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카라바조의 생애/정유석

2017.08.30 12:03

원방현 조회 수:15

[정신건강 에세이]

 카라바조의 생애 

 

 로마에서 화가 생활을 하던 카라바조에게 1597년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으로부터 콘타렐리 채플 벽화 장식을 주문받았다.

 

26세의 젊은 화가는 마태 사도에 대한 세 개의 그림인 ‘마태와 천사’, ‘마태의 소명’ ‘마태의 순교’를 완성했다. ‘마태의 소명’(The Calling of St. Matthew)을 보면 완벽한 ‘명암법’의 구사를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미워하는 직업을 가진 세리 마태는 로마 관리들과 함께 있다. 아마 도박을 벌리려는 듯하다.

 

화면 오른쪽에서 베드로를 대동한 예수가 나타나 마태에게 손을 내민다. 마태는 마치 ‘도대체 왜 나를 부르십니까?“라는 표정을 짓는데 오른 편에서 강한 광선이 들어와 마태를 직접 조명하고 있다.

 

빛이 비추지 않는 부위는 어두워 대조를 이룬다. 종교화에서 보는 거룩한 분위기 대신 주위나 인물 묘사가 사실적이다.

 

성당이 요청하는  그림을 그려 가난을 면하자 그는 ’성 바울의 회심‘, ’성 베드로의 십자가 달림‘, ’성 처녀의 죽음‘ 같은 종교화 말고도 그림에 로마 도시에서 만나는 거지, 창녀, 도둑 등을 등장시켰다.

 

 당시 그린 그림 중에 ‘점쟁이’(Fortune Teller)가 있다. 집시 여자가 젊은 병사의 손금을 봐주고 있는데 병사는 집시의 말에 정신이 팔려 자기 손가락에서 반지가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다.

 

이 그림은 유로 화로 바뀌기 전 이탈리아의 기본 통화였던 리라의 지폐를 장식해서 더 유명해졌다.

 

 화가로 성공하면서 폭력성, 심한 기분 변화, 그리고 음주와 도박 습관이 그를 지배하게 되었다. 싸움에 말려들기를 잘해서 1603년에는 동료 화가에게 폭행을 한 이유로 감옥에 들어갔다.

 

그래도 그의 성격은 악화일로였다. 1604년에 웨이터에게 아티초크 쟁반을 던진 후에, 1605년에는 로마 군인에게 돌을 던졌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두 주일간 그림을 완성시키는 도중 시종들을 거느리고 칼을 차고 운동장에 들어가 언쟁을 벌이고 싸움을 걸곤 했다.

 

 1606년에는 로마에서 유명한 포주를 살해했다. 빚 때문이란 말도 있고 운동장에서 벌어진 싸움 때문이란 말도 있었다.

 

카라바조가 포주의 아내를 탐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의 행동을 보면 ‘반사회적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에 해당한다.

 

살인사건 이후 그는 징벌을 피하기 위해 로마를 탈출해 나폴리, 몰타, 시실리 등을 전전했는데 화가로서의 명성이 늘 따라다녔다.

 

몰타에서는 기사 작위도 받았다. 몰타는 성지 예루살렘을 회교도로부터 탈환할 목적으로 조직된 십자군 원정의 전진기지로 기사단이 구성되어 있었다.

 

작위를 받으면 교황으로부터 사면을 받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범죄사실이 밝혀져서 작위는 박탈되었다.

 

몰타에서 살로메의 청에 의해 목이 잘린 ‘세례요한의 참수’(Beheading of St. John the Baptist)를 그려 성당에 걸렸는데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인 그림이다.

 

그 무렵 카라바조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항상 누가 생명을 해칠까 두려워했고 쫓기는 신세여서 옷을 입은 채 잠을 잤으며 항상 칼을 옆에 두고 있었다.

 

 몰타에 있을 때 원로 기사인 로에로 수사와 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 그는 투옥되었는데 한 달 만에 탈옥에 성공해서 시실리로 도망했다. 로에로 수사는 복수를 위해 그를 나폴리까지 쫓아가 주막에서 공격해 얼굴에 상처를 냈다.

 

이 사건은 카라바조에게 심리적이나 신체적으로 큰 영향을 남겼다. 시력과 붓놀림에 지장이 생겼다.

 

 살인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교황에 의한 사면뿐이었다. 그는 사면을 받기 위해 1610년 로마로 향했다. 나폴리를 떠나 팔로에 갔는데 거기서 다른 사람으로 오인을 받아 이틀간 투옥되었다.

 

로마로 향한 여행을 계속하다가 포르토 에르콜레란 곳에 도착했다가 거기서 열병을 얻어 수일 내에 사망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그의 그림은 벨라스케스, 렘브란트 같은 대가들의 그림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가 20세기에 들어서 그 진가가 알려졌다.

 

2010년 그가 사망한지 4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6십 만 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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