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4 18:34
<詩를 읽자구요33>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깎아주자”
미당의 마지막 작품은 85세에 쓴
「겨울 어느 날의 늙은 아내와 나」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1년 10개월 전인 1999년 2월에 쓴 것입니다.
오랜 가난에 시달려 온 늙은 아내가
겨울 청명한 날
유리창에 어리는 관악산을 보다가
소리 내어 웃으며
“허어 오늘은 관악산이 다 웃는군!”
한다.
그래 나는
“시인은 당신이 나보다 더 시인이군!
나는 그저 그런 당신의 대서(代書)쟁이구····“
하며
덩달아 웃어본다.
< 「겨울 어느 날의 늙은 아내와 나」 전문, 1999.2.3.>
만년의 미당은 아내를 끔찍이 보살폈습니다.
자신도 몸이 그다지 건강하지 않으면서
병석에 누운 아내를 여러 해 돌보면서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시를 못 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깎아주자.
발톱도 또 이뿌게 깎아주자.
훈장 여편네로 고생살이하기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아내 손발의
손톱 발톱이나 이뿌게 깎아주자.
내 시에 나오는 초승달같이
아내 손톱 밑에 아직도 떠오르는
초사흘 달 바래보며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 「늙은 사내의 시」 전문 >
미당은 2살 아래인 방옥숙 여사와
만23세 때 결혼을 했습니다.
쩔쩔 끓는 피를 감당치 못하고
좌충우돌하며 방황과 기행을 일삼던 아들을
집안에 묶어두기 위해
부친이 서둘러 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우물가에서 김칫거리를 씻고 있는 그애를
사랑방에서 생솔가지 울타리 사이로 보아하니
어떻게나 찬찬히는 고부라져 씻는지,
어떻게나 거듭거듭 깨끗이는 씻는지,
그만하면 쓰겠어서 定婚해 버렸다.
그러나 아뭇소리 말고 장가들 작정을 해라.
내 아버지는 내 아내 가음을 이렇게 고르셔서,
그것이 맞나 안 맞나를 占치기 위해
나는 화투로 패를 한번 떼어 봤더니
空山 넉 장도 자알 맞아떨어지고,
홍싸리 넉 장도 잘 맞아떨어졌노라.
空山달은 님이요, 홍싸리는 뚜쟁이니,
이 색시를 얻으라는 괘가 분명했노라.
········
< 시집 『잊히지 않는 일들』 중 「나의 결혼」 >
팔 할이 바람으로 차 있는,
자유분방한 미당을 남편으로 섬기면서
방여사의 마음고생도 컸을 것입니다.
50대 중반에 쓴 미당의 시
「내 아내」입니다.
만년의 미당은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듯합니다.
나 바람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襤褸)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 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 「내 아내」 전문 >
2000년 미당 내외는
2개월 터울을 두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방여사가 10월에 먼저 가고,
미당이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방여사가 별세한 후
미당은 곡기를 끊고 맥주로 연명하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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