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한국어

글모음 2

<시를 읽자구요34> 

신우재 시인이 보내는 글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봄에 취하고 꽃에 취해서 

마당과 들판을 서성대다가,

또 벗들과 

모처럼 봄맞이 나들이를 갖다 오느라 

배달을 오래 걸렀습니다.

 

오늘은 

미당의 시 이야기를 잠시 뒤로 미루고 

봄과 꽃 쪽으로 시선을 돌려볼까 합니다.

 

애기똥풀이란 꽃을 아시나요

이름은 흉악하지만 꽃은 아주 귀엽습니다.


이름만 알고 꽃은 본적이 없는 분도 있고

꽃은 보았는데 그 이름을 모르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봄철 전국의 들판에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들꽃입니다.

 

시인 안도현(安度眩,1961 경북 예천출생)은 

주로 지방에서 살았는데,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애기똥풀을 몰랐답니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시 애기똥풀」 전문 >

 

김춘수는 그의 시 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꽃 이름을 아는 분에게는

애기똥풀이 존재하고

모르는 분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인이란 자가 

애기똥풀 이름도 모르고 산 것을 개탄했던 안도현은

그 후 들꽃에 관한 시를 많이 썼습니다


그 중 제비꽃에 대하여는 

제가 어쩌다 야생화 강사로 연단에 설 때 

즐겨 인용하는 시입니다.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시 제비꽃에 대하여」 전문 >

 

제비꽃이나 애기똥풀이나 우리 주위에 흔한 꽃이지만

일상의 바쁜 걸음은 늘 그것들을 지나쳐버립니다

이 땅의 사람들 대부분은 

아스파트 정글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삶을 마감합니다.

 

윤중목 시인의 

아스파트도 자연이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내가 문득 연애시절을 돌이켜

내가 했다던 말끝을 꼬집고 나선다.

글쎄아스팔트도 자연이랬다고.

그런 비상식적 궤변이 어디 있냐고.

비상식이든 숫제 아주 몰상식이든

허나 내 육골의 성분이 그러한 것을.

유년과 소년과 청년시절 모두를

도시의 아스팔트 새까만 타마구 속에

어느덧 중년인지 장년인지까지도

고스란히 파종해 심어버린 나에겐

그 거북이 등딱지 같은 아스팔트가

사시사철 내 밑둥이 뿌리박고 흡수한

무기질 토양이요 거름이자 양분인 것을.

수수십 년 그 위를 찍고 지나간

사방팔방 신발자국과 타이어자국이

내 발육과 성장과 이제는 노화까지의

(과정 다큐멘터리 생태화석인 것을.

그래서 아스팔트도 자연이다.

때론 비극적으로때론 희극적으로

그래서 내겐 아스팔트도 자연이다.

 

시 아스팔트도 자연이다」 전문 >

 

저의 시 배달을 받아보는 분들 중에서 

마음속으로 왜 시를 읽자는 거야고 

묻는 분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안도현의 시 제비꽃에 대하여에서 

제비꽃 대신에 를 넣으면 

조금은 그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시를 알아도 시를 몰라도 인생은 굴러갑니다

오늘날 시는 제비꽃처럼 

사람들의 관심과 무관심의 경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에 

봄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꽃 한 송이를 피워두고 가듯이,


줄달음만 치는 세상에서 

잠시 허리를 낮추어 시를 읽는다면

세월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무언가 귀한 것을 주고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