선 꽁치를 닮은 여인 등 가지각색이다.
가이드는 일정설명이 간단명료하고 유모를 적절히 사용하고 사무처리가 명확한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우리들은 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다.
어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글의 제목을 지어오라면서 귀족적이고 성(性)적인 내용을 나타내야한다고 못을 박았다.
한 학생이 <공주님이 임신을 했다>라는 제목을 제출했다. 그래 선생님이 우주적인 요소를 가미하라는 주문을 했고 학생은 <별나라 공주님이 임신을 했다>라고 수정했다.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요소를 가미해줄 것을 요구했고 학생은 최종적으로 답안을 내놓았다.
<별나라 공주님이 임신을 했다. Oh, my God! 누구의 아이일까?>
미시령터널을 동쪽으로 빠져나가면 아름다운 산경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울산바위가 우뚝하고 내려가는 구곡간장(九曲肝腸)의 험한 산길인데 속초(束草)가 잠간이라니 한국이 작은 나라이고도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나라인 것을 체험한다. 해안마을로 다가서면서 학사평이라 부르는 순두부마을이 나타나고 반짝거리는 관광지의 색깔에 눈이 부셔온다. 아직도 첩첩산중인데 우리들은 이목리막국수집을 찾아 강원도의 토속음식인 시원한 막국수로 여독을 푼다.
어린아이들처럼 케이블카로 설악산을 둘러본다. 하얀 색깔로 반짝이는 산이 높고, 아직도 하얗게 덮인 눈이 그대로인데 살로 스며드는 잔잔한 대기의 닿음이 우리를 따스하게 감싸주니 이게 웬일일까? 맞다. 알프스의 얼음동산을 올랐을 때에도 우리는 따스하고 상쾌한 대기의 닿음을 경험했었다. 알프스를 설악에서 체험하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신흥사와 낙산사 가는 길을 걷는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옛 사찰이나 성당을 돌아다니는 일을 별로라고 여기기에 그저 운동 삼아 따라다니는 것이다.
강릉 서지마을의 고택을 찾아 주인아주머니의 못밥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통어린 농가밥상을 받는다. 푸짐한 한 상을 대나무 숲이 둘려있는 고택에서 받아보는 편안함을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누덕나물, 돌나물, 각종 전, 묵은 김치, 초당두부 등이 보인다. 초당두부는 허균의 아버지인 초당 허엽이 처음으로 개발한 강원도의 특산물이다. 나의 입맛으로는 구별이 불가능했다. 시골밥상이란 어찌 보면 푸짐하고 어찌 보면 참으로 조촐해 보인다. 큰 주발에다 상에 놓인 반찬 모두를 쓸어 넣고 비비면 참으로 훌륭한 산채비빔밥이 탄생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알펜시아 평창 리조트에 위치한 호텔 인터콘티넨탈은 아담하고 깨끗하고 서비스가 일류다.
평창 리조트를 떠나 정선으로 가면서 보이는 경치가 참으로 일품이다. <정선 가는 길>이란 순진스런 길의 이름부터가 마음에 닿는다.
아름다운 강원도의 산수를 체험하면서 박수근과 윤이상이 생각남은 웬일일까? 박수근은 평생을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의 움츠린 모습만을 그렸고 윤이상은 서양에 살면서도 평생을 한국의 가락만을 읊은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이 땅과 이 백성을 신명나게 사랑한 한국의 토박이였다.
정선의 아라리 민속촌을 조용히 거니는데 <정선아리랑>이 어디서고 은은히 들려와 두리번거린다. 의연히 남아있는 초가집, 너와집, 돌집, 굴리집 주막, 초가 대장간, 굴피집 들이 아름답고 평화롭다기보다는 쓸쓸해 보이니 어쩐 일인가?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淸泠浦)가 지금도 외롭기 그지없다. 한 아이 임금이 550여 년 전 여름에 이 곳으로 끌려와서 한 해를 쓸쓸히 보낸 곳이다. 청령포엔 아이 임금의 슬픔을 보고(觀) 들으면서(音) 자라난 소나무(松)인 관음송(觀音松)이라 부르는 소나무가 이제껏 서 있는. 잔잔한 바람이 관음송 가지의 사이사이를 빠져나가면서 연출하는 슬픈 가락이 지금도 서강(西江)을 넘어 퍼져나가고 청령포를 휘돌아나가는 강물은 아직도 고운님 여읜 슬픔에 울어 소리치며 흐른다. 나는 아이 임금을 호송했던 금부도사 왕종연의 시조가 새겨있는 돌 앞에 서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여전한 더러운 세상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인다. 애잔한 물길을 뒤로 영월을 버린다.
