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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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 2

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이것은 라틴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91927-2014)가 2004년에 발표한 중편소설이다. 


 “아흔 살이 되는 날, 사춘기 처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나는 나에게 생일 선물로 선사하고 싶었다. 나는 유곽의 여주인인 로사 카바르카스가 떠올랐다. 그녀는 ‘새 물건’이 들어오면 단골손님들에게 알려주곤 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대는 1950년대며 장소는 콜롬비아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로사는 주인공에게 “당신은 아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군요”라고 대답했지만 그 날 밤으로 그가 원하는 물건을 얻었다고 알려준다. 


 주인공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집을 물려받아 살면서 평생 결혼하지 않고 한 지방 신문사에 고정 칼럼을 쓰면서 독신으로 늙었다. 그러나 성생활은 계속했다. “나는 돈을 지불하지 않고 여성과 동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50세가 되기까지 514명과 관계했으며 그 이후로는 숫자를 세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러나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해 가지는 위안일 뿐’이라고 이해한다. 일생 여성과 사랑에 빠져보지 못한 고독하고 불쌍한 인간인 셈이다. 


 로사가 데려온 처녀는 14세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항상 단추를 다는 여공이었다. 겁에 질린 소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로사가 미리 안정제를 먹였기 때문에 주인공이 늦은 밤에 유곽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옷을 벗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곤히 자는 아이를 깨워 몸에 손을 대는 대신 주인공은 밤새 어린 아이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샌다. 이야기는 여기부터 반전된다.


 주인공은 더 이상 색만 밝히는 늙은이가 아니다. 그는 매일 밤 유곽에 간다. 그러나 하루 종일 공장 일에 지친 아이(주인공은 그녀를 델가디나라고 불렀다.)는 항상 깊은 잠에 빠져있어서 그는 그녀의 잠든 모습만 바라보면서 만족해했다. 창녀로 유곽에 팔려온 이상 처녀의 몸에 손을 대지 않으면 그녀에게 모욕감을 주는 행위라는 로사의 조언에도 아랑곳없이.


 “이것은 내게 새로운 경험이다. 나는 일생 여인을 유혹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매일 밤 새 신부(창녀)를 골랐다. 아름다움보다는 값이 싼 쪽으로. 옷도 반쯤만 벗고  등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일을 치렀다. 어둠은 서로의 추한 모습을 적당히 가려주었다.” “그녀를 처음 본 날부터 나는 성욕을 잠재울 욕망 없이 단순히 잠자는 여인의 모습을 관조하면서 오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잠에 취한 그녀는 빛을 발하는 향기에 적셔 있었다.”


 그런 관계는 일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면서 사랑이란 남녀가 서로 몸을 비비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곁이 있으면서 상대방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족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후에 주인공은 로사를 통해 항상 ‘잠자는 미녀’였던 델가디나가 그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존경했었다는 말을 듣는다. 


 이 소설은 노년기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늙어도 사랑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


 이 소설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는 자신의 창작욕구가 소진되었다면서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설 이후 작가는 한 편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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