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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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 2

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프로이드는 1910년에 발표한‘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유년기 추억’이란 논문에서 다빈치는 동성애적 욕구가 강하게 숨어 있었으며 이런 무의식적인 갈등이 ‘창작마비’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작가가 창작을 위해 자신의 무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 후미진 곳에 마주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두려움에 빠지고 창작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에 따라서는 그 갈등이 분명하고 원인도 잘 알고 있는 수가 있다. 영국 작가 E. M. 포스터(E. M. Forster, 1879~1970)는 젊은 날 5권의 소설을 발표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지만 45세에 소설 쓰기를 포기해 독자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그는 30대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달은 후 그동안 즐겨 소재로 다루었던 이성간의 연애나 결혼생활을 작품화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 소설을 써서 발표하지도 않았다.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자로 밝혀지자 감옥에 투옥되던 시절이었으니까.

사실은 그는 1914년 ‘모리스(Maurice)’란 동성애 소설을 완성시켰으나 발표하지는 않았다. (이 소설은 작가가 죽은 후인 1987년에 영화화됐다)
그는 ‘모리스’를 지은 10년 후에 그의 대표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소설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을 발표했다. 이성간의 연애를 다루었지만 이 작품에서 섹스에 대해 거의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이 책이 그의 마지막 소설이다.(이 소설 역시 1984년에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성공했다)

그 후 46년 간 포스터는 논픽션만 다루었다. 요즈음에는 동성애를 다룬 소설들이 부지기수로 많지만 포스터는 시절을 잘못 만나 동성애 때문에 소설 창작을 포기한 작가가 되었다.

미국 작가 헨리 로스(Henry Roth, 1906-1995)의 절필은 더욱 흥미롭다. 그가 28세가 되던 1934년 그는 뉴욕에 정착한 유태인들의 이민생활을 소재로 다룬 다분히 자서전적 첫 소설 ‘잠 자기(Call It Sleep)’를 발표했다. 당시에 이 책을 별로 독자나 비평가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20년 후인 1964년에 이 소설이 염가보급판인 페이퍼백으로 재 출간되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작가는 아무런 이름도 없이 메인주의 농장에서 오리를 치고 있었다. 인세가 계속 들어와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그는 오리 농장을 팔고 뉴멕시코의 앨버커키란 도시에 모빌 홈을 사서 이주했다.

그는 거기서 73세가 된 1979년부터 4부작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중 두 번째 책인 ‘허드슨 강의 다이빙 바위(A Diving Rock on the Hudson)’가 1995년 초에 발간됐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아이러는 누가 보아도 작가 자신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이러는 15살 때 12살 된 누이인 미미와 성관계를 시작했으며 작가는 이 아이들의 섹스 장면을 소상하게 밝혔다. 아이러와 미미는 매주 일요일마다 어머니가 장을 보러 집을 비울 때마다 수년간 관계를 가졌다. 책이 나오기 전에 이 책의 편집자는 작가에게 동생 로즈에게 책 내용을 꼭 알리라고 권고했다.

로즈는 즉시 오빠에게 작가가 되라고 항상 권고했으며 ‘잠 자기’를 손수 타자까지 해 준 자신에게 어떻게 그렇게 취급할 수 있는가 라는 강력한 항의서한을 보냈다. 작가는 동생에게 당시 1만불을 보내 사죄했고 새 저서 앞 페이지에 이 소설은 자서전적 이야기가 아니라고 적었지만 이것은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더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이었음을 믿게 했다. 작가 로스는 편집자에게 자신이 어려서 경험한 근친상간이 60년이란 긴 세월동안 글을 쓰지 못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고백했다.
작가는 이 책이 출간된 1995년 가을에 사망했다.
 결론으로 작가의 창작마비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포스터의 경우는 동성애, 로스의 경우는 오누이간 근친상간이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