나는 쌍문동 집을 들릴 때마다 거실에 걸려있는 넓은 <소나무 밭 그림>을 보면서 마음을 다듬었는데 이제부터는 아이 임금에 대한 생각으로 소나무 밭을 보는 느낌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더럽고 조잡해 보이는 한국농촌이 바뀔 수는 없는 것일까?
너절하게 벌려놓은 것들을 조금만 치워도 좋아 보일 것이다. 고속버스로 달리면서 내려다보는 하늘색 지붕을 덮은 시골집들이 흉하기도 하다. 군사정권의 창작이라니 그만한 것도 다행이라 여기긴 한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아도 아름다운 아일랜드의 농촌이 눈앞에 떠오른다.
제천에 닿아 대보명가란 곳에서 약초밥상을 받는다. 우선 남자가 먹는 밥의 색깔이 여자의 것과 다르단다. 무슨 약초를 넣었는지 내가 먹은 밥은 허옇고 아내의 밥은 검게 보였으니 하는 말이다. 각종 약초로 요리한 반찬들이 나오는데 맛에 둔한 나는 다름을 모르겠고 그저 이것저것으로 배를 채울 뿐이다.
낙동강이 휘감고 돌아나가는 곳에 위치한 류(柳)씨들이 모여 살았다는 안동의 하회마을은 기대와는 달리 그저 그만하고 엉성한 관광마을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시골 어디서고 찾을 수 있는 물건들을 전시하는 시장골목이 있을 뿐이었다. 경상도의 대표적인 음식은 무엇일까?
어디서고 붙여놓은 메뉴가운데는 <아구탕>이라는 것이 보이니 하는 말이다. 대구 중심가에 위치한 <비원>이란 한국음식점에서 불고기 백반을 들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노보텔에 여장을 푼다. 호텔이 깨끗하고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밤경치가 마음을 흔든다.
대구는 우리가 6.25전쟁동안 피난살이를 하던 곳인데도 눈에 익은 흔적이 아니 보이니 웬일일까?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하이웨이를 탄다. 내가 석좌교수로 재직하던 대구대학교로 올라가는 길을 조금은 알아보면서 감회에 젖는다.
한 옆에 마치 옛 날의 서낭당을 닮은 작은 납골당이 외로워 보인다. 화장한 재를 옹기에 넣어 보관하는 곳이다. 아무래도 좁은 공간일 터이니 답답하리란 생각이 든다. 나는 죽은 후 태우고 남은 재를 가까운 물에 뿌려달라고 부탁했으니 수영을 못해 평생 물과는 거리를 두고 살던 사람이라 죽은 후에라도 자유로이 떠다니며 지구촌의 여기저기를 즐기고 싶다.
신라의 뜨락을 걷는다. 온통 모조품으로 잘 꾸며놓은 천마총이란 무덤이 귀엽다. 고구려와 백제를 당나라에 팔아넘긴 신라인들의 목소리가 크기도하다. 박물관 속이 도깨비시장 같다. 빈 수레가 따로 없다. 껍질이 없어 반들반들한 배롱나무는 부끄럼을 모르는 신라인을 닮았나보다.
불국사 뜰을 걷는다. 수많은 문화재가 남아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불교의 중심이라지만 나에겐 사찰이란 모두가 거기서 거기처럼 보인다.
<모두부 김치찜>으로 점심을 들고 대왕암 울기등대를 산책한다. 바다와 수많은 해송이 어울린 오솔길이 참으로아름답다.
현대의 울산 플랜트에는 자동차가 수도 없이 널려있다. 자리를 넓게도 잡고 장사를 해먹는다는 생각이 나의 가슴을 누른다. 울산을 흘러나가는 태화강이 여느 강 같이 보여 마음이 놓인다. 90년대에만 해도 시궁창 이였던 곳이어서 하는 말이다.
