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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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 2

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35세가 되던 188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고갱과 언쟁을 벌인 후 자기 왼쪽 귀를 잘랐다.
이로 인해 그는 정신병자로 취급되어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했다.
6개월 사이에 3번의 간질발작, 또 2번의 자살 기도가 있었지만 1년 후에 완치되었다고 판정되어 퇴원했다.

그 후, 그는 오버쉬라즈란 동네에서 요양했다.
그는 인상파 화가에 속하는 피싸로의 소개를 통해 폴 가셰 씨를 주치의로 삼았다.
가셰 박사는 아마추어 화가로 여러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가 있었는데 원래 철도회사 소속 의사였다가 그 무렵에는 고향에서 반쯤 은퇴하여 지내던 상태였다.

그는 원래 우울증에 대한 논문도 쓴 적이 있지만 자신의 생활 자체도 즐거운 편은 아니었다.
그런 때문인지 의사와 환자는 금새 가까워졌다.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셰 박사에 대해 “우리는 진정한 친구이며 신체적인 모습이나 정신적인 면을 보아도 새로 맞은 형님과 같다.
그 역시 나 같이 신경이 날카롭고 극단적인 괴짜 인물이다”라고 적었다.

주치의는 고흐가 근래에 그린 자화상을 칭찬하면서 자신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려보라고 권했다.
이에 고흐는 흥분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초상화를 사진같이 대상을 똑같이 그리지 않고 현대적인 색채 감각을 살려 작가의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초상화를 그리겠다는 야심을 나타냈다.

그는 가셰 박사를 모델로 하여 여러 편의 초상화를 남겼는데 대부분 비쩍 마른 중년 남자의 짙은 우수를 그렸다.
1890년에 그린 박사의 초상화는 조금 독특하다.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작품 설명을 보면 “가셰 박사의 얼굴은 과열된 벽돌, 햇빛에 그을린 색이다.
머리털은 붉고 흰 모자는 푸른 언덕과 대조되어 있다.
그의 옷은 진한 청색이다.
그럼으로 해서 그의 얼굴은 오히려 창백하게 보인다.

이 그림에서 가셰씨는 정원에 놓인 새빨간 테이블 위에 왼손으로 비스듬한 얼굴을 받히고 오른 손에는 디지탤리스의 원료인 보라색 폭스글로브 가지를 쥐고 있다.
(이런 형태의 그림은 한 개가 또 있다.
) 당시 폭스글로브는 의사를 상징한 것 같다.
위더링 박사가 ‘폭스글로브’에서 추출한 ‘디지탤리스’가 고혈압에 큰 효과가 있었고 특히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생명이 경각에 놓인 사람에게 이 약을 사용하면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이 의학계에서 널리 알려 나갔다.
그 결과 그 당시 ‘디지탤리스’는 마땅한 치료 약품이 별로 없던 시절에 거의 만병통치약 같이 취급되었다.

고흐는 정신 불안, 간질, 조증 같은 증상을 보였는데 디지탤리스는 안정제로, 간질 치료제로 또 수면제로 널리 사용되었다.
따라서 가셰 박사가 고흐에서 디지탤리스를 다량으로 사용한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디지탤리스의 부작용 중 자주 나타나는 증상의 하나가 '황색시증'(黃色視症, Xanthopsia)이다.
그러고 보면 특히 고흐의 만년 작품들 중에 노란 색을 많이 사용했다.
예를 들어 ‘별빛 빛나는 밤’ ‘밤 카페’ 그리고 여러 장으로 그린 ‘해바라기’ 그림들에서 황색이 강조되어 있다.
노란 색이 특히 ‘별빛 빛나는 밤’에서 반짝이는 별들, ‘추수하는 사람들의 들판’, 그리고 고갱에게 준 ‘자화상’에 진하게 나타나 있다.

고흐가 노란 색을 강력한 색깔로 느끼고 애용한 점도 사실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디지탤리스의 부작용으로 카메라에 노란 색 필터가 낀 것처럼 눈 안의 렌즈를 통해 비친 사물은 노랗게 보일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의 말기 작품 중에는 자주 물체, 특히 별 뒤에 노란 섬광이 나타난다.
이것은 고흐가 녹내장을 앓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녹내장은 안구 안에 압력이 증가될 때 눈이 붓고 아프며 물체 주위에 섬광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녹내장은 40 이전에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다.
고흐가 37세에 사망했기 때문에 녹내장으로 섬광을 설명하는 데는 조금 무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