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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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 2

수필 독서삼매경/LA김영덕

2012.12.09 17:29

원방현 조회 수:3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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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미주동창회보 223호/2012년 11월호에 실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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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삼매경

                              - LA 김 영 덕-

 

물독 위에 떨어진 나뭇잎,

귀뚜라미 우는 소리,

그리고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어만 간다.

가을은 우수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 삼매경의 계절,

심지어는 보약의 계절, 식욕증진을 위한 설렁탕과 추어탕의 계절,

고향방문단과 결실의 계절 등등이 아닐 수 없다.

 

삼라만상이 변하고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간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는 조용히 소리를 죽이고 만물을 영글게 한다.

가을은 이러한 결실, 수확과 더불어 사람의 마음을 소슬하게 하는 속성을 지닌 것 같다.

 

1930년대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의 저자 T.울프는

인생은 야만스럽고 잔인하며, 고상하고 정열적이며,

고통스럽고 즐겁고 또 그 이상이나,

인생을 진실하고 아름답게 그려 보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인생을

나 스스로

진실하고 아름답게 미화시키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다.

 

가을은 우리에게

사색의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 주며 독서욕을 일으켜 준다.

옛날과 달리,

요사이 독서에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감각한 나마저도

독서 삼매경이 되어 몰아의 경지에 빠지게 되었다.

 

최근 때를 같이 하여 평소 존경하던 선배 한 분이

마침 한학과 한시에 몰입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뵈었다.

이태백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이 시에 대한 해석과 설명을 자세히 해 주셨었다.

 

집에 돌아와 몇 시간에 걸쳐 그 시를 외우고 음미하여 보았더니

갑자기 유식해진 것 같고 당나라 시에 대해서 해박을 넘어 황홀감에 빠져들어 갔다.

 

독서를 통한 아름다운 마음과 쾌락을

독서 삼매경에 몰입지 않아 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는지…….

 

이제, 이름 있고 좋다는 책들은

처음이던, 과거에 읽었던 것에 상관하지 않고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순간에도 내 곁에는 몇 권의 책이 대기 중에 있다.

문文을 숭상하던 우리 옛 선조의 뜻을 다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법과대학을 들어오게 된 동기도

법을 공부하여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겠다기보다,

사회규범의 기초요 단순히 출세지향주의 사고에서 기인되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저 학년 시절에는 법학서적 보다

일반 교양과목 위주의 서적과 많이 접촉하였다.

 

법대 도서관은 고시공부방이었으므로

나는 문리대 도서관을 자주 애용하였다.

 

그곳에는 다양한 서적들이 많아

독서 삼매경에 더 몰입 할 수 있었다.

 

그 당시를 회고하여 보건데,

책도 많이 읽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가장 훌륭하게 보였다.

청계천의 헌책방을 뒤지는 일이 즐거움의 하나였고,

책을 읽으면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도 사라져 좋았다.

 

나의 동숭동 학창시절,

독서 삼매경에 큰 영향을 준 또 하나는 학생동아리 ‘사회법학회’였다.

 

당시에도 무슨무슨 학회니 하는 이름의 여러 학생동아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의 주제는 독후감 발표와 토론이 중심이었으니

자연 독서에 열심히 하게 되었다.

 

상급학년이 되면서 장래의 진로를 재정 또는 경영 쪽으로 정하였다.

그러하기 위해서

미국에 유학 와 그 방면의 선진 학문과 기법을 습득후 귀국함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영어 공부와 원서에 매달리게 된 동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법학과 졸업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사법시험에 필요한 지식 이외는 다른 분야에 약하다는 점이고,

타 학과 졸업생들보다 외국어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불행이거니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되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광범위한 독서와 영어실력의 연마라는 점에서

나의 한국에서의 대학 시절은 일단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인들이 피상적으로는 파티만 즐기고 퇴폐적인 국민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잠시도 무엇이든 읽지 않고는 못 견디는 국민임을 알게 된다.

 

일본 대·소도시의 서점이나 도서관을 가본 사람이면

그들의 독서열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우리 조상은 가을 귀뚜라미 소리를 벗 삼아

호롱불 아래 독서 삼매경에 몰입해 왔다.

이러한 조상의 아름다운 마음과 슬기가

후손의 핏속에 흐르고 있음을 가슴 뿌듯하게 느껴본다.

 

가을이 다 가기 전

다시 한 번 독서 삼매경이 되어 몰아의 경지에 빠져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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