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18 11:54

親愛하는 貞子누님, 妹夫任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많은 편지를 받고서도, 또 궁금해 하실 줄 알면서도
답장 한번 못한 것 대단히 罪悚하게 생각합니다.
워낙 글 쓰는 데는 鈍才라 글월로는 表示 못하나마
그간 누님께서 보내주신 친절에 감사하오며,
또 늘 그곳의 누님과 매부님 생각하며
또 보내시는 편지 자세히 읽고
그곳의 걱정, 슬픔, 기쁨 등 같이 나누었다고 敢히 말씀 드립니다.
그러나 역시 편지를 오랫동안 못 드리니
첫째 양심상 괴로워서 못 견디겠습니다.
이곳 부모님과 정희, 형님, 형수 다 평상시와 같이 안녕하시고,
어머님은 역시 교회일로 늘 바쁘시며
저와 정희는 이곳 조카들과 늘 재미보고 있습니다.
저는 可及的 大学 在学中에 軍隊에 갔다 와서 공부를 계속하여
卒業과 동시에 외국유학 가려고 계획 중이며
빠르면 금년 가을 안으로 군에 입대할 것입니다.
많은 지도 편달을 바랍니다.
며칠 전의 아버님 편지로 이미 소식 들으셨겠지만
現在 서울은 警備계엄과 비상계엄下에 놓여있으며
이제, 제가 쓰려고 하는 것이 검열이 들킬지도 모릅니다만
역시 누님, 매부님과 같이 울분을 풀고
앞으로의 나라를 위하여 걱정하는 의미에서 말씀 드리려 합니다.
제게 있어서 4月 19日 以前의 것은
모두 아주 먼 옛날의 것으로 느껴지고
그 이후의 것은 현재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아주 밀접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이 4月 19日이 제게 너무나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고
이 때문에 이날이
저에게 한 획기적인 선을 이루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시다시피 이날은
아침부터 市內 各 大学生들의 Demonstration이 있었습니다.
이 데모는 한말로 해서 부정당한 억압에의 反抗이요,
旣成세대에 대한 새 세대의 不信의 表示요,
不正當에 대한 正義의 외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저는 세브란스 병원에 채혈해주러 갔다가
그곳에서 많은 銃傷환자들을 보고 와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 글에 조금 흥분된 점이 있으면 널리 容恕해 주십시오).
제 자신 용감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만약 정말 용감했더라면 지금쯤은 아마 地下에 있을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데모 活動에 참여했고
또 이 사태를 客觀的으로 直視하려고 노력한 만큼
사태의 진전을 자세히 말씀 드리고 또 저의 생각도 말씀 드리려 합니다.
4.19 義擧(역시 義擧 라는 게 옳지요)의 발단은
먼 과거로 소급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집권당인 自由黨은 야당을 너무 억압해 왔고,
또 그들의 驕慢은 날로 增加되어
永遠히 자기들이 权力을 잡고 있을 것으로 믿어 왔습니다.
그 결과 국민을 아주 輕視하게 되어
憲法에 보장돼있는 國民의 기본권리를 무시하였고
특히 民主主義의 布石인 自由, 平等의 선거를 완전히 깨트리는
3人組, 6人組 등의 선거不法이 나타났고
이는 國立警察의 협조下에 공공연하게 자행됐습니다.
그러나 正義는 絶對로 죽지 않습니다.
이 노골化된 3.15 부정선거에 대한 反抗이
처음으로 남쪽 끝에 있는 조그마한 항구 馬山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日帝 식민지 定策下에서 단련을 받은 경찰은
이를 무력으로 누르면 될 줄 알고
많은 사람 特히 학생을 죽이고 이들을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정말 무자비한 행동이지요.
그러나 마침 일이 안 되느라고
그들 중 한 고등학생의 시체가 낚시질하던 사람에 의해서 발견되었는데
이 학생의 눈에는 커다란 최루탄이 박혀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경찰은 이것이 자기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우기고,
이 시위자들은 전부 공산주의자들의 使嗾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不義를 거짓으로 숨긴 셈이지요.
그러나 民衆은 속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지난 4月 18日에 있은 고려대학생들의 데모이지요.
