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7 17:53
1995년 가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는 아직도 생존해있던 "드 쿠닝의 말기회"란 흥미로운 전시회가 열렸다. 이 화가는 잭슨 폴락과 더불어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화풍을 미술사에 확립하여 현대 미술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가였다, 그가 80세의 노년기에 들어갈 무렵인 1980년대 작품에는 전에 없던 뚜럿한 변화가 나타났다.
원래 그의 그림에서는 과감한 붓 놀림으로 물감을 두껍게 발랐으며 이미 그린 화폭 위에 몇번이고 덫칠하여 상당히 무겁고 복잡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데 노년기의 그림들은 월씬 단순화되어서 전에 있던 강렬한 인상보다는 무척 부드럽고 애매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흰색 바탕 위에 적색, 황색, 청색 같은 원색의 선을 주로 사용하면서 동양화마냥 여백을 많이 남긴 대신 여선 그림에서 보이던 질감이 현저히 사라졌다.
그림 위에 여러번 다시 겹쳐 그리는 습관으로 인해 유별났고 전에는 작품 하나 만드는데 몇달이나 몇년이 걸렸지만 노년기에는 제작 속도가 춸씬 빨라졌다. 1981년부터 1990년 사이에 무려 300 점 이상의 유화가 생산되었다.
어느 사이 , 미술계에서는 작가가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다는 소문이 차차 나돌기 시작했다. 치매가 발전함에 따라 법원은 그의 딸과 변호사사를 재정관리인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그들은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로 짜고 드 쿠닝이 폐인이 되기 전에 더 많은 작품을 만들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작가 앞에 가득 채운 한 많은 화폭을 진열했으며 자기들이 괜찮다고 생각되면 작가의 허락도 없이 미완성 작품까지 들어내어 완성품이라고 시장에 내어놓았다는 악성 루머도 돌았다. 일생을 통해 그의 작품은 일주일에 한점 꼴로 생산되었다. 그러나 조수들은 그가 작품 활동을 할 날이 얾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자기 작품을 지나치게 비판적인 눈으로 보면서 반복헤서 고치는 드 쿠닝의 습괁적인 관습을 중지한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원색에 집착한 데 대해서도 시비가 일었다. 1943년 결혼한 부인 일레인도 추상표현주의 화가였다. 드 쿠닝이 계속 청색, 적색, 백색 사용암 고집하는 가운데 대해 비판이 높아지자 부인은 조수들에게 색각 선택을 다양화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미니에폴리스와 워커 미술 센처와 공동으로 이 특이한 전시회를 계획한 것이다. 작품 선정을 위해 당시 최고 화가 재스퍼 존스, 뉴욕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 로버트 스토어를 포함한 위원회가 선정되었다. 1988년 이후의 그림들은 누가 어떤 관점으로 보아도 예술성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선정에서 제외되었다.
빌렘 드 쿠님(Willem de Kooning, 1904-1997)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 야간에 로테르담 미술 아카데미를 다니며 그림을 동부했다. 1926년에 밀선을 타고 미국에 밀입국한 다음 한동안 페인트 공으로 일했다. 다음 해 뉴욕 맨해튼으로 이주한 다음 그는 잭슨, 폴락, 마크 로트코, 프란츠 클라인, 아쉴 고르키, 바넷 뉴먼 같은 화가들과 어울었다.
그때까지 미술의 중심지는 유렵이었으며 뉴욕은 한 변방에 불과했다. 이들은 추상화를 그린다는 점 말고는 그림의 스타일이 서로 달랐다. 2차대전을 걸치면서 사람들은 이들을 '표현 추상주의'라고 불렀다. 그들에 의해 뉴욕은 세계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드 쿠닝도 원래 순수 추상화로 시작했다. 평자는 그의 그림에서 인간의 의지와 운명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으며 작품은 작가가 그 사이에서 분토한 결과라고 하면서 그의 그림을 Action Paining이라고도 불렀다. 50년 대에는 여자의 모습을 괒장해서 표현한 반추상화 " Woman" 시리즈를 그린 것으롷 유명하다 그는 세계적인 화가로 부상되었으며 1962년에 미국 시민이 되었다. 1965년에는 미국 대통령이 가장 뛰어난 저명한 예술가들에게 수여하는 "평화메달"을 받았고 1975년에는 '마국 예술아카데미'로 부터 금상을 수상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등장하여 세계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친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화가들은 그 대부분이 알코홀이나 우울증으로 인해 일찍이 생명을 잃었다
추상표현주의 형성에서 드 쿠닝과 쌍벽을 이루며 주축 역할을 했던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은 항상 폭음을 했다 그의 심한 음주벽과 이로 인한 여러 가지 기행은 대략 10년 전에 발표된 영화 에드 해리스가 감독을 하면서 주연까지 겸한 [폴락]에 잘 나타나있다 결국 그는 만취 상태에서 차를 몰다가 44세의 젊은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은 조울증 환자였는데 이 질환의 가장 가벼운 형태인 순환적 성격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심하게 알코홀에 탐닉한 중독자였다 그는 52세에 죽었다
아쉴 고르키(Arshile Gorky)도 순환적 성격 장애 환자였다 그에게는 말년에 비운이 연달아 발생했다 스튜디오에 불이 나서 그때까지의 모든 작품들이 소실되었고 암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자동차 사고로 목뼈가 부러졌기 때문에 손의 기능을 상실하여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부인마저 곁을 떠나자 그는 44세의 나이에 자살하고 말았다
