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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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역사적인 태라소프 판결

2009.02.12 10:23

정유석 조회 수:5258

1969년 버클리 대학에서는 포다라는 인도 청년이 타티아나 태라소프란 여학생을 찔러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살해범 포다는 2급 살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상고한 결과 배심원들이 검찰로부터 사고 내용을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다시 배심원단을 구성하지 않고 포다가 인도로 돌아가는 조건으로 범인을 석방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피살된 태라소프 부모는 무어 박사 및 그와 함께 일했던 버클리 대학 보건소 요인들을 캘리포니아 대법원에 고소했다. 1974년 대법원은 원고의 편을 들어주었다. 무어 박사와 보건소 요인들이 직무를 태만히 했다는 결론이었다. 이 결정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오래 전부터 환자가 정신과 의사에게 말한 상담 내용, 변호사가 의뢰인과 나눈 대화, 또 고해성사 때 신부가 들은 고백 내용은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 것이 서구 전통의 일부였다.

피고측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무죄를 주장했다. 정신과 치료가 가능한 것은 일반인들이 치료 중 이야기한 비밀을 의사가 보장해 준다고 일반인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이다. 자기에게 불리했던 사건을 실토했을 때 변호사가 그 이야기를 남에게 말한다면 변호사업이 어찌 존재할 수 있으며 고해성사 때 자신의 범죄나 간통 같은 일을 신부가 사방에 떠들고 다닌다면 고해성사에 참여할 신도가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또 한가지 이유는 정신치료에서 환자들의 위험도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 주관적이고 예측하기 힘든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한 예로 정신과 의사들이 989명의 환자가 너무 위험해서 최고 보호장치가 설치된 주립 정신병원에 감금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미국인권연맹이 나섰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주립이 아닌 일반 병원 정신과에 입원되었다. 일년 후에 보니 이들 중 20%는 퇴원되어 사회로 복귀했으며 그 기간 동안 환자 989명에서 7명만이 위험한 행동을 보여서 최고 보호시설이 있는 주립병원으로 이감된 사실이 있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정신보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환자에게만 비밀 보장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인간에게도 안전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판결하면서 “환자-의사간의 비밀유지 관례는 타인의 생명이 위협을 당할 때 끝난다”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근본적으로 번복하는 결정은 짧은 시기에 미국 대부분 주는 물론 외국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고 정신과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태라소프 케이스’는 광범위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대다수의 주가 ‘태라소프 케이스’를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