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졸업60주년기념 Home Comming Day!

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정신건강 에세이]

마지막 낭만파 음악가 구스타 말러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지휘자로써 말러는 두각을 나타내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는 연주할 작품들을 끈질기게 또 철저하게 연구했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일률적인 해석을 거부했다. 비평가들은 놀랬고 크게 충격을 받았는데 일부는 환호했으며 일부는 비난했다. 변화만을 위한 변화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있는가 하면 맥주, 포도주, 육식을 거부하고 물과 과일 그리고 시금치에 의존하는 식습관까지 거론하며 비방하기도 했다. 그래도 타고난 에너지와 음악적 통찰력을 가지고 난관을 헤쳐 나갔다.

그는 라이프치히, 부다페스트, 함부르크, 비에나 등지를 옮겨가면서 열성을 다해 지휘했다. 말러는 어려서부터 성질이 불안정했으며 오만하고 인내심이 없고 화를 잘 냈다. 항상 완벽을 기했기 때문에 연주자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청중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그를 처음 만난 차이콥스키는 ‘이 지휘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연주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바칠 천재다.’라고 하면서 자기가 지휘할 예정이던 자신의 오페라 ‘유진 오네긴’의 지휘를 흔쾌히 그에게 맡겼다.

지휘자로는 성공했지만 작곡가로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오페라를 수 없이 연주했지만 자신은 오페라를 작곡한 적이 없다. 교향곡만으로도 극적 효과를 낼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충분하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생 10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서정성이 충만한 40개의 가곡도 모두 성악가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고통, 죽음, 의문, 낙심 등을 표현하기 위해 베토벤의 6번 교향곡(전원)이나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교향곡 작곡을 전통적인 4악장에 국한하지 않았다. 바그너의 음악에 따라 악기 편성에 제한을 받지 않았고 베토벤 9번(합창)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독창자나 합창을 삽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 진가는 사망 후에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올바로 평가되었다.

원래 유태인으로 신앙심이 적었던 그는 1897년 캐톨릭으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비에나 오페라 지휘자의 직을 얻는데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어 비에나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임명되어 유럽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지휘자로서의 절정에 달했다. 1902년에는 알마 마리아 쉰들러란 여성을 만나 결혼했고 두 딸을 얻으면서 왕성한 작곡 활동을 했다.

1904년 독일 시인 뤽케르트가 자신의 아이들의 죽음을 맞아 큰 충격을 받고 그 슬픔을 표출한 시를 읽고 ‘죽은 아이를 위한 노래’라는 비통한 음악을 발표했다. 1907년에 발표한 6번(비극)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서 피아노가 건반을 세 번 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곡가는 이것이 그 해 영웅에게 내린 세 번의 재앙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것은 비에나 오페라에서 받은 사직 권고, 3살 된 딸 마리아의 디프테리아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심장병을 진단받은 사건을 의미한다고 했다.

1910년 가을 그의 건강은 크게 악화되었다. 편도선 수술을 받았으나 건강은 개선되지 않았고 아마도 이 수술의 후유증으로 박테리아가 혈액 내로 침투한 것 같았다. 전문의는 심 내막염이라고 진단했다. 이 병은 20세기에 들어 출현한 항생제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