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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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 2

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체호프의 단편 '의사'

2009.01.12 07:31

정유석 조회 수:5452

작가 체호프는 자신이 의사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는 30명 이상의 의사들이 등장한다. 1887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제목이 ‘의사’인데 의사란 직업과 인간 사이의 번민을 다루고 있다. 의사 니콜라이 체트코프는 환자 어머니의 요청으로 뇌종양으로 죽어 가는 한 소년의 집에 왕진한다. 종양은 이미 말기가 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여지가 없었다.

체트코프는 젊은 날 단 한번 외도를 한 적이 있었다. 바로 이 아이의 어머니 올가와 성 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그녀는 항상 체트코프에게 미샤는 그의 아들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그녀는 같은 시기에 여러 남자들과 관계를 했다. 그 남자들 중 하나가 미샤의 생부일 것이다. 체트코프는 올가가 미샤를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양육비를 얻어내려는 의도가 있으리라고 항상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양육비를 지불해왔다.

그가 왕진을 마치고 집을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진실을 듣고 싶었다. “올가! 우리는 서로 슬픔에 빠져 있는데… 이제, 거짓이란 죄악이니까 내게 진실을 알려주길 간청하오. 당신은 언제나 이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 주장했지요. 진실이요?” 올가는 침묵하고 있었다. “내가 거짓으로 인해 얼마나 깊게 상처를 받아왔는지 당신은 상상할 수 없을게요. 올가, 자, 이제 말 해주오. 단 한번만 사실을 알려줘요. 이 엄숙한 순간에 누구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겠지요. 미샤가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줘요. 나는 이렇게 기다리고 있소.”

“당신 아이입니다.”올가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의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일말의 주저함을 느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군요.” 그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러나 한 번만 호소하오. 내게 진실을 밝혀줘요. 우리 사이에 거짓이 있으면 안되지. 이제 와서 아이가 죽는 마당에 속임이 무슨 소용이요? 이제는 내게 진실을 알려주는데 어렵지 않을 것 아니요?”

올가는 잠시 주저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니콜라이. 나 거짓말하는 것 아니에요. 미샤는 당신 아이에요.”
이 단편에서 우리는 정신역동 상 흥미로운 점을 많이 발견한다. 의사는 이 죽어 가는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가? 의사의 입장으로 그는 열정을 다해 보살펴야 하겠지만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환자와 약간의 간격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라면? 자식의 죽음은 그에게 더욱 큰 충격일 것이다. 그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면 자식을 잃는 아픔은 피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올가에게 사실을 밝혀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이런 점에서 ‘의사’는 뛰어난 심리소설이다.

올가는 요지부동이었다. “당신도 나만큼 고통을 받아야 해요.”“당신 혼자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지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