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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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 2

문집 정열의 영전에/김명렬

2014.09.10 19:29

원방현 조회 수:1576

정열(鄭烈)의 영전에

 

열아,

네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니 이게 웬 말이냐?

우리가 만난 것이 바로 엿새 전 아니냐?

 

그날 아침 상태(相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투석을 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네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네가 투석을 시작했을 무렵 내가 너와 통화했을 때

너는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것 같다면서

희망적인 전망을 말하였기에

상태가 전한 소식에 적이 놀랐지만

며칠 전서부터 많이 호전되어

문병객을 맞을 수 있다 하여 괜찮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날 고맙게도

병학(炳學)이가 거동이 불편한 상태를 위해

자기 차를 이 먼 수지(水枝)까지 보내 주어서

나도 편승해 같이 갔던 것이다.

 

가서 병상에 누어있는 너를 보니까

얼굴에 약간의 부기가 있고 벌겋게 홍조가 있었지만

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 도착한 후

곧 간호원이 들어와서 혈압과 체온을 쟀을 때에도

이상이 없다하였고

또 수액도 더 이상 맞을 필요가 없다면서

주사기를 뽑아 가는 것을 보고

이제 다 나아간다고 생각하였다.

 

너도

“처음 입원해서 며칠간은 원인을 찾느라고

여러 가지 검사만 하더니

이제는 투약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치료를 하는가 보다.”


하면서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

우리도 안심하고

한 시간여 동안 평소 같이 노닥거리다가

 

“어서 툭툭 털고 나오라.”

는 인사를 남기고 헤어졌다.

 

그런데 오늘 오후

상태로부터 너의 부음을 들은 것이다.

 

이렇게 날벼락 같을 수가 있는가?

이렇게 허망할 수 가있는가?

 

처음으로 죽음이 정말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 앉았던 나는

어렸을 적 너의 모습을 떠올리며

너와 나의 관계를 되짚어 보았다.

 

중학교 때,

너는 시쳇말로 스타 학생이었다.

 

단정하고 청수(淸秀)한 용모에

명석한 두뇌까지 겸비한 너는

모든 선생님들의 총아였고

모든 동급생들이 인정하고 쳐다보는

모범생이었다.

 

나 같은 범상한 학생은

멀리서 너를 선망할 뿐이었다.

 

나도 문예반을 들락거리기는 했지만

인연이 안 닿았는지,

너하고 함께 활동한 기억은 없었다.

 

또 대학도

같은 학교에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너와 교유한 적이 없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우리는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재작년 겨울이던가?

상태가 너와 자주 만나는데,

너는 지금도 학구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며

자기발전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칭찬하면서

나도 같이 만나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나는 물론 좋다고 하여

셋이 한 달에 한 번 씩 만나

점심과 차를 같이 들면서 담소를 즐기게 되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너는 영국에서 오래 근무하여

그곳의 제반 사정에 밝았는데,

상태도 영국서 공부한 아들이 거기 눌러 살고 있고,

나는 전공 상 그곳에 대해

조금 아는 편이기에 영국에 관한 애기를 많이 했다.

 

또 너는 퇴직 후에

한문 서당에 다녀서 한문을 공부하여

한적(漢籍)을 읽는 데에 취미를 붙였고,

상태는 붓글씨를 열심히 쓰고 있었으며,

나는 당시(唐詩)를 좋아하고 동양고전에도 관심이 있어

조금 읽은 바 있어서

한문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나는 너를 통해

19세기 우리나라에 홍길주(洪吉周)이라는

걸출한 문장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네가 주를 달아준 그의 글을 받아

내 짧은 한문 실력으로

자전을 찾아가며 읽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글에 대한 감상을 교환하면서

동호인의 기쁨을 나누기도 하였다.

 

너는 동일한 개념에 대한

한중일 삼국의 한자표기가

서로 다른 것이 많은 점에 착안하여

비교한자에 관한 글을 써서 내게 일독을 청하였다.

 

나는 곧 읽어보고

그런 연구의 중요성에 공감하였고,

내용을 좀 더 확충해서

논설문으로 발표할 것을 권하였다.

 

네가 그렇게 고쳐 쓰면

관심 있는 많은 독자가 읽는 잡지에

추천을 할 생각이었다.

 

그 만큼 너의 글은

학구적이고 진지했던 것이다.

 

그 밖에도 한자와 중국어 공부에 대한 글이며,

너의 회고담이나 가족에 관한 글들도

네가 올리는 것을 나는 다 읽어 보았다.

 

너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지만,

정당한 비평은 기꺼이 수용하는

공정성을 잃은 적은 없었다.

 

네 글에 대한 나의 하찮은 논평을

너는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내가 혹 어떤 부분은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지적할 때도

너는 그것을

선선히 수용하는 금도(襟度)를 보여 주었다.

