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11 00:02

환경이야기 1
(1) “인간은 자연의 보호자”
환경(Environment) 이라는 단어는
인간을 중심에 둔 유무형의 주위 사방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여기에는 만물의 주인은 인간이라는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적 의미가 내재해 있다.
그래서 진정한 환경주의자들은
환경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기피하고 있으며
생명 또는 생태 중심주의적(ecocentric) 단어인 생태(ecology)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미 환경이라는 단어가 널리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대로 쓰기로 한다.
환경 문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국지적 환경 오염 문제는 있어 왔고
이를 경계하는 환경주의 운동 또한 있었다.
기원전 21세기경 중국의 우(禹) 나라는
이미 봄철 석 달 동안은 나무 자르는 것을 금하고
여름철 석 달 동안은 고기잡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썼다.
주(周)나라 문왕은 3천 년 전에 천연 동물원을 만들어
오늘날의 자연보호 지역과 같은 방법으로 동물을 보호했고,
순자는 2천 2백여 년 전에 자연 자원을 남획하는 것을
공환(公患)이라고 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송금법(松禁法)도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가 지구상에 생존하기 시작한 태초부터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는
자연관이라는 형태로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오랜 동안은 인간이 오히려 자연의 지배를 받아 왔으나
인류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자연 훼손의 위험을 알리는 선각자의 외침에서,
샤머니즘, 종교, 철학, 윤리등에서 오늘날 논란이 되고 있는
모든 환경론의 근간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지배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 혁명 이후이다.
산업기술의 발달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도시화가 촉진되었으며
사람이 많이 모임에 따라 환경 오염이 심화되었다.
산업 혁명을 일으켜
세계 문명을 좌우해 온 서구 선진국의 근본 사상은
기독교사상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화이트(Lynn White, Jr)는
1964년<사이언스(Science)> 지에
‘생태학적 위기의 역사적 기원(The Historic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오늘날 환경 문제의 근원은
기독교적인 우주관이 지배하는 서양 사상이 주도한
과학 기술때문이라고 갈파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생태적 위기의 역사적 기원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설정된 ‘인간은 자연의 관리자’라는
인간 중심주의 기독교 사상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창세기 1장 27~28절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9장 1~3절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물론 화이트 교수와 견해를 달리하는 학자도 많다.
세균학자 듀보(Rene J. Dubos)는 자연 파괴의 자행은
단지 서양 기독교권뿐만이 아니라
고대 중국 등 동양에서도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결국 기독교 사상이 자연파괴의 근원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근대 과학이 발달한 곳이 서구이므로
서구의 윤리관을 지배하여 온 종래의 기독교 윤리가
지탄받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런데 1983년 밴쿠버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WCC) 세계대회에서
창조의 보전(The Integrity of Creation)이 강조되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여기서 창조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우주를 의미하며,
창조의 보전은 창조가 인간에게 객체로 취급되지 않고
오히려 인간과 같이 있는 자연임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즉 사람(人)은 지구라는 생명의 집(地) 속에서
다른 피조물들과 같은 식구로서
모든 피조물 속에 거하는 하느님(天)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몰트만(Jurgen Moltmann)의 ‘생태학적 창조 신학’과
콥(John Cobb)의 ‘생명의 해방 신학’이 학문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
종래의 신학은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가지므로(imago dei) 자연과 구별될 뿐만 아니라
자연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하였다(天 → 人 → 地).
반면 새로운 창조 신학은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만이 아니라 ‘세계의 형상(imago mundi)’을 가지므로
세계(mundi)와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즉 인간은
세계에 대하여 하느님의 중재자에 불과하다(天 → 人 - 地).
콥이 인간은 살아 있는 존재자들(Living Beings)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생명(Life)으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인간의 책임이라고 한 것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즉 “인간은 자연의 관리자”가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보호자”이다. 흥미로운 것은
「노자(老子)」에 나오는 구절이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여기서 法은 수학의 = 기호로 읽으면 되고,
天, 地, 人이 서로 꼬리를 물고 도는 조화가 곧 자연이요,
하늘의 길임을 일찍이 지적한 것이다.
