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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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 2

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 영국 시인 퍼시 셸리의 시 ‘서풍부’(西風賦, (Ode to the West Wind)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러나 사실 이 시는 그가 따뜻한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쓴 것이다.

보통 때조차 음울한 영국에서 일단 겨울이 시작되면 봄이 오기까지 오랜 기간을 집구석에 칩거해야 한다.
마침내 봄이 오면 나무에 싹이 돋아나고 들판은 새로 자란 풀과 꽃으로 장식된다.
겨울 내내 웅크렸던 몸을 펴고 대지로 뛰어나가 딸기며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감자 등을 캔다.
또 여러 향이 나는 약용 식물을 찾아 차로 끓여 마시면서 몸에 축적되었던 겨울철 혈액을 정화시킨다.
그래서 예전부터 영국사람들은 차를 마시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윌리엄 위더링 박사는 원래 스태퍼드란 시골에서 1년에 100 파운드를 벌던 의사였다.
그는 버밍엄이란 도시로 옮겨 그곳 종합 병원의 수석 의사로 복무하면서 1천 파운드의 연봉을 받았다.
이곳은 청교도 전쟁 때 크롬웰 군대에 1만5,000 자루의 칼을 제조 군납한 이후 중공업도시가 되어 있었다.
위더링 박사는 큰 도시로 이전하기는 했어도 틈마다 시골 들판을 뒤지며 식물을 채집하고 연구하는 취미를 계속했다.

그 당시 버밍엄에는 산소를 발견한 조셉 프리스틀리, 철도를 고안해 낸 제임스 와트, 명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 같은 과학자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루나 소사이어티’(Lunar Society)를 만들어 달이 완전히 차는 날에 만나 과학과 철학을 토론했다.
위더링 박사는 이 회의에 속한 식물학자였다.
그가 1776년 발간한 ‘대영제국에 자생하는 전 식물도감’은 주요한 업적이다.
그는 다방면에 소질이 있어서 전염병학자로 성홍열(猩紅熱)을 연구했고 지질학자로 배리엄을 발견했다.
우유 짜는 미천한 시골 처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두를 발견한 제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시골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말을 나누기로 유명했다.
또 제나와 같이 플루트를 즐긴 습관이 있었다.

1775년 그가 한 마을 언덕을 돌아다니다가 한 할머니를 만났는데 그녀는 다리에 물이 차는 부종(浮腫)을 고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바지가 터질 정도로 다리가 부어오르고 신발을 신지 못 할 정도의 부기도 부작용으로 인한 격심한 구토를 각오하고 스무 가지 약용식물에 다린 차를 마시면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식물에 대가인 위더링 박사는 이들 식물들 중에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폭스글로브’(Foxglove)란 식물임을 금새 밝혀냈다.

그는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매일 한 시간씩 무료 진료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즉시 폭스글로브를 가루로 만들어 탄 차를 이런 환자들에 주어 실험해 보았다.
부종이 있는 환자는 막대한 양의 소변을 누면서 부기가 가라앉았다.

그는 폭스글로브에서 주성분을 추출하여 ‘디지탤리스’(Digitalis)라고 불렀다.
이 약에는 심장 근육을 수축시키는 강한 효과가 있다.

위더링 박사가 디지탤리스의 효과를 발표하자 많은 반박이 있었다.
몇몇 의사들이 부종환자들에게 이 약을 투여했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부종이 병이 아니고 질병의 한 증상이란 사실을 모르던 무지에서 발생한 것이다.

몸에 물이 차는 것은 크게 나누어 신장(콩팥) 기능이 저하되어 발생하거나 심장(염통) 근육의 약화되어 펌프 작용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디지탤리스는 신장기능 저하로 인한 부종에는 효과가 없다.
그러나 심근이 약해져서 몸에 물이 찼을 때에는 심근의 수축력을 즉시 강화시켜 부기를 없애는 것이다.

디지탤리스는 필자가 의학생이었을 때만해도 혈압 약으로 제일 앞에 나와 있었다.
독성 때문에 요즈음은 이런 목적으로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위급한 상태로 ‘울혈성 심부전’(鬱血性 心不全,Congestive Heart Failure)으로 응급실로 실려오는 환자가 있으면 이 약을 주사하여 순식간에 생명을 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