마크 로트코(Mark Rothko)도 당시 동료 화가들이 몰리던 씨더라는 술집에서 뺄 수 없는 단골 술꾼들 중에 속했으며 우울증이 심할 때에는 약물 치료까지 받았다 그도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고 제자들이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고 비관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각가였던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역시 순환적 성격 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도 폴락과 비슷한 형태로 59세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우울병으로 시달리던 윌리엄 바지오티스(William Baziotes)는 51세에 불안 증상으로 치료를 받았던 애드 라인하트(Ad Reinhardt)는 52세에 각각 장수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만은 예외로 92세까지 장수했지만 마지막 10여 년 간 치매를 앓았다 그도 젊은 시절에 심하게 폭음했다 50년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뉴욕의 씨더 술집에서 그는 술 고래로 널리 알려졌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고꾸라지지 않고 계속 술을 마실 수 있던 그는 점차 하나의 전설적인 존재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는 대부분의 동료를 하나씩 술에 의해 잃으면서도 음주 습관을 바꾸지 않았다
70대가 되었어도 주말이면 식사를 거르면서 줄곧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었기 때문에 건강도 크게 해쳤다 알코홀 중독으로 인해 이미 1956년에 그를 떠났던 부인 일레인이 20여 년 후에 돌아와 그의 건강을 돌보아야 했다
1981년에 비로소 그는 술을 완전히 끊었으며 우울병 치료제 복용조차도 중단할 수 있었다 만성 주정중독자들은 일반적으로 볼 때 일단 술을 끊어도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우울증과 무력감 그리고 정서적 불안이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후유증에서도 벗어나 안정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무렵부터 아이로닉하개도 알츠하이머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음주가 치매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 그래도 장기간에 걸친 주정에 의한 두뇌 손상은 이 병의 시작을 촉진할 수 있고 그 경과를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악화시킬 수 있다
이 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발병하여 아주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드 쿠닝이 70년대에 이미 발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속된 음주로 인해 그 증상이 가리워 있다가 술을 끊은 다음에 비로소 전면에 나타 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99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드 쿠닝의 말기 회화 전시회(1981-1987)]을 개최한 측은 1980년대에 그의 화풍이 바뀐 데 대해 이 위대한 화가는 새로운 시도로 기도했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알츠하이머병에도 불구하고 드 쿠닝의 예술성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펼친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였으며 이 전시회를 주관했던 개리 개럴스씨는 "1980년대는 드 쿠닝의 미술에서 위대한 시기로 평가될 것이다 나는 아무도 그가 알츠하이머병을 갖았다고 알지 못했던 1984년에 그 당시 그려진 그림들을 처음 보았다 이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찬란했다 그의 말기 작품에서 색조는 그 밀도가 엷어졌고 강도가 완화되었지만 대신 더 많은 유동성과 솔직함이 드러난다 마지막 전성기에 그린 작품들에서 물감 배합은 적색 황색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오렌지 초록 보라색이 가끔씩 대조로 나타난다"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그는 1980년대 드 쿠닝 그림에서의 특징을 모네 마티스 피카쏘 같이 장수한 화가들이 노년기에 보인 변화에 비교하면서 드 쿠닝의 그림을 아주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한편 그의 말기 그림에서는 색각이 너무 단순해지고 질감이 사라진 대신 색갈의 선으로만 그림이 구성된 대 대해 비판적으로 보는 평론가도 많았다. 극단적인 비교지만 코끼리 코에 브러시를 쥐어준 다음 화폭에 그려진 그림과 어떻게 다르나는 것이다.
필자의 입장으로 보면 확실히 드 쿠인은 망년에 알츠하임머 상태가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알츠하이머 질환은 단순히 기억력 상실만이 아니라 이해력, 주의력, 관찰력, 적관력, 창조력등 모든 분야에서 파괴가 진행된다. 따라서 필자는 드 쿠잉의 그림 한장 소장하지 않았지만 독자들에게 그의 노년기 작풉은 투자나 소장 목적으로으로는 구매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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