이들은 데모時
平和的으로 不正選擧의 무효化와 마산 고문경관의 체포를 호소했지요.
그러나 이들이 귀가하려는 무렵,
수 없는 깡패가 이들을 不時에 습격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무지하게 구타하고, 데모대원中 한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歷史的인 4.19 의거의 原因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結果的으로 不正當한 抑壓은 의거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고
이 깡패들의 폭행사건은 직접원인이 된 셈이지요.
이 깡패를 경찰이 시켰다는 事實이 보도되자
市民들 特히 젊은 학생들은 이 다음날
서로 학생이라는 同類意識과
또 不正當한 억압,
너무나 공공연한 不正,
學園에 대한 不必要한 간섭 등에 대한 反抗으로
교실을 뛰쳐나와 가방을 든 채로 시위를 始作했습니다.
이것이 절대로 不正에 대한 반항이지
결코 어떤 黨이나 人物의 使嗾를 받지 않은 것은 明白합니다.
그 이유로써 이날의 시위는
너무나 大規模였고 무질서했고 또 自己犧牲的이었습니다.
이 데모의 경과에 대해서 말씀 드리면
(제 자신의 행동을 중심으로 하겠습니다.)
저희는 12時 정각 敎授들의 말림을 뿌리치고
약 3,500名 전교생이 학교를 뛰어 나왔습니다.
신촌 구석에서 서대문 네거리까지를
여학생 까지도 뛰어서 구호를 외치며 왔는데
여기서 우리는
이기붕氏 집 앞에 蓮座하고 있는
一群의 서울大學生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이기붕氏와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완전 무장된 경찰들과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우리는 平和的 시위가 목적이었으므로
곧 길을 돌려 서울역을 통과 남대문을 거쳐
市 中心地인 세종로로 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뒤에는 빨갛게 염색한 물을 실은 불자동차와
또 무장된 경찰과 헌병을 실은 트럭이 따라오고 있었고
또 그 뒤로는 양손에 돌을 쥔 고등학생 수백 명이
여차하면 던질 기세로 따라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꾸준히 구호를 외치면서 前進했습니다.
우리가 외친 주요한 구호는
“3.15 선거는 不法이다”
“고문 경찰을 잡아라”
“大韓民國은 경찰국가가 아니다”
“이기붕이 물러가라”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헌법 第1條)”
“학문의 自由를 달라”
등등 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위의 目的을
확실히 알려드리기 위해 말씀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행진을 계속하여 경무대 앞 중앙청 부근에 왔을 때
우리는 놀라운,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목격했습니다.
즉 우리 앞에 뛰어가던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수십 명의 경관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이 두려워
섰던 자리에서 그대로 엎드려 버렸습니다.
不可能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빠른 동작이었지요.
경찰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앉은 채 平行으로 겨누고 쏘고 있었는데
이래서 그런지 데모하던 저희들보다는 뒤에 서서 박수를 치며 응원하던
시민, 중학생, 국민교생들이 많이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조금 후에 ambulance가 달려왔고
부상자, 사망자를 실어 가는데 어찌도 다친 사람이 많던지
부상자를 車 꼭대기에도 실어 날랐습니다.
이러는 중 의예과 학생과 저와 個人的으로 親했던
政外科의 흥수라는 친구가 총에 맞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 잔잔해 오던 저의 피가
(물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끓어올랐습니다.
이때 마침 어떤 美國人이 총알에 맞아 업혀 나오고
부상자를 운반하던 흰 가운 입은 의과대학생이 총에 맞아
이동침대에 실려 나오자
300여명의 저희 延大 女學生들은 흐느껴 울었고
눈물이 드물다고 생각해왔던 저 자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광경은 정말 참혹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과 가슴에 총알을 맞은 채 피를 콱콱 품으며 들려갔고
옆에서 활기 있게 외치던 고등학생이
금방 싸늘한 시체가 되어 업혀 나갔습니다.
드디어 두려워하던 피를 보고야만 것입니다.