해운대의 동백섬을 돌아본다. 옛날에는 섬이었는데 이제는 소나무와 동백으로 울창한 육지로 변해버린 곳이다. 버스는 광한대교를 지나고 한참을 벌벌 기어가더니 우리들을 자갈치시장에다 풀어놓는다. 영광굴비가 보기에 좋아 두 축을 사서 한 축은 연희동으로 다른 한 축은 쌍문동으로 부친다. 좋은 선물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버스는 김해를 빠져나와 진주로 향한다. 논개(論介)의 성이 주씨(朱氏)라니 진주에서 제일로 유명한 사람은 주논개인 모양이다. 진주의 <갑을(甲乙)가든>에서 식어서 맛이 그런 비빔밥을 든다. 그러나 처음으로 의자에 앉아서 먹으니 살맛이다. 진주성을 산책한다. 버스가 삼천포 대교를 지나면서 나타나는 쪽빛 바다와 다도해의 풍경이 아름답다.
보리암 가는 길을 천천히 걷는다. 절집을 찾아 산길을 오르는 경상도 권사님들이 시끄럽기도 하다. 경상도 여자들이 주차장의 건어물 좌판에 파리때처럼 몰려들어 마른 생선을 정신없이 쪼아댄다. 그중 제일로 바쁜 여자는 단연 우리 일행인 꽁치가 아닌가? 남해가 아름답다. 한번 친구들과 와서 며칠이고 골프도 나가면서 즐기고 싶은 곳이다. 남해리조트의 <morning call>이 특이하다. 전화기를 귀에 대니 아침 닭이 울어댄다.
<공자를 찾아서>를 흥미롭게 읽는다. 남극여행에서는 야스퍼스를 읽었는데 이번엔 공자의 77대손인 공석하의 소설을 읽는다.
남해를 벗어나 순천으로 송광사를 찾아간다. 송광사 주차장에서 일어난 촌극이 나를 웃긴다. 한 경상도 여인이 남자변소로 들어와서는 문이 잠겼는데도 마구 흔들다가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있구마 그러이 아이 열리제>하며 돌아나간다. 참으로 뻔뻔스런 여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불상한 여인이란 생각이 들어 눈을 감는다.
낙안읍성의 화장실이 경상도인데도 깨끗하다. 도예방에서 물건이 유난스럽게 생긴 꼬마인형을 발견하고 웃는다. <성문 앞 그 집>에서 남도정식을 든다. 반찬이 수도 없이 어지럽게 나온다. 그중 꼬막이 먹을 만하다. 차(茶)를 별로라 생각하는 나에게도 보성차밭이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 집 베란다의 보리밭보다는 못하지만 말이다. 저녁은 전남 강진의 <청자 골 종가 집>에서 남도정식을 든다. 그릇의 매스게임이 벌어지는데 먹을 것이 없다. 미리 차려놓은 밥상이라 음식이 차가운데다 간이 세니 젓가락이 가질 않는다.
유달산을 오른다. 노적봉이 낮고 다산목(多産木)이 우리를 웃기며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가 귓가를 맴돈다. 전남 담양에서 떡갈비 점심밥을 맛있게 들고 메타세코이아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을 손잡고 걷는다. 길옆에 간간히 놓여있는 벤치에 앉으니 구성진 노래가 들린다.
<Lord, Raise Me Up>을 조용히 들으며 잘 왔다는 생각을 한다. 전남 담양의 죽녹원에서 댓(竹)잎차를 들면서 조용히 속삭이는 <나뭇잎 배>라는 동요를 듣는다. 용인은 댓잎차에서 돗자리 냄새가 난다하고 나는 조용한 노래는 연못에 띄워 놓은 나뭇잎 배를 꿈꾸는 아이의 숨소리 같다고 한다. 나도 집에 돌아가면 조용한 윤이상의 고향노래를 들으면서 보리와 부추 농사를 시작할 것이다.
보릿잎이 댓잎은 아니지만 맛은 거기서 거길 것이다. 지금이 4월 중순인데 꾀나 춥고 눈발이 날리니 웬일일까? <솔잎 돌솥 밥>이 입에 닿는다. 내변산에서 채취한 산채와 곰소항의 특산물인 젓갈과 솔잎을 넣어 지은 밥은 우리의 미각을 깨워준다. 변산반도에 위치한 대명리조트가 따뜻해서 좋다. 4월의 추위를 잊어볼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부안을 떠나 전주에 닿았다. 윤지중과 권상영의 순교를 기념해 지은 전동성당이 참으로 잘 생겼다. 나는 우아한 색깔로 조화를 나타낸 모자이크 창에서 한국의 고전적인 예술의 흐름을 읽는다. 우석대학교의 한방체험센터에서 여러 가지 한약재를 섞은 후 한지로 싸서 예쁜 주머니에 넣는 실습을 한다. 이런 향 주머니를 가까이 놓아두면 몸에 이로운 여러 가지 효과를 본다는데 모를 일이다.
