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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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문 랜드 런/김세신

2015.04.18 23:35

원방현 조회 수:412

랜드 · 런( Land - Run )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1889년 3월 22일 정오,

騎兵隊 將校가 권총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탕' 소리와 함께 전력 질주.

말이나 마차를 타고

곳곳에 마련된 출발장소를 뛰쳐나간 사람은 5만 명.

 

광활한 대지가 흔들렸다.

무엇이 사람들을 내달리게 했을까.

 

두 가지다.

땅(土地)과 先着順.

 

먼저 깃발 꽂는 자에게

원하는 땅을 내준다니

죽어라 달릴 수밖에.

 

1인 당 160에이커,

즉 19만 5,870평씩 불하된 토지의 가격은

공짜나 다름없었다.

 

미개척지 불하정책의 근거는

1862년 링컨 대통령이 만든

홈스테드法(Homestead Act).

 

 

늘어나는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동북부 산업자본의 공산품수요기반을 조성하며,

서부개척을 촉진한다는 다목적카드였다.

 

홈스테드법의 첫 실행대상은

오클라호마 일대 188만여 에이커.

 

1만 2천여 가구가 땅을 얻었다.

마지기 당 쌀 생산량을 200kg

(2004년 한국 평균은 449kg)으로 잡아도

가구 당 1,360섬(19만 5,840kg, 80kg들이 2,448가마)의

소출을 낼 수 있는 농지를 얻은 꼴이다.

 

백인 정착민이 천석꾼 이상의 꿈을 안고

기름진 땅을 향해 달린 랜드 · 런의 裏面에는

귀한 목숨과 살던 터전을 빼앗기고

학살당한 인디언의 비극이 깔려있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랜드 · 런으로 불하된 땅은

남한 면적의 33배 규모인 약 2억 7,000만 에이커.

200만 명이 혜택을 받았다 한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 企業農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대단위로 시작한 농장은

합병을 거치며 덩치를 불렸다.

 

문제는

처음부터 질주에 맛들인 습성과 식욕이다.

 

랜드 · 런은 살아 있다.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미국 농업의 '월드 · 런',

혹 '코리아 · 런'이

대기 중인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