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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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유진 오닐의 등단

2008.12.18 15:35

정유석 조회 수:4472

미국 극작가인 유진 오닐(Eugene O'Neill, 1888-1953)은 뉴욕의 한 호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꽤나 이름을 날리던 배우였다. 게다가 흥행경영인으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거의 파산지경에 이른 한 극단으로부터 알렉산더 듀마 원작인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흥행권을 사들였다. 각지로 떠돌면서 자신이 전문적으로 백작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미국에서 흥행으로 처음 백만 불을 번 기록을 세웠다. 연극 철이 되면 아들 교육을 위해 뉴욕이나 뉴저지에 있는 기숙학교에 입학시켰고 주로 가정부를 두어 아들의 생활을 돌보게 했다. 그래도 오닐은 어린 시절 자주 장기간 기차 여행을 했고 무료한 많은 시간을 연극 뒤 무대에서 보냈으며 호텔 방을 수시로 전전했다. 그 결과 연극은 그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의 연극 흥행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었다. 그녀는 유진 오닐을 낳을 때 의사가 처방해 준 모르핀을 계속 사용하다가 마약 중독자가 되고 말았다. 그는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마약에 중독이 된 사실을 알게 된 후인 1902년 자살까지 시도한 적이 있었다.

1906년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형은 동생인 유진 오닐에게 술 마시는 것과 유곽에 들려 성욕을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프린스턴 시절의 생활을 “Booze(술), Books(책), Broads(여자, 주로 창녀들)로 보낸 시기”라고 표현했다. 1년 후 제적당하고 술집과 사창가를 돌아다녔다. 그래도 재미가 없었는지 그 후 선원이 되어 남미, 영국, 등을 돌아다녔다. 선원 생활은 그가 나중에 작품활동을 할 때 큰 역할을 했다. 바다에 대한 향수를 자주 작품의 소재로 했다.

1909년 그는 잠시 결혼했지만 아들 하나를 낳고 다시 예전 생활로 돌아갔다. 이 결혼은 실패가 예견되어 있었다. 여자를 임신시켰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 것이었다. 아이에 대한 정도 없어서 이때 태어난 아들은 13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 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뉴욕 부둣가에서 주로 잡역부 같은 직업을 통해 생활을 영위해야 했으니 말이다.

1912년 그는 뉴욕의 한 선술집 뒷방을 빌려 숙식을 해결했다. 술집에 살았으니 낮 밤 구별 없이 항상 취해 있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 번은 거기서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했다. 회복된 후 잠시 한 신문사에 기자로 일을 하면서 시를 써 보았지만 불행히도 그 해 결핵에 걸려 6개월간 요양소에 격리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희곡을 썼다. 이때 그는 아버지가 전국적인 흥행으로 성공시킨 ‘몬테 크리스토 백작’ 같은 연극은 현실감을 결여한 구닥다리라고 혹평했다.

아들의 재능을 인정한 아버지는 그를 하버드 대학 연극창작교실에 등록시켰다. 그러나 그 곳에서 1년만 공부한 후 그는 더 이상 연극에 대해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로 자리를 옮겨 “The Hell Hole"이란 선술집에 단골로 드나들었다. ‘지옥’이란 뜻이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건달같이 술집만 드나들며 허송세월을 하던 유진 오닐은 그 후 당시 젊은 작가와 화가들이 모여 창작을 하고 실험 연극도 하는 매사추세츠주의 포구인 프로빈스타운으로 갔다. 그는 거기서 ‘카디프를 향해 동쪽으로(Bound East for Cardiff)’란 1막 짜리 연극을 집필해서 실험 극단에 올렸다. 극단 사람들은 즉시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그 때 얻은 명성으로 인해 작품은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극장으로 옮겨 상연되었다. 그렇게도 바랐던 뉴욕 극단에 데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