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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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신 시조

고시조감상 ㅡ 041/김세신

2015.03.20 11:26

원방현 조회 수:214



고시조감상 ㅡ 041.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자기의 부끄러움) 全혀 잊고 남의 흉만 보는구나

남의 흉 보거라(보기에 애쓰지) 말고 제 허물을 고치 과져(고 칠 일이다).

 

인평대군(麟平대君, 1622 ㅡ 1658) 작.

인평대군은 조선조 仁祖의 셋 째 왕자로,

孝宗의 弟.


本名은 요(㴭),

字는 用涵,

號는 松溪.


인평은

昭顯世子와 鳳林大君에 이어 볼모로 淸國에 갔었으며,

1650년 이후 네 차례나 謝恩使로 淸에 다녀오는 등

나라의 어려움을 겪어 나갔으며, 36세에 夭折함.

 

인평은

西人들로부터 몇 차례 謀陷을 받는 등 치열한 삶을 살았으나,

兄인 孝宗의 寵愛로 危機를 모면함.

 

저서로는 松溪集, 燕行錄 등이 있고,

그림 작품으로는 고백도, 노승하관도, 산수도가 있으며,

詩 · 書 · 畵에 능하여 世宗의 子인 安平大君에 비유되기도 함.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허물은 전혀 잊고

이러쿵저러쿵 남의 허물만 탓하는 데 익숙하여

남 말하기를 좋아하며,

 

자기의 부끄러운 것 모르고

남의 잘못만 들춰내려고만 하는 구나.

 

남의 흉보기에 애쓰기보다

제 허물부터 고침이 急先務가 아니겠는가 하는

교훈적 내지는

사람들에 대한 警告的인 의미를 담고있다고 생각된다.

 

요즈음도 예와 다름없이

특히 정치권 등에서의 행태를 보면,

 

자기의 잘 못이 들어나면

우선 자기의 잘 못부터 시정하거나

사과함이 바람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약점부터 잡아

자기의 부끄럼을 덮으려는 추태가 연출되기 일수다.

 

이러한 비양심적인 인사들이

소위 지도층 인사들 중에서도 자주 눈에 띄는 것은

나라의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나랏일에 깊이 관여했던 인평으로서는

더욱 더 시기, 질투와 모함까지 받고 보니

더욱 세상 사람들의 좋지 못한 심성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이런 작품이 나온 이유가 충분 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