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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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정다운 옛 고향/ LA김영덕

2014.11.29 01:10

원방현 조회 수:1354

        정다운 옛 고향

김 영 덕


나는 항상 고향이 과거와 현재, 

두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한국에 살면서 여러 곳을 다니며 살아왔지만, 

초등학교 3년과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고 

2년여의 직장 생활도 했던 서울이 첫 번째, 옛 고향이다. 


유학와 직장얻어 지금까지 사는 이 미국땅, 

특히 아이들을 길렀고 39년째 있는 로스앤젤레스가 

두 번째, 지금의 고향이다. 


이 두 곳은 

내게 있어 항상 마음속의 고향으로 느껴온 정다운 고향이다.


8·15해방이 되어 온 국민의 열광된 기쁨도 잠시, 

남·북한 지도자들의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3·8선이 생기게 되어 

분단국으로 나누어 졌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아버님의 직장 때문에 

해주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다. 

북한 공산당원과 소련군의 횡포와 만행이 

점차 자행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뜻있는 사람이 그랬듯이, 

우리 가족도 부모님의 고향인 개성을 향하여 월남하기로 하였다. 


북한 감시병의 눈을 피하여 

한 밤중, 거금을 주고 빌린 조기잡이 어선으로 

목숨 걸고 성난 파도를 뒤집어쓰면서 피난 나왔다. 

(6·25전, 개성은 3·8선 바로 아래 남한이었다)


개성을 거쳐, 서울로 내려와 

한국은행 관사 촌이 있었던 후암동 삼광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아버님의 직장을 따라 대구, 부산, 여수, 목포, 전주, 광주를 거치며 

6년여 만에 서울에 올라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새롭고 높은 건물들이 많이 생겼지만, 

지금 가 보아도 서울의 옛 동네 거리 하나하나는 

모두가 그립고 추억어린 고향길이다. 


꿈 많고 즐거웠던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서울이 바로 고향이 아니겠는가?


서울생활 10여 년 후, 

만 스물여섯이 되어 유학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 서북부의 오레곤 땅을 처음 밟았다. 


낯선 타국에서의 배움과 삶은 쉽지 않은 고생이었다. 

요사이처럼 한국의 위상제고로 돈 갖고 유학 오고, 

이민 오는 ‘유학생’, 또는 ‘이민’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청운의 꿈을 품고 

돈 없이 온 학생으로 미국생활을 시작하였다.


낯설고 물 설은 ‘남의 땅’에서 

공부와 삶의 보람을 찾았고 

새로운 ‘꿈’을 키워 나아갔다. 


결혼하여 딸 둘 낳고, 

경영학 학사(BBA)와 석사(MBA)를 획득하고 

40 여년의 은행생활도 마감하였다. 


회고하여 보건데, 

모두가 개척의 연속이었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이었다. 


그렇게 오레곤과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로스앤젤레스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열심히 정신없이 바삐 

앞만 보고 달려온 추억의 미국 생활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도 많이 들었다. 

정들면 고향이 따로 없다는 옛말이 다 맞는 것 같다. 


친구가 귀국해도 나는 미국이 좋다고 여태껏 살고 있다. 

나의 청·장년기를 보낸 로스앤젤레스에서의 내 인생 39년이다.


나이 70에 은퇴를 하고 보니, 

나의 원래의 고향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옛사람이 그립고, 

친구와 친척이 보고 싶고, 

눈에 익었던 이곳 거리와 환경이 

어느 날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더 늙기 전, 서울로 돌아가 

동족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재 작년봄, 

제주도 관광후 서울에 올라갔다. 


어머님과 동생들과 

오랜만에 못다 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또 정다웠던 친구를 만나 놀러 가고 

흉금도 터놓고 의견을 나누니 

긴 세월 동안 못 보았던 시간의 간격이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처음의 고향인 서울로 와 살면, 

이곳 미국에서 기반 잡고 사는 우리 애들과 

손자·손녀들은 어떻게 하나? 


이렇게 하기도, 

저렇게 하기도 결정하기 힘들다. 


또 연로하신 어머님을 못 모시게 되는

불효함에 대한 하소연은 누가 들어 줄 것인가?


그해 초 여름, 

어머님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급히 서울에 갔다. 


서울에 다녀온지 두달만의 고국방문이었다. 

요양원으로 어머님의 병문안을 동생들과 함께 자주 갔다. 


처음 뵐 때는 병세가 심각했었으나 

며칠 지나니 다행히 차도가 좋아지는 듯 싶었다. 


그러나 얼마후, 

어머님의 임종을 지켜 볼 수 있었다.


마침, 

매월 첫 월요일에 만나는 법대 58학번 모임 중 하나인 

다사多士회 모임이 있다는 연락과 회장의 초청도 있기에 참석하였다. 


동기 중의 재사才士들이 다 모인 곳이니 

꼭 참석하고 싶었다. 

모두 다 반가운 동기들이 아닌가? 


어찌하다 나만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30여명의 많은 동기생이 모여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정다운 친구들이 많았으며, 

얼핏 알아보기 어려운 벗들도 있었다. 


모두가 

1958년 이화동에서 시작된 인연들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 듯했다. 

작년에 입학 55주년이었으니, 

길고도 빠른 세월, 

이화동은 ‘300의 인연’을 만들어 준 추억의 보금자리가 아닌가!


그 자리에 정다운 옛 고향이 기다리고 있었다.

길고도 긴 세월 동안 찾아다니던 고향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포근함이 있었고, 깔깔거림이 있었고, 

언제나처럼 분주함이 있었다. 


모두가 그리운 추억이었고 

학교 떠난 지 50여 년의 긴 세월을 단축하는 듯싶었다.


바로 그곳에 

내 정다운 고향이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동기의 정 있는 곳, 

바로 그 자리가 내 마음의 옛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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