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신 대표적 희곡작가인 유진 오닐에서 보는 놀랄만한 점은 일생을 통한 알코올 중독에도 불구하고 만년까지 글을 쓸 때만은 술을 끊고 작품에만 전념하여 불후의 명작을 계속하여 저작했다는 사실이다.
1939년에 완성시켰지만 제2차 대전이 끝난 1946년이 되어서야 브로드웨이에 발표한 ‘얼음사람 오다(The Iceman cometh)’는 오닐의 비극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뉴욕시 웨스트 사이드 하부에 있는 한 술집은 수많은 술꾼들이 드나들며 술을 마신다. 마침 그곳의 일원이었던 한 친구가 동료들을 떠났다가 몇 년이 지나 술을 끊고 돌아와 희망 없이 술에 절어 살아가는 무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러나 후에 그 친구는 가짜였을 뿐, 살인자란 점까지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떨어진 인생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항상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희망을 지녀야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준다.
1939년에서 1941년 사이에 집필했지만 그가 죽은 후에야 발표된 ‘밤으로의 긴 여로’는 실제로 있었던 그의 가족사를 연극화한 것이다.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 자신의 직업에 항상 만족하지 못하며 아버지로나 남편으로 실패한 아버지, 그들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또 서로 상처를 준다. 게다가 동생을 사랑하지만 젊은 나이에 술 중독으로 사망한 형, 그리고 폐병에 걸려 희망을 거의 잃은 가운데 부모와 형, 세 사람 사이에 끼어 애증이 교차하는 젊은이가 등장하여 하루사이에 일어나는 일상적인 상황을 이 작품에서 그렸다.
작가는 생전에 이 작품은 자기가 세상을 뜬 후 25년이 지나 발표되기를 원했다. 아무리 예술 작품이라곤 하지만 집안의 비밀과 약점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꺼림직 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미망인은 그의 소원을 무시하고 그가 사망한지 3년이 지나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에서 상연하도록 허가했다. 너무 시간이 지나면 남편의 명성이 잊혀질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오닐 자신은 심한 술 중독자였지만 작가가 알코올을 미화시키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대의견을 견지했다.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난센스라며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1940년대에 들어서 이미 술로 인한 수전증으로 손이 떨려 원고를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녹음기를 이용했지만 결국은 창작 생활을 중단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 비극은 계속해서 발생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 대가였던 아버지의 그늘 속에서 항상 벗어나지 못했던 큰아들이 40세에 자살을 하더니 둘째 아들조차 정신병에 걸렸다. 그러나 만년에 그를 무엇보다도 낙담케 한 것은 고명딸인 우나(Oona)가 18세가 되자말자 아버지 오닐과 비슷한 연배의 노인인 희극 배울 찰리 채플린과 결혼해 버린 사실이었다. 성인이 되는 즉시 우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앞날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끼칠 소지를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그녀는 후에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지바고 본 부인으로 등장했다.) 그는 찰리 채플린을 법정에 소송까지 해 보았으나 무위였다. 결국 그는 사랑하던 딸과 절연하고 죽는 날까지 만나보지 않았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된 그는 죽음을 맞기 위해 보스턴의 한 호텔에 투숙했다. 아늑한 집에 누워 가족에 싸여 임종을 맞기에는 마땅한 자녀가 없었다. 그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부인 이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자조적인 말을 했다. “젠장, 호텔에서 태어난 인생이 결국 호텔에서 죽고 마는군.”1953년 11월27일, 희곡작가로 미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 작가는 그의 작품에 나오는 많은 주인공들과 같이 남들에게 잊혀진 채 정신적인 파산상태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