<호남각>에서 유명한 <전주 비빔밥>을 들고 서울로 떠난다.
종교예배당은 해방이 된 해인 1945년부터 한국동란이 일어난 해인 1950년까지 초등학교의 학생인 내가 다니던 곳인데 6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찾았다. 우리 부부는 이 예배당의 110년 역사를 기념하는 음악회에 참석해 친구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갖는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주로 아파트에 사는 서울의 초등학교학생들에게 한옥을 보여주는 교육현장으로 만들어놓은 곳인 모양이다. 구경하는 아이들로 시장판이다. 우리 부부도 아이들 틈에 끼어서 잘 지어놓은 한옥을 둘러보고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의 집>에서 비빔밥을 든다. 음식이 정갈하고 간이 맞아 우리의 눈과 혀를 즐겁게 해준다.
명동의 유네스코회관에서 관람한 난타 공연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단 다섯 명으로 구성된 팀의 연기는 관중 모두를 잡고, 흔들고, 웃기고, 감동시킨다. 완벽한 연출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이번 나들이의 마지막 이벤트로 신촌에 위치한 소극장 산울림을 찾아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이란 소극을 관람한다.
산울림은 순수한 예술작품과 질 높은 무대를 창조하는 극장이라서 찾았다. 오늘을 살아가는 늙은이들의 연극적인 언어가 아닌 평상적인 언어의 연극을 관람한다. 관객의 대부분이 노인들이고, 극 중의 연기자들도 노인들이고, 연극의 내용 또한 노인들이 겪는 일상적인 이야기라서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부담 없이 듣고, 말하고, 웃고, 생각하다가 끝이 나는 한 마당이다.
우리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고향 가는 길>을 조금씩 더듬기만 하다가 돌아온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또 가야한다. 우리들의 고향이니 어쩔 것인가?
아, 잊은 것이 있다.
우리 부부는 서울을 떠나기 전 쌍문동의 <김채선 헤어 살롱>을 찾아 한국 제일의 헤어서비스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시카고로 돌아가는 아시아나 항공에 앉아서 <Jin and Tonic Water>를 들면서 이번 <고향 나들이>의 무사(無事)를 자축할 것이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122 |
유채꽃의 향기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 원방현 | 2011.01.13 | 12643 |
| 121 | 새해의 기도/심재봉/쌍파울로 | 원방현 | 2011.01.13 | 11244 |
| 120 |
유구한 역사는 바위가 되어
| 원방현 | 2011.01.11 | 12527 |
| 119 |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산
| 원방현 | 2011.01.10 | 13971 |
| 118 |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조병화 선생님/김대호제공 | 원방현 | 2010.11.26 | 9467 |
| 117 | 조선일보 고문 [ 김대중 칼럼 ] (2010.2.21 ~ 10.3) | admin | 2010.10.10 | 17441 |
| 116 |
한문서적의 위력/정열
| 원방현 | 2010.08.07 | 12642 |
| 115 |
영혼은 먼 여행 길로/조병화 선생님
| 원방현 | 2010.07.21 | 10695 |
| 114 |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것 / 이태훈 저
| admin | 2010.06.22 | 11452 |
| 113 |
한문학습과 노년세대의 역활 / 정열
| 원방현 | 2010.05.24 | 12835 |
| » | 고향 가는 길 / 글 이인영 | 원방현 | 2010.05.19 | 9407 |
| 111 | 최근의 金大中 (조선일보 고문) 칼럼모음 | Admin | 2010.03.28 | 12188 |
| 110 | 폭설이 내리는 까닭 [1] | 신종철 | 2010.01.01 | 4171 |
| 109 |
나 돌아간 흔적/조병화 선생님
| 원방현 | 2009.12.26 | 4020 |
| 108 |
내가 시를 쓰는 것은/조병화 선생님
| 원방현 | 2009.12.18 | 4167 |
| 107 | 통학길에서/정열 | 원방현 | 2009.12.11 | 4041 |
| 106 |
영원으로 가는 길/조병화 선생님
| 원방현 | 2009.12.02 | 4405 |
| 105 |
순간의 작은 기쁨/정열
| 원방현 | 2009.12.02 | 3939 |
| 104 | ▷조심할 것 | 신종철 | 2009.11.18 | 4302 |
| 103 |
초막절/조병화 선생님
| 원방현 | 2009.11.15 | 4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