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한국어

글모음 2

김세신 시조

황진이의 한시/김세신

2015.04.14 11:41

원방현 조회 수:300

♡ 黃眞伊의 漢詩 ♡

 

詠 半月 ( 반달을 읊다 )

 

誰斷崑山玉 :  뉘라서(누가) 곤륜산의 옥을 다듬어

裁成織女梳 :  직녀 아씨의 얼레빗을 만드셨나요

牽牛一去後 :  견우 도령 안타까이 (안타깝게) 이별한 뒤

愁擲碧空虛 :  슬퍼서 푸른 하늘에 던졌네요.

                 (韓國女流漢詩選 중에서)

 


黃眞伊(1506 ㅡ 1567!) 소개 :

 

父 : 황 이, 母 : 진현금.

황진이는 조선조 中期의

詩人, 妓女, 作家, 書藝家, 音樂家 겸 舞姬로서

中宗 · 明宗 때 활약했다.

別名은 眞娘,

기생명(字)은 明月로도 알려 졌다.

 

중종 때 개성 황진사의 庶女로,

생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시, 그림, 춤 외에도

性理學的 지식과 四書六經에도 해박하였다 한다.

 

士大夫와 隱逸人士들과도 교류하였고,

時調와 그림에도 能하였다 한다.

 

그의 詩들은 男女間의 愛情問題를 노래하면서도,

정교하고 빈 틈 없는 점 등

완성도에 있어 늪이 평가되고 있으며,

 

또 기발한 이미지와

알맞은 형식과 세련된 언어구사를

남김없이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여성이면서도 성격이 활발해 俠客의 風을 지녀

남성에게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남성들을 굴복시켰다고 한다.

 

悳이 있는 선비들과 교류하기를 즐겼으며,

편협하지 않은 知識人이었고,

다정다감하면서도 技藝에 두루 能해서

時調를 통해 文學的 才能을 유감없이 발휘,

 

주로 사랑을 主題로 다루어,

그 녀의 작품은

사대부 시조에서 생각할 수 없었던 표현을 갖춤으로써

 

관행화되어 가던 시조에

活力을 불어 넣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庶民出身이나 敎坊에서 대성하여,

詩書音律이 당대에 獨步的이었고,

많은 문인과 교류,

 

그의 작품은

기교적이고 자유분방하게 愛情表現을 하고 있어

國文學史上 전초적인 민족의 리듬으로

교방여성의 情恨을 시조로 나타낸데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고 하겠다.

 

황진이의 시조의 영향으로

妓女時調가 본격화되는 동시에

시조문학이 높은 水準을 띄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