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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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렘브란트는 사팔눈 화가였다.

2010.01.16 19:00

정유석 조회 수:5532

 

 수많은 명화를 남긴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은 네덜란드 라이덴 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방앗간 주인이었고 어머니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다. 14세에 라이덴 대학에 입학해서 3년 간 미술 수업을 받았다.

수련을 마친 후 라이덴에서 화실을 열었으나 몇 년 후에 대도시인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화가로 정착했다. 렘브란트는 아주 정교한 초상화를 많이 그려서 빨리 명성을 얻었다. 그는 당시에 남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 특급의 호가였다. 많은 화가들이 그 밑에서 그림을 그린 후 그의 사인(낙관)을 받는 것으로 만족을 얻을 지경이었다.

그는 일생을 통해 자화상도 백 점 이상 그렸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그를 전형적인 ‘자기애 적(Narcissistic)성격’소유자라고 간주한다. 자신의 초상화를 연도 별로 자세히 비교해 보면 나이에 따른 이 화가의 시력상태 변화를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역사화가로 간주했다. 당시 네덜란드 교회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종교화를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그림을 자주 그렸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카라바지오는 그림에 광선을 이용하여 명암을 대조시키는 기법을 개발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림에다 조명 효과를 렘브란트도 이 선배화가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림 속에 있는 인물을 일부러 조명한 듯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광선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적라라하게 표출하면서도 인간 내부의 심리적 상태를 그림으로 외부에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젊은 시절에 그린 렘브란트의 초상화들을 보면 광선 효과에 따른 정교함, 섬세함 그리고 명암의 대조를 꼼꼼히 그려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런 섬세함과 정교함이 차차 약화되었다.

40대를 지나면서 누구에게나 오는 ‘노안(Presbyopia)’의 영향으로 본다. 노안이란 참 무정한 상황을 의학적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나이 40에 접어 들었지만 아직 사지가 팽팽하고 이때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물체나 글자를 자세히 식별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도 그렇지 노안(늙은 눈)이라니, 웬.노년기에는 시력을 거의 잃다시피 되었는데 그것은 ‘백내장(Cataract)’이 진행함에 따라 시력이 점차 약화된 때문일 것이다.

근래에 하버드 대학 학자들은 렘브란트가 그린 자화상 36점을 자세히 대조하면서 조사했다. 그림에서 화가의 오른쪽 눈은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데 비해 왼쪽 눈은 약간 밖으로 향한 외사시(外斜視)라고 했다. 우리말로 ‘사팔뜨기 눈’이다.

안구를 상하 좌우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각기 방향으로 안구를 이끄는 근육이 따로 존재해서 각자 맡은 역할에 의해 안구가 움직인다. 쉬게 말해 앙구를 위 아래로 움직이는 근유이나 좌우로 움직이게 하는 근육이 따로 존재한다 가그러니까 왼쪽 눈의 외사시란 왼쪽 눈을 안으로 이끄는 근육이 약화되거나 마비되었을 때 보는 현상이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두 눈을 모두 사용해야 원근감이 있어서 입체로 보인다. 그런데 사시 환자들은 성한 눈 하나로만 대상을 본다. 약한 눈에 비친 대상은 두뇌의 작용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억압되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보통 입체적인 사물을 평면에 그린다. 그래서 중교등학교 미술 선생님들은 가끔 학생들에게 한쪽 눈을 감고 사물의 보는 연습을 시킨다. 입체적으로 구성되었을 대상을 평면화 시키려는 의도에서다. 그럼으로 렘브란트의 사팔눈은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었지 지장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연구 논문은 너무 늦었지만 의학계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04년 9월 16일자 잡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