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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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정신건강 에세이]                                                          
                                                                                                                         유석 / 미국 정신과 전문의                  정유석.jpg

   [ 미국에서의 식인행위 ]     2017.11.01

18세기에 노예무역이 성행했을 때 사냥을 통해 잡힌 흑인 노예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노예 상인들에게 그들은 그저 ‘거래 품목’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서양을 건너는 선박에서 식량이 달리면 노예선 선장은 “거래 물품” 가운데 몇을 죽여 그 살점을 다른 노예들에게 먹이기도 했다.

미국이 독립하기 전 영국은 미국을 식민지로 삼아 경영하려 했다. 17세기에 버지니아 속령에서 제임스타운을 경영했는데 1609년에서 1610년 사이에 ‘대기근 기간’(Starving Time)이 발생했다. 비가 오지 않은데다가 수자원에 대한 접근이 곤란해서 그해 수확이 급격하기 감소한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214명의 식민지 백성들 중 60명이 굶어 죽었다. 본토로부터의 식량공급이 끊어지자 이들은 식량 조달을 위해 근래에 죽은 시체부터 매장지로부터 파내기 시작했다. 당시 인육을 먹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고문했더니 부인을 죽여 그 고기를 소금에 절여 저장했다는 자백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를 생매장해서 징벌했다고 한다.

한편 19세기에 들어 미국에서는 새로운 삶을 찾아 서부로 향한 개척자들 중에서 식인 행위가 발생했다. 1850년대에 콜로라도 주에서는 앨프레드 패커란 사람이 같이 여행하던 동료를 죽이고 그 인육을 먹었다는 혐의로 40년 징역 언도를 받았다. 그러나 징벌에는 살인죄만 적용했다. 그 당시 미국에는 식인에 대한 형벌은 법 조항에 없었기 때문에 죄형 협정주의 원칙에 따라 식인을 범죄로 규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846년 캘리포니아를 목표로 포장마차를 타고 서부로 향했던 일단의 이민자들은 그 해 겨울 씨에라 네바다까지 도착했지만 심한 추위와 폭설로 인해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 일행은 현재 도너 레이크라고 부르는 호수 가에서 겨울을 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일행 중 15명은 생명을 유지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이 산맥을 넘어보려고 모험을 시도했다. 후세에 그들을 “도너 파티”(Donner Party)라고 부른다.

충분한 장비와 음식물을 갖추지 않고 떠난 그들은 한 지역에 조난하여 겨울을 지냈다. 다음해에 피골이 상접하고 거의 시체에 가까운 남자 2명과 여자 5명이 구출되었다. 당시 살아남은 이들이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먹으면서 연명했던 증거가 나중에 발견되었다.

19세기 미국에서는 포경업이 번창했었다. 1820년 뉴잉글랜드를 모항으로 한 포경선 에섹스 선이 난파한 다음 구명정을 타고 살아남은 선원들은 살아남은 자들이 먼저 죽은 자들의 인육을 먹기로 서로 약속했다. 90일간의 표류 끝에 구조되었는데 2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사람 뼈의 골수를 빨고 있었다. 에섹스 호 사건은 후에 허만 멜빌이 ‘모비 딕’을 저술할 때 참고했다고 한다.

한편 영국인 선장이며 탐험가인 존 프랭클린 경은 1845년 128명을 거느리고 “북서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다가 모두 실종되었다. 북서 항로란 파나마 운하를 만들기 훨씬 이전 유럽에서 서쪽으로 나가 아시아 지역에 도달하려면 남미 대륙 끝인 마젤란해협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 항로는 너무 길었기 때문에 북극 근처인 캐나다 북부 연안을 따라가다 보면 아시아에 이르는 길이 열리리라고 생각해서 붙인 희망 사항에 불과한 항로였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면 몇십 년 안에 개통이 가능한 길이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이 나서서 직접 설명한 2006년도 “Inconvenient Truth"란 영화가 현실화된다면.