이를 형상화하면 天, 地, 人이 하나의 원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한국 원불교의 일원(一圓) 사상과 그 뜻을 같이 한다.
환경이야기
(2)인간중심사상이 문제다.
현대 서구 환경주의의 근원은
14세기 시작된 서구의 식민지 건설 결과
17세기 중반에는 자연(특히 열대지방) 파괴의 영향이 극심하여
자연보호의 필요성이 강조된 데서 기원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환경파괴가 인간의 생활 즉 경제 활동에 영향을 미쳐
경제 발전에 구속력을 행사하는 것이 확실히 인식되면서
환경이 진정한 사회 경제적 문제로 등장한 때부터를
현대 환경주의 전개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92년 6월의 리우데자네이루 UN 환경개발회의를 기점으로
10년씩 세 번을 거슬러 올라간 1962년을
환경주의의 시발점으로 평가하고 싶다.
1962년은
바로 카슨 여사가 「침묵의 봄」이라는 명저를 발간하여
경이의 농약이라던 DDT로 인한 생태계 파괴에 경종을 울린 해이다.
1972년 6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UN 인간환경회의(UN Conference on Human Environment)는
인간환경선언의 채택, 세계 환경의 날 제정,
UN 환경계획(UNEP)을 창설하였으나
그후 기대한 만큼의 발전이 없었다.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발간된 것도
1972년이다.
1982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열린 UNEP 창설 10주년 기념회의에서는
WCED(환경개발 세계위원회 : 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의
설치를 의결하고
1987년
일명 브룬트란트 보고서로 통하는
<우리의 공통된 미래(Our common Future)>를 발간하였다.
이들의 주제는 지속가능한 개발(SD : Sustainable Development)이었다.
환경주의의 전개 과정은
환경이라는 실용적 개념이 의미하는 것처럼
과거로부터의 혁명적 변화일 수가 없는 진화적 변화이기 때문에
우선 1960년대까지를 지배해 온 환경관을 정리해 본다.
카슨 여사는
「침묵의 봄」을 의사·선교사·오르가니스트인 동시에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친 철학자 슈바이처에게 봉정하였다.
이때 카슨 여사가 인용한 슈바이처의 명구가
1960년대까지 산업국가를 지배해 온 환경관의 종국을 잘 요약하고 있다.
“인간은 예견하고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지구를 파괴시킴으로써 멸망할 것이다.”
슈바이처가 지탄한 것은
1960년대까지를 지배해온 경제 사상이다.
경제학자 볼딩(Kenneth Edward Boulding)은
이를 ‘개척 경제(Frontier Economics)’라고 부른 바 있다.
이 패러다임은 자연은
인간을 위한 무한량, 무제한의 자원 공급자인 동시에
인간의 생산 및 소비의 부산물인 오염도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전제한다.
이의 배경에는
인간 지능의 산물인 기술 개발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 중심주의(technocentrism)가 깔려 있다.
자본주의나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이
다같이 이 ‘개척 경제’ 패러다임에 속한다.
우리는 냉전 종식 후
동구권의 극심한 환경 오염 실상이 밝혀지면서
그 증거를 갖게 되기도 하였다.
아직도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은
경제 발전의 초기 단계에 있어 개척 경제적 사고가 지배적이며,
국제환경협약에서 남과 북이 대립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개척 경제 패러다임을 대변하는 경제 이론에는
환경이라는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개척 경제’가 환경주의는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이의 단점을 밝혀내는 데서부터
모든 환경주의 이론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다 그렇듯이
개척 경제에 정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환경론이 있다.
이것이 바로 ‘생태 지상주의’라고 번역할 수 있는
‘Deep Ecology’이다.
