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개봉된 영화 [시간들](The Hours)은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댈러웨이 부인]을 근거로 한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도 나오고 또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적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제목으로까지 등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감정이 아주 섬세했던 이 작가는 일생을 통해 심한 [조울증]에 시달렸는데 1941년 결국 그녀는 자살로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조울증 환자에서 흔히 보는 현상이지만 그녀의 가계도 [기분 장애]에 속하는 정신병들로 점철되어 있다.
어머니, 할아버지, 오빠, 언니 그리고 이 언니의 딸인 조카가 모두 [반복성 우울병]에 시달렸으며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남동생 하나는 조울증에서 가장 약한 형태라고 간주되는 [순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또 사촌 한 명은 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기록이 있는데 그는 [급성 조증]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감정의 기복이 극심한 자신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당신은 내가 커밀리언 같이 기분이 수시로 심하게 바뀌는 것을 알지요. 하루는 모든 점마다 보라색을 발하는 현란한 표범이었다가 다음 날이면 초라한 생쥐로 변한답니다."
명멸하는 순간적인 인식을 포착하여 기술하는 [의식의 흐름]이란 기법에서 받은 영향도 있겠지만 조울증으로 인해 감정의 기복이 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임시로 찰나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덧없음을 유난히도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해와 달과 별들, 풀밭에 있는 민들레, 불꽃, 유리 창문에 낀 성에여, 나도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희들은 곧 형체가 없어지고 사라지면서 내게서 떠날 것을 안다. 애정과 상실감이란 이 두 감정에 강렬히 얽매이다 보면 맥이 빠지고 낙망하게 되어 '나는 결국 너희들 곁에 갈 수 없구나'라고 느낀다.
별은 지고 아이는 갔다."
또 어떤 평론에서 그녀는 말했다.
"인생은 좌우로 정연히 열을 지은 마차 램프 행렬이 아니라 일종의 찬연한 윤광이요 의식 발생의 당초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주위를 에워싼 하나의 반 투명체다. "
우울증에 빠질 때마다 그녀는 창작에 매달려 스스로의 노력으로 여기서 탈출해 보려고 시도했다. 아버지가 별세한 후 그 충격을 적은 기록이 있다.
"그의 죽음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정지시켰다. 그러나 나는 [등대로]를 쓰면서 내 마음을 차차 정리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정신 분석가들이 환자들에게 하듯 내 자신을 치료하고 있다. 나는 아주 깊고 오래 지속되는 감정을 표면으로 끌어내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것을 나 자신에게 자세히 설명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나는 이것을 정리해 적어두는 것이다."
버지니아가 심한 조증에 들어갔을 때 남편 레너드는 다음과 같은 관찰을 기록했다. "그녀는 방안에 있는 누구에게나 주목하거나 그들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 삼일 동안 쉬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첫 날은 그녀가 하는 이야기에 아직 어느 정도 조리가 있었다. 내용의 어처구니없었어도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점차 그녀의 말은 조리를 잃었고 나중에는 관련 없는 단어들만 무수히 섞여 난무하여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반복해서 찾아 드는 조증과 울증의 괴로움을 버지니아만 아니라 남편 레너드도 무척 두려워했다. 그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버지니아의 생활 일정을 엄격하게 짜고 자신의 일과를 거기에 맞추는 등 아내를 위해 지극한 정성을 들여 간호했다.
그래도 조울증은 일정한 간격으로 재발했고 이에 따라 그녀는 몇 번씩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결국은 언제 다시 "미치게"될지 몰라 그런 생활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 레너드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글로 적었다.
"내 가장 사랑하는 이여.
나는 병이 또 재발할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고통을 다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요.
나는 이미 환청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주의력도 집중할 수 없군요.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 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내게 주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자상한 분이었지요. 이 무서운 병이 발생하기 전에는 우리만큼 행복한 부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이 병과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아요."
그리고 나서 그녀는 외투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운 다음 천천히 우즈 강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로부터 2주 후, 강 하구에서 그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