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냇 터너의 반란/정유석 제공

2017.07.26 11:29

원방현 조회 수:16

[정신건강 에세이]

 냇 터너의 노예 반란 

 

 냇 터너(Nat Turner, 1800-1831)는 미국의 흑인 노예였다. 1831년 버지니아 주 사우스햄턴에서 흑인 무장 반란을 주모했었다. 당시는 아직 남북전쟁 전이어서 노예제도가 미국에서 관습으로 인정되던 시절이었다.

 

 그는 1800년 사우스햄턴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터너란 소유주의 성이었으며 냇이란 이름도 주인이 지어주었다. 친 부모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아마도 아버지는 노예를 면하기 위해 터너 농장을 탈주하여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로 이주한 듯하다. 냇이 유아였을 때 어머니는 그가 일생 노예로 살아갈 운명이란 사실을 참지 못해 살해하려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탄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의 'Beloved'를 읽어보아도 이런 형태의 영아 살해는 당시 흑인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았던 것 같다.

 

일생 사우스햄턴 지역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흑인 인구가 백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이었다. 어려서 머리가 좋아서 다른 아이들보다 사물을 빨리 배우는 아이였다. 글을 읽고 쓰는 것도 혼자 배웠다. 신앙에 깊이 빠져서 자주 금식기도를 하고 성경 읽기에 몰두했다. 그가 일생 사랑했던 구절은 ‘너희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마태 6;33)이었다.

 

 그는 환상을 보기 시작했고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라고 믿었다. 나이가 들수록 환상에 대한 신념은 굳어졌다. 22세에 농장에서 도망한 적이 있었는데 한 달 후에 자진해 돌아오면서 성령의 지시에 따랐다고 공언했다. 그는 노예들 사이에서 자주 예배를 인도하면서 성경을 가르쳤다. 그들은 그를 ‘예언자’라고 불렀다.

 

 1828년 초에 “위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능자의 손에 의해 안수 받았다” 라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해 5월 냇은 하늘에서 나는 큰 소리를 들었다. 눈을 들어 보니 성령이 강림하고 있었다.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악마인 뱀이 풀렸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위해 매었던 멍에를 내려놓았다. 냇은 그 멍에를 메고 뱀과 싸워야 한다. 처음 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이 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에 대항하는 흑인들의 반란에 하나님에 의해 그가 지도자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메시아라고 믿었다.

 

 1831년 초부터 노예 소유주에 대한 반란을 시작하라는 사인이 천체에서 내려온다고 생각했다. 4월 13일 일식이 시작되자 태양을 가리는 검은 점은 흑인의 손이 세상을 지배하라는 계시라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거사 날을 정했다.

 

 반란은 소수의 노예들을 데리고 시작했다. 사우스햄턴에 있는 농장들을 하나씩 습격하여 백인들을 살해했으며 동조자들이 늘어서 70명 이상의 노예와 자유 흑인(노예 지위에서 해방되었던)들이 가담했다. 그들은 들키지 않으려고 총포 대신 칼, 도끼, 농기구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백인들을 죽였고 나중에는 탈취한 총포도 사용했다. 그들은 백인이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살해해서 사망자의 숫자가 50명이 넘었다.

 

 백인으로 구성된 민병대와 소집된 군인들에 의해 반란은 불과 이틀 만에 진압되었다. 터너는 두 달 동안 숲속에 숨어 지냈으나 발각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시체에서는 목이 잘렸고 사지가 절단되었다.

 56명의 흑인들이 재판을 받았고 그들 중 19명이 사형을 받았으며 12명은 다른 주로 노예로 팔려갔다. 반역에 대한 반동으로 분개해 일어난 민병대와 백인 폭도들은 약 2백 명의 흑인들을 살해했다. 대부분은 반역과 상관없던 사람들이었다. 버지니아와 남부 주 의회에서는 노예들과 자유 흑인들의 집회를 제한했으며 무기 소지 권리와 선거권을 박탈했다. 흑인 교회에서 백인 목사가 설교하게 강요했다.

 현대 정신의학의 관점으로 볼 때 광신적이었으며 환각을 자주 경험한 냇 터너는 심각한 정신병 환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 흑인들은 교육을 받지 못해 무지했으며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노예 상태에서 원시적이고 토속적인 신앙생활을 한 점으로 보아 섣부른 결론은 피해야 한다.

 

 남북전쟁 후 그에 대한 동조자가 늘어났으며 20세기에 들어 학교에서도 냇 터너에 대해 교과서에 언급하면서 가르치게 되었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2 맹인의 등불/정윤표 원방현 2017.09.18 12
431 종교와 관계없이/박해수 원방현 2017.09.18 14
430 국운(國運)이 쇠(衰)하면/이호식 원방현 2017.09.18 13
429 역사의 수레바퀴 원방현 2017.09.18 12
428 탈무드 이야기/김병학 제공 원방현 2017.09.10 25
427 심훈 시비 제막식 기념사/심천보 원방현 2017.09.08 11
426 카라바조의 생애/정유석 원방현 2017.08.30 15
425 풀꽃 시인의 인생/김세신 제공 원방현 2017.08.05 15
424 사냥 남자와 동굴 여자/정유석 원방현 2017.08.02 19
423 8가지 잘못/이무일 제공 원방현 2017.07.31 31
422 흘러가는 물도/김세신 제공 원방현 2017.07.30 13
421 맥아더/이호식 제공 원방현 2017.07.29 15
» 냇 터너의 반란/정유석 제공 원방현 2017.07.26 16
419 인생의 짐/김병철(CA) 제공 원방현 2017.07.23 22
418 칼럼: 對話의 妙 /글 장용복 원방현 2017.07.20 58
417 친구의 유물 원방현 2017.07.19 31
416 나를 위한 하루/김대호 제공 원방현 2017.07.08 33
415 두문불출 친구 원방현 2017.07.07 40
414 싸가지가 없다/김세신 제공 원방현 2017.07.07 32
413 구름은 지나가는 것 원방현 2017.07.0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