1973년 노르웨이의 철학자 나에스(Arne Naess)가
개척 경제에 반대되는 여러 자연 보호 내지 자연 숭배 사상을 총칭한 단어로서
‘녹색주의’의 정치적 이상론을 대변한다고 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일반적이다.
철학 사상으로 정돈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연을 숭상하는 민속 사상에서부터 불교, 도교, 평화주의 등
각종 사상이 함께 진열된 백화점과 같다.
그러나 녹색당 등 정치세력으로 성공하고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등 지구 환경 문제의 심각성이
최근에 현실로서 입증됨에 따라
생태 지상주의는 점차 그 입지가 강해지고 있다.
또한 리우 환경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정신적 흐름의 선도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생태 지상주의’는 한마디로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의 정반대인
‘생물 중심주의(biocentrism)’이다.
이 사상은
생태학적 이상향인 에코토피아(Ecotopia)를 지상 목표로 하여
자연으로의 회귀를 희구한다.
인간과 자연의 완전 조화를 주장함은
물론 더 나아가 인간을 자연의 예속하에 두고
경제 가치 자체를 부정한다.
생물종의 평등권(biospecies equality)을 인정하는
생태 지상주의 운동은 ‘멸종 위기의 위험이 있는 생물종의
국제 교역에 관한 협약(CITES)’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생태 지상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환경주의들은 마음에 차지 않는 환경 수정주의이다.
그래서 ‘생태 지상주의(Deep Ecology)’와 비교하여
이들 개혁론을 ‘생태 이용주의(Shallow Ecology)’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현대 환경주의적 전개 과정은
‘개척 경제’라는 요새를 떠나
에코토피아를 향해 행군을 계속하는 ‘생태 이용주의’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282 | 늘 혹은/조병화/김세신제공 | 원방현 | 2016.07.03 | 72 |
| 281 | 여름이 오면 | 원방현 | 2016.06.28 | 45 |
| 280 | 웃음이 보약입니다/이강연 제공 | 원방현 | 2016.06.26 | 37 |
| 279 | 백범 김구 선생의 글/김대호 제공 | 원방현 | 2016.06.26 | 36 |
| 278 | 구름은 하늘을 가릴 수 없다 | 원방현 | 2016.06.23 | 49 |
| 277 | CNN이 본 한국/백린 제공 | 원방현 | 2016.06.20 | 99 |
| 276 | 나의 몸의 기도/김광철 제공 | 원방현 | 2016.06.16 | 50 |
| 275 |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어수영/2016.6.11. 엘림회 특강자료
| 원방현 | 2016.06.12 | 149 |
| 274 |
시조감상/김세신 제공
| 원방현 | 2016.05.04 | 64 |
| 273 |
4.19편지/장홍선
| 원방현 | 2016.04.18 | 89 |
| 272 |
환경이야기 2/박원훈
| 원방현 | 2016.04.11 | 58 |
| » |
환경이야기 1/박원훈
| 원방현 | 2016.04.11 | 206 |
| 270 |
목영호 주님께로 더 가까이 출간
| 원방현 | 2013.05.02 | 5599 |
| 269 |
제비(之)章/엘림회 특강/김세신
| 원방현 | 2016.02.13 | 170 |
| 268 |
앉은뱅이/장용섭제공/E-mail
| 원방현 | 2016.01.22 | 217 |
| 267 |
기차여행/양병석제공/E-mail
| 원방현 | 2016.01.22 | 196 |
| 266 |
숨겨진 두 여인의 공로/김광철제공/E-mail
| 원방현 | 2016.01.22 | 194 |
| 265 |
하나님의 도리깨질/윤형선 제공/E-mail
| 원방현 | 2016.01.21 | 190 |
| 264 | 노인이 쓴 글/감동실화/채영규제공/E-mail | 원방현 | 2016.01.17 | 230 |
| 263 | 노철학자 김형석의 속삭임/윤형선 | 원방현 | 2016.01.02 | 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