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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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유진 오닐과 노벨 문학상

2008.12.18 15:52

정유석 조회 수:4865


왕성한 창작 활동을 통해 유진 오닐의 명성은 점차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서 미국 출신으로 가장 촉망을 받는 유명작가가 되었다. 비교적 빠른 사이에 혜성같이 문단에 등장한 것이다. 그가 연극 창작에 몰두해 있던 무렵 그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와 조지 버나드 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여러 나라말로 번역되었으며 자주 공연에 올랐다.

그러나 개인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918년 작가는 한 젊은 잡지 편집자와 두 번째로 결혼했다. 유명 배우의 위치를 유지했던 아버지가 1921년에 암으로 사망했고 다음 해에는 그가 가장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사랑했던 어머니조차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그에게 어린 시절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형마저 알코올 중독으로 병사했다. 새로 결혼한 신혼 부부의 생활도 시작부터 불화가 많았다. 그들 사이에 두 자녀가 태어났다. 그래도 부부는 모두 술을 지나치게 마셨기 때문에 서로 싸우는 회수가 차차 증가되었다.

그는 한동안 그리스의 비극에서 주제를 취해 연극을 만들었다. 간통한 남자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에 대해 냉혈적으로 복수를 꾀하는 딸의 이야기를 남북전쟁에서 남부군대로 대치시켜 작품화 한 ‘상을 당한 일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라든가, 새 남편의 재산을 통째로 유산으로 받기 위한 창녀 출신인 젊은 계모에 의해 유혹을 받아 양어머니와 성관계까지 들어가 아이를 임신시키게 하는 근친상간을 주제로 다뤘다. 계모는 양아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 신생아가 사랑의 결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아기를 살해함으로써 남자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려는 비극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의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1928년에 발표한 ‘이상한 간주곡(Strange Interlude)’은 실험극의 범주에 속했지만 당시 상당한 호평을 받아 426번이나 공연되었다. 이 연극은 무려 9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오후에 시작되어 저녁 식사를 위해 중간 휴식을 취한 다음 밤늦게 끝날 정도로 오래 진행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을 독백이나 방백으로 처리하지 않고 연극이 진행되는 중간에 직접 관중을 향해 직접 큰 소리로 표현하게 했다. 이런 수법은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너무나도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정신분석 학설을 너무 자주 인용했고 연극 자체가 너무 길었던 탓인지 이 실험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극도에 달한 작가의 명성으로 인해 이 연극은 영화화까지 되었다는데 이렇게 난해한 작가의 시도는 영화로도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작가는 알코올로 인해 중독의 절정에 달해 있었는데도 이 연극을 쓸 때만은 철저하게 술을 끊었다고 한다. 구성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술에 취하면 관객에게 작가의 의도를 알리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곳을 고쳐 쓰기도 하고 리서치를 병행했으며 전반 개요를 다시 손질하는데 맑은 정신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1926년에는 정신분석 상담을 받아 한 동안 술을 끊은 적도 있었다.

1936년 스웨덴 아카데미는 유진 오닐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생전에 미국에서보다는 유럽, 특히 북유럽에 속하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곳은 노르웨이의 헨릭 입센, 스웨덴의 오귀스트 스트린드버그 같은 희곡의 대가들이 줄을 이어 등장했던 지역이었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유진 오닐이 이들의 뒤를 잇는 후계자라고 간주해서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