 

자기의 글에 대한 비평을 수용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도 조금 알기에

너의 이런 아량 있는 태도에 나는 감동했고,

거기서 너의 높은 인품을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 셋은

서로 만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매우 즐겁고 유익한 모임을 가졌는데

상태가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모임이 중단되었었다.

 

그러다가

상태가 좀 나아져서 다시 나오게 되자,

이번에는 네가 투석을 시작하면서

또 모임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오늘 네가 이렇게 허망하게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니

이제 영구히 못 모이게 되고 마는구나.

 

동창 중에는 너와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들,

졸업 후에도 늘 가까이 한 친구들도 여럿 있을 것이고

그들이 너를 잃은 슬픔은 나보다 훨씬 더 할 것이다.

 

그런데 너와 교유한 기간이 일천한 내가

이런 애도의 글을 쓴다는 것에

중뿔난 느낌이 없지 않으나,

너의 졸서(卒逝)를 아무 표시 없이

속으로만 삭이기에는 내 가슴에 드리운 애석함과

상실감이 너무 크구나.

 

열아,

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수려한 용모와 깔끔한 몸가짐, 등

외양으로도 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지만,

그보다 내면적으로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너는 늘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걸으려 노력했다.

세파에서 벗어나 수행이나 하는 종교인에게도

그런 삶의 태도를 지키는 것이 지난(至難)한 일인데,

너는 속세 중에서도

가장 세속적인 기업이라는 조직체에 있으면서

그것을 견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어려움과 고통이 어떠했는지 나는 모르나,

그것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너는 필경 수많은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졸업 후 반세기가 지나

내가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너는 여전히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높은 이상을 향한 눈길이 흔들리지 않는

중학교 때의 모범생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모두 미약한 존재들이다.

젊어서는 정의롭고 숭고한 이념에 맞춰 살기로

모두 작정을 하지만,

성자나, 목숨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영웅이 아니고는

그런 삶의 방식을 평생 관철하지 못한다.

 

그러나 꺾이고 무너지는 것이

어차피 인간의 조건일진대

그런 것들은 크게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다.

 

우리를 정말 부끄럽고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한 두 번의 좌절 다음에

신념을 쉽게 버리는 것이다.

 

실패하고 패배해 쓸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새로 시작하는 사람에서 인간의 존엄성 보듯이,

원칙을 지키려다 좌절하고 난 후에도

다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의지에서

우리는 정신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다.

 

내가 앞서 말했듯이,

너는 분명 너의 원칙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을 겪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끝내 그 의지를 온전히 지켜냈던 것이다.

 

내가 너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이런 뜻에서이다.

 

내가 육십 줄에 들어 설 때

한 선배가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늙으면 독선과 아집으로 고집불통의 인간이 되거나,

나이를 핑계 삼는 게으름뱅이가 되기 쉽네.

그런 것을 지적해 줄 사람으로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에 안계시고

집안에서는 자기가 어른이라 아무도 감히 말 못하네.


그것을 말해 줄 사람은 친구 밖에 없네.

그래서 늙으면 책선(責善)해 줄 친구가 필요하다네.”

너는 나에게

말없이 이런 책선을 해 주는 친구였다.

 

나도 살면서 몇 개의 작은 원칙을 지키려고 하였다.

나는 세파에서

어느 정도 보호된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서

평생을 지냈기 때문에 너 보다 훨씬 유리한 처지였지만,

그런 나의 의도는 여러 번 좌절됐고

그로 인해 나의 원칙들은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학교에서 정년하고 칠십도 넘기고 나니까

이런 만신창이가 된 것을 지킬 가치가 있나 의문도 들었고,

이제는 그런 고민은 하지 말고

편히 살자는 안이한 생각도 들었다.

 

그때 너를 만나 옛날과 조금도 변함이 없는

너의 의연한 모습을 보았을 때

해이해진 나의 정신 상태를 돌아보고

새롭게 마음을 추슬렀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정년하면서 전공 책을 노면서,

그동안 못 읽었던 전공 이외의 책을 읽겠다고 작정했었다.

 

그러나 집중이 잘 안되고 눈이 잘 안 보인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워 실제로 읽은 것은 얼마 안 되었다.

그런데 퇴직 후 한문을 배워

꾸준히 공부하는 네 모습은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너는 나를 비춰보아

부족한 점을 발견하는 맑은 거울이었다.

너를 잃은 것은 내게는

이처럼 소중한 귀감을 잃은 것이요,

세상은 소금 노릇을 할 귀한 인재를 잃은 것이다.

 

그런 네가

정녕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났다 하니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겠구나.

 

잘 가거라,

아름다운 친구야.

 

네가 믿는 여호와는

지상의 작은 참새 하나가 떨어지는 것도 본다 하였으니

너의 아름다운 영혼을 처음부터 지켜봤을 것이고

너를 위해

벌써 하늘나라에 영광된 자리를 마련했으리라고 믿는다.

 

이제

모든 괴로움이 없는 그곳에서

가없는 복락을 영생토록 누리거라.

 

2014년 8월 25일

김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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