이 순간 저는 처음으로 숭고한 그 무엇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자유와 正義를 위해서는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 생각을 죽을 때까지 간직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후로는 날아오는 총알이 별로 무섭지 않았고
또 피할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기도의 덕분인지
저는 상처하나 안 입고 건재합니다.
잠시 후 우리는 우리의 평화적 데모의 목적,
즉 우리의 요구는 다 부르짖었다고 생각하여
잠시 사격이 中止된 틈을 타서 서서히 후퇴를 시작했습니다.
아주 패잔병의 기분이더군요.
학교로 다시 가기 위하여 시 중심가를 지나는 동안
우리는 몇 가지 사건을 목도했습니다.
피를 보고 흥분한 一部 고등학생들이
한 경찰서를 돌로써 습격하여
그곳 경비순경의 머리를 깨고
유리창을 산산이 부수고 그곳을 불질러 버렸던 것입니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이와 같은 일이 市內 여러 곳에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自由黨 中央당부는 아주 쑥밭이 되어버렸고
서울신문사와 反共회관은 전소되었고,
불을 끄려고 달려든 소방서원들은
수만의 市民에게 매 맞고 도망갔습니다.
특히 反共회관은
너 따위 정신으로 무슨 反共이냐?
하는 의미로 불살랐을 것이고
서울신문사는
경향신문 폐간에 대한 보복으로 불 질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연도에 늘어서있는 數十萬 군중의 격려와 박수를 받으며
군가에 가사를 바꾸어 부르며 저녁 6時頃 다시 학교에 돌아왔습니다.
즉 12時서 저녁 6時까지 무력 6時間 동안 뛰어 돌아다닌 셈입니다.
아직도 제 머리털에는
데모 시에 묻어온 서울市內의 먼지가 듬뿍히 쌓여 있습니다.
어쩐지 前에 가졌던 그 崇高한(?) 생각을 덜어내는 것 같아 씻기가 싫군요.
한 가지 敷衍해둘 것은
데모는 大學生이 시작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위에 그쳤고
오히려 다른 고등학생 직업소년 등이 実力(?)을 발휘하였다는 것이지요.
오후 2時-6時까지 서울市內는
市 歷史最高의 無法 지대였습니다.
흥분된 학생들은 빼앗은 불자동차를 태워버렸고
버스 조수 비슷한 애들이 남의 자동차를 빼앗아
市內를 질주하고 다녔고
심지어 어떤 고등학생은 경찰에게서 빼앗은 칼빈총을 가지고
위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감격한 것은
부근의 시민들이 물을 떠다주며
심지어는 간이식사까지 제공해주며 격려하는 데는
정말 小英雄이나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녁 6時 반경 해산하여 집에 오니
부모님은 죽었던 아들이 돌아온 것같이 반겨 주셨으며
(부모님의 사랑을 절실히 느꼈지요)
오늘 5 時 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으며
통행금지는 7 時 以後 실시한다고 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밖에서는
총소리와 아울러
이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20日)은 부모님의 감시 하에
하루 종일 집안에 軟禁되어 있었으며
이 동안 저는 모든 사태,
저 자신에 관한 것까지도 觀照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비교적 너무, 소극적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겸손과 양보를 至善으로 생각하고
이를 現実에 맞지 않게 행하려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半僞善을 행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와서야
“우리는 反抗함으로써 存在한다”
고 한 까뮤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反抗하기 위한 反抗” 이 아닌 것은 明白합니다.
자기의 생각이 객관적으로 正當할 때
이를 주장하는 데는 겸손이나 양보에 앞서
이를 끝까지 외칠 權利, 疑義가 있는 것입니다.
얘기가 몹시 길어졌습니다.
이 시위의 결과가 어떻게 귀착될는지 아직 모르지만
만약 우리 친구들의 피의 대가가 정당치 않을 때
우리는 또다시 피를 흘릴 각오는 돼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신데 감사합니다.
일경이에게도 삼촌의 사랑을 보냅니다.
1960년 4월 22일
홍선 드림
(편지를 늦게 부치게 되었습니다.
요 며칠간 또 굉장한 變化가 있었는데
이는 다음 편지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2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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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리깨질/윤형선 제공/E-mail
| 원방현 | 2016.01.21 |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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