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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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학창시절/김영덕

2013.06.19 00:00

원방현 조회 수:3365

나의 학창시절

(서울대 미주동창회보 5월호에 실린 수필)

                                                                                                김영덕

 

일찍이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셀리Shelley는 ‘지나간 생각’이라는 시에서

 

 '여름철의 자취보다도 빠르게/

젊은 날의 기쁨보다도 빠르게/

행복스런 저녁보다도 빠르게/

그대는 오솔길로 가고 말았다'고 읊었다.

 

나의 젊은 대학생활, 셀리의 시에 표현된 것처럼 빨리 지나갔다. 그러나 내가 이처럼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육법전서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나 교양과 낭만으로 꽃핀 대학생활의 참맛에 도취했고 또 4·19와 5·16혁명이라는 민족의 어려운 시기에 값진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리다.

 

나의 학창 생활은 인생의 고민과 시험 및 고시공부에 찌든 가운데서도 놀이욕구와 낭만을 맛볼 기회도 있었다. 독일말로 대학 생활에 있어서 3가지 EN(Studieren, Lieben, Trinken)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학창 생활의 참맛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 문제는 어떻게 ‘낭만적으로 생산적으로 잘 노느냐’는 것이다.

 

나의 대학 1, 2학년 시절의 놀이는 음주, 문화예술, 과외활동 그리고 연애로 요약될 수 있다. 인생이 이유 없이 괴롭고 강의가 없거나 공부가 잘 안되는 날이면 이화동 막걸리 주막에서 벗들과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고전음악과 영화감상은 그동안 대학입시준비로 허기진 문화예술에의 욕구를 채우는 양식이었다. 부족한 음악상식을 채우기 위해 종로 2가에 있는 고전음악 감상실 ‘돌체다방’에 매일 둥지를 틀었다. 먼저 점심을 거르고 아낀 돈으로 차 한 잔을 시켜놓는다. 그리고는 온종일 듣고 또 들었던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콮스키 등 거장들의 교향악과 ‘카르멘’, ‘나비부인’같은 오페라의 감미로운 선율을 듣는다.

 

또한, 그 당시 대학생들의 최대 오락이었던 영화감상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제목과 스토리, 명배우와 명감독, 주제가 등을 줄줄 외우지 못하면 축에도 끼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고교 시절, 영화관람 불가 학칙과 공부하느라 못 보았던 영화를 한꺼번에 만회하느라 매일 밤낮없이 싸구려 변두리 극장을 찾기까지 하였다. 오드리 헵번, 잉그리드 버그만, 윌리엄 홀덴, 클라크 게이블 등 순정파 연인들 그리고 영원한 우상들은 아직도 내 마음속 스크린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과외활동도 교내, 교외 모두 활발히 참여하였다. 법대신문 주간으로 1년간 봉사하였다. 학교강의를 들으면서 기사취재, 원고작성은 물론 교수와 대담 및 학생활동의 보도까지 분주히 뛰어다녔다. 특히, 3학년 초, 3·15 대통령 선거부정 사건이 도화선이 된 4·19혁명의 기사특집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또 대의원회 부회장으로 바쁜 학생활동도 기억에 남는다. 교외활동은 타 대학 학생 간의 친목과 학생운동을 위한 동아리를 만들어 유대를 공고히 한 것과 그 동아리에서 만난 여자대학생과 추억에 남을 첫 사랑을 꼽을 수 있다. 잊지 못할 첫 사랑을 잊기 위하여 몇 해 전 한국에 나간 기회에 만날 수 있었다.

 

나의 학창 3, 4학년 시절은 경제가 좋지 않고 사회가 불안하여 학원가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대학 3학년 되던 해 봄, 3·15 대통령선거 부정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열 살, 스무 살의 젊은 학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총 궐기하였다. 그들의 젊은 피, 깨끗한 피, 뜨거운 피를 뿌린 대가로 부정, 부패를 몰아내고 4·19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젊은이들 가슴속에 아로새기게 했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학생혁명으로 덕 본 무능정권의 탄생은 다음 해 5·16군사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5·16을 맞으면서 나는 다시는 상아탑 속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으며 도도한 세파의 탁류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는 시대의 격동기 속에서 가지가지의 험난한 체험을 겪으면서 허둥지둥 대학 생활 중 중요하다는 3, 4학년을 보낸 셈이다. 학교강의 청강, 취직시험준비와 악착스런 씨름 하는 동안 이른바 ‘질풍과 노도(Sturm und Drang)’의 시대는 어느덧 지나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보다 지나온 세월이 더 많은 지금, 나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건데, 그때의 여건에서는 나름대로 보람찬 대학생활을 하였다고 자부한다. 지금까지 내 모든 성취의 기쁨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접어 두더라도, 4년간의 동숭동 학창시절은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결정짓고 예인曳引해 온 그 무엇이었음은 분명하다.

 

‘여름철의 자취보다도 빠르게/

젊은 날의 기쁨보다도 빠르게/

행복스런 저녁보다도 빠르게/

그대는 오솔길로 가고 말았다’는 시가 맞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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