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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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색채 시인 고티에

2009.03.01 11:17

정유석 조회 수:4990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 1811~1872)는 19세기에 활약한 프랑스 시인이다. 그는 시 말고도 연극, 소설, 평론, 언론을 통해 많은 문필활동을 했다.
그는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지역에서 태어났는데 3세에 부모를 따라 파리에 이주했다. 그의 교육은 파리에서 이름난 루이 르 그랑 학교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3개월만에 질병으로 인해 자퇴했다.

그 후 샤를마뉴 중학교로 옮겼는데 여기서 그는 후에 시인으로 출세한 네르발을 만나 일생 친구가 되었다. 네르발을 통해 그는 당시 작가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빅토르 위고를 만났다. 고티에는 원래 화가를 지망했으나 위고의 영향으로 인해 그 꿈을 버리고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위고는 전위 예술가들로 구성된 ‘Cenacle’(내부 써클이란 의미)이란 모임을 주도했다. 고티에는 네르발, 듀마, 보렐과 함께 ‘Le Petit Cenacle’을 구성했는데 이들은 전자에 비해 훨씬 전통 파괴적이었으며 보헤미안 기질이 강했다. 이 그룹은 나중에 대마초 클럽인 Club des Hashischins로 바뀌었다.

고티에는 1926년부터 시를 썼고 기자가 되어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이집트, 알제리 등 세계 각지를 다니며 여행 기사를 썼다. 스페인 남부의 말라가(이곳은 피카소 출생지다) 해안에서 착상한 ‘바닷가에서’란 시가 있다.

“달은 높은 하늘에서/ 잠시 방심한 사이/ 손에 든 금색 번쩍이는 큰 부채를/ 바다의 짙푸른 융단 위에 떨어트렸다.
은빛 고은 팔을 펴/ 주워 올리려 엎드렸어도/ 부채는 그 흰 손길을 빠져/ 파도에 따라 실려나갔다.
천 길 물 속에 내 몸을 던져/ 달이여, 부채를 돌려주리라/ 그대 하늘에서 내려 올 량이라면/나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으련만.”
이 시를 보면 “금색 번쩍이는 큰 부채”“짙푸른 융단”“은빛 고은 팔”“흰 손길”같이 시에서 시각의 이미지를 중요시했다. 또 다른 시 ‘비둘기들’을 보아도 “녹색 깃털”“흰 비둘기들”“푸른 하늘”“하얀 꿈”“아침 햇살”같이 색채를 강조했다.

그 이유는 첫째 대마초의 영향이다. 당시 예술가들은 대마초나 아편을 즐겨 사용했다. 그의 친구인 네르발은 아편에 빠져 몽환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으나 중독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해 결국 부랑자 신세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이에 비해 고티에는 대마초를 선호했다. 대마초 환자들에 의하면 피웠을 때 남들에게는 몽롱한 상태로 보이겠지만 본인들은 색에 대한 반응이 아주 예민해지고 음에 대한 반응도 날카로워 진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무대예술가들이 공연을 전후로 해서 대마초를 사용하는 듯 싶다.

둘째로 고티에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하던 소위 ‘예술지상주의자’였다. 그래서 시인이란 언어 구사와 시의 형태를 마치 금은 보석의 세공사 같이 정성껏 깎고 다듬어 완전한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인공적인 형태미를 강조하다 보니 색채를 즐겨 시적 표현에서 이용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는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다. 화가나 작가는 대상을 묘사하는 점에서 같은 작업을 한다. 그러나 화가는 시인이나 소설가에 비해 색깔과 형태에 대한 관찰이 훨씬 뛰어난다.

여담으로 젊어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고티에는 나중에 미술계에서도 영향을 끼쳤다. 1862년 그는 당시 쟁쟁했던 유진 들라크로아, 에두아르 마네, 구스타프 도레, 샤반느 같은 화가들로 구성된 ‘프랑스 국립 미술인 협회’의 회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