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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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프랑스 시인 네르발의 아편중독

2009.03.01 11:21

정유석 조회 수:5094

19세기 초반에 활약한 제라르 드 네르발(Gerard de Nerval,1808-1855)은 프랑스 낭만파 시인인데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번역가로도 활약했다.
그는 파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나폴레옹 군대의 군의관이어서 어머니는 전쟁터마다 남편을 따라 다니며 보살피다가 전투가 있었던 실레지아 지역에서 사망했다. 그 때 네르발은 불과 2세의 어린 나이어서 발로와 지방에 사는 큰아버지 집에서 쓸쓸하게 자랐다. 1814년에 나폴레옹 군대가 해산되자 아버지는 귀향했기 때문에 네르발은 파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가끔 그는 루비에르 섬으로 피신하여 그 곳에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은둔하기도 했다.
그는 괴테에 심취하여 19살에 ‘파우스트’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명성을 얻었다. 괴테 자신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베를리오즈는 훗날 이 번역 일부를 교향곡 ‘파우스트의 파멸’에서 가사로 사용했다. ‘파우스트’ 말고도 괴테의 많은 작품을 번역했으며 하이네의 시에도 손을 댔다.

고교 시절부터 후에 시인이 된 고티에와 어울려 문학수업을 받았다. 후에는 알렉상드르 듀마와도 친해져서 ‘작은 모임(Petit Cenacle)’이란 문학 동인회에 가입했다. 이 동인회는 보헤미안적인 취향이 강해서 나중에는 ‘대마초 클럽(Club des Hashischins)’으로 바뀌었다. Hashish는 대마초에 속하지만 그 약효가 훨씬 강하다. 그래서 예전에 암살자가 암살을 시도할 때 이 약을 먹여 혼동상태에 빠트린다고 해서 Assassin(암살자)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당시 예술가들 사이에 유행이었던 아편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아편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작품들은 아편중독에서 오는 환상과 환각, 착각, 그리고 금단증세의 하나인 우울증으로 점철되어 있다. ‘오래된 노래’를 예로 들 수 있다.

“그 곡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것을 버리리니/ 로시니도 모차르트도 베버까지도/ 활기 없고 한숨뿐인 이 달콤하고도 슬픈 곡은/ 내게만은 은밀한 매력을 준다.
희미하고 오래된 그 곡을 들을 때마다/ 2백년이란 잠깐 스치는 안개일 뿐/ 루이 13세 시대… 나는 본다/ 석양이 황금빛으로 푸른 언덕 위에 펼쳐지는 것을.
돌로 둘레를 쌓은 낡은 벽돌 성벽/ 많은 색깔로 물든 스테인드 글래스의 창/ 넓은 평원. 강물은 성의 발목을 적시며/ 꽃들 사이를 흘러간다.
낡은 갈대밭 속에 한 높은 창가에 서서/ 금발에다 검은 눈동자로 내려다보고 있다/ 모름지기 전생에서 내가 이미 보고 잊었지만/ 지금 내 회상 속에 되살아난 여인이리라.”

그의 시계바늘은 아편이 유도한 환각 상태에서 200년을 순식간에 뛰어넘는 것이다. 또 다른 시 ‘사랑의 찬가’에서 그는 슬픔과 허무함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 우리는/ 얼마나 찬란한 날을/ 보내고 있는가?/ 일렁이는 물결의/ 흔적처럼/ 권태는 슬픔으로 사라진다./ 미친 듯한 정열에 취하는 시간이여!/ 쾌락 뒤에는/ 사라져 버리는 / 허무한 시간이여!”

그는 1841년에 정신 착란 증세를 보여 9개월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로부터 그의 여생은 일반 마약중독자에서 흔히 보듯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집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 부랑인 신세가 되었다. 결국 1855년, 1월 파리의 한 모퉁이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그는 후에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 그리고 최근에는 유행하는 소위 판타지 문학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