그들의 유해는 10년쯤 지나 1854년에 발견되었는데 현저하게 식인 행위를 한 흔적을 남겼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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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 히틀러의 각성제 중독 ]     2017.10.24

 

1937년 각성제의 일종이 ‘메탐페타민’(일명 ‘히로뽕’)이 합성되고 다음해부터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독일군은 일반 병사들에게 이 약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야간 전투를 향상시키고 정신을 맑게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한 병사는 1940년 후방에 있는 가족들에게 ‘가능한 한 이 약을 많이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후에 1972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이었다.

B2는 최신형 전천후 폭격기로 미군은 이 비행기에 대해 모든 것을 아직도 비밀로 취급한다. 원칙적으로 이 폭격기는 미국 본토에만 배치되어 있고 해외 기지에는 없다. 그래서 훈련이 시작되면 이 폭격기는 미국 본토에 있는 기지를 출발하여 십여 시간 목적지에 다다를 때 까지 여러 번 공중 급유를 받으면서 비행을 계속한다. 일단 목표물을 명중하면 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미국 본토 기지로 귀환한다. 쉽게 24시간 이상 조종간을 잡아야 하는 조종사들이 피로와 졸음과 싸우기 위해 공식적으로 각성제를 지급해 왔는데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일본군들도 각성제를 많이 사용한 것 같은데 일제 당시 한국은 각성제 제조창이 되어 많이 만들었다. 제조법도 어렵지 않아 당시부터 한국에서는 ‘히로뽕’이 널리 알려지고 중독자도 다수 나왔다.

2차대전 당시 대영제국의 전시 수상이 되어 영 연방군을 지휘할 입장에 처한 처칠을 밤새워 작전을 세우기 위해 각성제를 이용했다. 그러다가 새벽 무렵에 잠을 청하려고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다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말았다. 중독에 따른 우울증을 ‘검은 개’라고 불렀는데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다시 각성제를 복용하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히틀러는 1940년대에 들어 독일 군 총사령관으로 주로 동부전선(대 쏘련) 일선에서 지휘하는 일이 많아졌다. 며칠간 뜬 눈으로 새우면 전투를 지휘하던 그는 정신을 가다듬으려 각성제인 암페타민을 자주 사용했다. 약물은 주로 주치의인 모렐 박사가 공급했다. 그는 4년간 전선에 근무하면서 히틀러가 요구하면 즉시 그 자리에서 자기 몸에 지녔던 약물을 꺼내어 이미 사용했던 주사기를 다시 이용하여 허리에 두른 구급 배낭에 있는 거즈에 닦은 다음 환자에게 주사했다.

모렐 박사는 그리노블과 파리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뮤니히에서 산부인과를 전공했다고 했다. 그는 한 때 노벨상을 받은 메츠니코프 박사와 연구를 했으며 저명한 의대에서 강의했고 자신을 ‘교수’라고 자칭했다. 1933년에 나치스 당에 가입했다. 그는 히틀러의 눈에 들어 그의 주치의가 되었다. 히틀러의 매독을 몇 가지 비타민과 함께 가수 분해된 대장균을 섞어 치료했다. 히틀러는 병에서 치료되었다고 믿었다. 그때부터 그는 나치스 도당 핵심부위에서 활약했지만 괴링이나 히믈러 같은 사람들은 그를 돌팔이로 여겼다.

이렇게 무책임한 의사의 이력은 믿기 어렵다. 문제는 산부인과 의사면서 성병 치료전문의가 제3제국 시절 의사 면허를 받고 총통의 주치의가 되었다는 점이다. 독일은 백여 년간에 걸친 가장 우수한 의학 체계와 의학 교육 시스템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나치스가 지배하는 제3제국이 들어선 후 유태인 의사들은 학교와 병원에서 다 몰아내고 남은 우수한 의사들도 자신들의 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숙청해 버렸다. 그래서 독일 의학 시스템은 5년 사이에 엉망이 되고 만 것이다.

1945년 4월, 히틀러는 하루에 무려 24가지 다른 약을 복용했다. 그가 자살하기 일주일 전 모렐 박사를 해임했다. 모렐은 수십 개의 각성제를 남겨두었는데 다른 의사나 추종자들이 히틀러에게 죽는 날까지 투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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