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서는 오레스테스(Orestes)의 조상들 이야기를 했다. 피가 피를 부른 저주받은 가문이다. 오레스테스의 아버지 아가멤논(Agamemnon)이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왔을 때부터의 이야기가 이스킬루스의 <오레스테이아> (Oresteia)이다.
아가멤논의 부인 클라이템네스트라(Clytemnestra)는 아가멤논이 그들의 친 딸 이피게니아(Iphigenia)를 살해했기 때문에 복수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전술한 바와 같이 아가멤논은 바람이 안 불어 출항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신탁에 따라 친 딸 이피게니아를 죽여 하늘에 제사 지냈던 것이다.
남편이 트로이에서 전쟁을 하는 동안, 그녀는 정부를 두었다. 남편의 시아버지를 살해한 이기스투스(Aegisthus)이다. 남편이 귀국하자 마자, 죽은 딸의 원수도 갚고 정부와도 계속 살기위해 그를 살해하였다. 남편이 첩으로 데리고 온 트로이 왕의 딸 카산드라도 같이 죽였다.
아버지를 극진히 사랑해온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Electra)는 방랑하고 있던 오빠 오레스테스(Orestes)를 불러 드려 어머니 클라이템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이기스투스를 죽였다.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Erinyes)는 살해당한 클라이템네스트라의 혼의 호소를 듣고 오레스테스를 붙잡아 죽이려고 하는데 지혜와 보호의 여신인 아테나(Athena)가 배심제 재판으로 결정하자고 제안한다. 12명의 배심원들이 반반으로 갈렸다. 현재는 만장일치가 되어야 하지만 그 당시에는 과반수 및 동점으로도 결정을 했다. 그래서 무죄가 되었다.
여러 세대를 내려오면서 피가 피를 부르던 아가멤논의 저주받은 가문은 드디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비극(tragedy)이 해피엔딩이라니 말이 안되지만 그당시에는 비극이란 말이 ‘염소의 노래’ 라는 뜻 외에는 딴 뜻이 없었다.
이것으로 <오레스테이아>는 끝나는데 생각해 볼 점이 둘 있다. 첫째, 이 시대에 벌써 배심원제의 재판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족 시대의 야만적 형벌이나, 미신에 의존하거나, 피는 피로 해결하는 방법을 지양하고, 시민들로 형성된 배심원제도를 완성하였던 것이다.
둘째, 사랑이 상처를 입으면 사랑한 만큼 미움이 생기는 것이다. ‘필로스 아필로스’ (philos-aphilos, 영어로는 love-in-hate)라한다. 사랑하던 남편이 딸을 죽이고 첩을 데리고 들어왔을 때나, 사랑하던 어머니가 정부를 두고, 아버지를 죽이고, 자식을 버릴 때, 사랑은 증오로 변하고 살인까지 하는 것이다.
라티모어(1906-84)는 오레스테스를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비교를 했다. 햄릿도 사랑하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아버지의 동생과 살게 되자 사랑과 미움의 갈등이 생긴 것이다.
이 비극의 저자인 이스킬루스(Aeschylus, 524-456 BC)는 아테네 근처에서 비교적 부유하게 살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사랑이나 열정 같은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진지한 신학과 인류학에, 특히 공정 (justice) 의 성격 같은데 흥미를 가졌다. 페르시아 전쟁 때에는 군인으로 참전해서 마라톤과 살라미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현재는 그의 작품이 6개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평생에 70여개의 극을 썼다. 극 경연 대회에서 일등상을 14번이나 받았다.
연극 발전에 기여를 많이 했다. 기존 연극이 배우 한명과 합창단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배우를 두명 썼고 합창단도 늘렸다. (후에 소포클레스는 배우를 2명에서 3명으로, 합창단을 12명에서 15명으로 늘렸다.) 무대 배경을 크게 만들고 색도 써서 실감이 나게 하였고 기계를 도입하여 배우가 하늘에서 내려오게도 해서 극적 효과를 늘렸다.
이스킬루스의 비석에는 유언에 따라 극작가로서의 공적은 한마디도 없고, “마라톤의 숲이 잘 알고 있듯이 용감하게 잘 싸웠다” 라고만 써있다.
연극 경연 대회에서 28세의 어린 나이로 이스킬루스를 물리치고 1등 상을 탄 소포클레스(Sophocles, 496-405BC)가 누군지 알아보자.
소포클레스는 대 선배 이스킬루스와 동료 유리피데스를 물리치고 1등상을 24번이나 받았고 한번도 2등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작품이 123개나 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90세까지 살았다. 인물과 체격이 훌륭했다. 성격이 온순하고 매력과 위트가 있어서 남성의 이상형이었다. 목소리도 좋아서 음악을 전공했는데 변성하면서 부터 연극의 합창단을 떠나 본격적으로 비극을 썼다.
나이가 들면서 연인에게서 나온 아들을 편애하다가 본처에게서 나온 아들로부터 노망이 걸렸다고 고소를 당했다.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서 자신의 각본을 암송했다.
그는 인생을 즐기며 행복하고 평탄하게 살았지만, 그의 작품은 인간의 슬픔, 번민, 어리석음을 표현했다. 그는 “이 세상은 신비로 쌓여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신비한 것은 인간이다” 라고 말했다.
이 신비한 인간의 심리를 잘 파헤친 작품이 바로 다음 회에 다룰 3부 작 <이디퍼스 왕> (Oedipus Rex)과 <콜로너스의 이디퍼스> (Oedupus in Colonus)와 <안티고네> (Antigone)이다. 이 비극은 그 이후로 딴 작품을 평가 할 때에 쓰는 척도가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