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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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환자에게 배우기

2009.06.16 14:07

정유석 조회 수:4492

필자가 미국에서 정신과 수련을 받던 시기는 1970년대 초였다. 당시 월남전은 중반을 넘어섰고 대도시에서는 반전시위가 그치지 않았다. 당시 젊은이들은 “전쟁 대신 사랑(Love, Not War)”이란 구호를 걸어놓고 마약을 마구 사용하고 자유로운 성행위가 만연했다. 마약에 빠지면 흥분, 우울증, 망상 같은 정신병 증상이 나타나기 쉽다. 따라서 병원에서 근무하다보면 수많은 마약환자들을 대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한국에서 정신과 수련을 어느 정도 받았고 공군 정신과 군의관까지 복무했지만 당시 미국 젊은이들이 즐겨 사용하던, 대마초, LSD, PCP 그리고 독버섯 같은 환각제, 코케인, 흥분제, 진정제 등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마약이라면 헤로인이나 ‘히로뽕’ 같은 약물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의사라 해도 미국 문화에서 자라지 않은 처지에 당시 미국 환자들이 남용하는 약물에 무지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각종 약물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환자의 경험, 투여 경로, 약값, 약 효과지속 시간 같은 것을 하나씩 환자들에게 물어보면서 배웠다. 몇달간 계속하다 보니 각종 마약에 대한 특성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당시 컴퓨터는 발달 초기여서 지금같이 인터넷을 통해 무한한 지식에 접근할 수 없었고 교과서를 보아도 섬세하고 구체적인 기록이 별로 없었다. 물론 동료 의사들은 실제 경험 등을 통해 대부분 체득하고 있었다. 그래도 체면이란 게 있어서 “나는 경험이 없으니 좀 알려달라”고 동료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는 없었다. 따라서 환자들은 내게 좋은 선생님이 된 셈이다.

그런데 환각제를 애용하는 환자들에서 가끔 약에 취해 있을 때에는 음악을 들으면 색깔이 보인다든가 반대로 그림을 보면 음악 소리가 난다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정신과 교과서를 다 찾아보아도 이런 기록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문헌을 조사한 결과 이런 현상을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이란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어로 syn은 공동, aisthesis는 감각이므로 이들을 합성해서 만든 단어였다. 한가지 감각 영역을 자극하면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불수의적(의도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했다.

한 백과사전에 의하면 “본래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감각인상(感覺印象)의 종류와, 그 원인이 되는 물리적 자극 (시각에서의 가시광선, 청각에서의 음파) 사이에는 1대1의 대응이 있는데, 때로는 이 원칙에 반하여 음파가 귀에 자극될 때 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색상을 느끼는 수가 있다. 이를 색청(色聽)이라고 하는데, 이때 색이 변하면 소리의 음정도 변한다. 그밖에 후각과 함께 색을 느끼거나 글씨를 보고 냄새를 느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감각 종류의 경계를 넘어선 감각현상이 공감각이다.”

약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정상인에서도 드물게 발생한다고 했다. 학자에 따라 다른데 2만5000명 중 또는 2000명 중 한명 꼴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