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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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의 [정신건강에세이]

기회의 창/정유석제공

2016.06.27 14:57

원방현 조회 수:49

기회의 창

 

 어머니가 우울증에 빠져 있으면 어린이의 두뇌에는 기능의 이상이 나타난다. 만일 한 살 이내 아이의 어머니가 우울증에서 회복하여 아이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으면 아이의 두뇌에서 보이던 이상 현상은 사라지고 아무런 후유증 없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나 어머니의 우울증이 아주 장기화되어 아기가 세 살이 지나면 어머니가 나중에 우울증에서 회복된다 해도 아기의 전두엽에 생긴 위축된 뇌파 활동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점을 보아 어린이의 두뇌가 정서적이 상처를 입었을 때 여기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정한 기간인 「기회의 창」 (Window of opportunity)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창이란 아무 때나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보통 유리창보다는 수 백 년 전에 지은 건축물에 나무로 된 문이 달려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일정한 시간이 되면 그것을 열었다가 닫고 하는 창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정서적인 상처로부터 회복되는 경우만이 아니라 언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지능과 신체 기능을 습득하는데 있어서 「기회의 창」이 있으며 이 기간은 각 기능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 다르다. 누구나 이 시기를 놓치면 기능과 지능의 습득이 아주 어렵거나 불가능해 진다. 


 새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지저귀는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은 학습을 받은 결과다. 이 능력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태어난 지 처음 몇 달간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때 새들은 다른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노래하는 능력을 습득한다. 이 결정적인 시기에 다른 새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새는 일생 지저귀지 못하는 벙어리 새가 되고 만다.


 예를 들어 지브러 핀치 (Zebra finch)라는 일종의 피리새는 이 기회의 창이 생후 25-30일에 열렸다가 50일 만에 닫힌다. 다만 카나리아는 예외여서 매년 제 철이 돌아오면 이 새는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이것은 아마 카나리아만은 매년 청각 신경이 새로 자라나기 때문에 새 신경이 자랄 때마다 새 노래를 배우는 것 같다. 


 인간의 시력 발달도 출생 직후인 초기가 가장 결정적인 중요한 시기다. 만일 백내장을 갖고 태어난 아기가 있으면 출생 즉시 이것을 즉시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아기는 나중에 수술을 한다고 해도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장님으로 일생을 마치게 된다.


 두뇌에서 대뇌(Cerebrum) 뒷부분에 위치해 있는 시각 중추가 정상적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외부에서 들어온 광선이 망막을 자극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시력 중추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신경 세포들 사이에 무수한 그물 같은 연결부(Synapses)가 생겨나는 것이다. 생후 3개월이 될 때 시각 중추에서 연결부가 가장 많이 형성된다. 이에 따라 아기는 그 무렵부터 색깔을 구별할 능력이 생기며 눈은 움직이는 물체를 딸아 움직이게 된다. 또 물체의 원근도 구별하기 시작한다. 


 학자들은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에 있어서도 시력의 정확도가 결정되는 
것은 대체로 생후 처음 5-6 년간인데 특히 대상을 입체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발달하는 데는 생후 처음 3년간이 「기회의 창」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정한 운동 신경이 발달하는 것도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 근육간의 균형을 유지시키며 신체의 운동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소뇌(Cerebellum)는 3개월이 되면 많이 성숙해져서 아기는 이때부터 몸을 뒤집어 보려고 시도하기 시작한다.

 
 미국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야구공을 갖고 놀면서 방망이로 공을 때리는 기술을 익힌다. 그러나 독일이나 프랑스 아이들은 주로 발로 축구공을 차면서 자란다. 야구란 눈과 손 간의 긴밀한 코오디네이션이 잘 발달해야 하고 날랜 동작과 순간적인 반사를 필요로 하는 운동이다. 이 기능은 대체로 4살에서 10살 사이에 쉽게 습득할 수 있다. 따라서 직구나 커브 볼을 때리는 기술을 습득할 기회의 기간을 갖지 못한 유럽 사람들은 다 자란 후 아무리 야구를 시도해 보아도 공 한번 제대로 때리기 힘들다. 미국이나 쿠바 사람들 같이 깨끗한 타력을 갖추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미식축구나 야구에나 익숙한 미국 사람들은 축구공을 발로 마음대로 굴리며 드리블하는 유럽 사람들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건만 그들의 공 차는 솜씨는 별로 보잘 것 없다. 요즈음에는 미국에서도 어려서부터 싸커를 하는 아이들이 많이 늘어서 미국 선수들의 기량이 상당히 향상되고 있긴 하지만.


 어려서 제기 차기를 했던 우리들은 성인이 되어서 제기를 차 보면 오래 해 보지 않았어도 옛날에 배운 기량이 금새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보고 제기 한 번 차 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흉내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기회의 창」이 열려 있을 때 제기 차기를 배웠고 그들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아노나 바이얼린같은 악기를 다루는 운동 신경은 대체로 6살에서 10살 사이에 가장 빨리 발달한다. 대체로 10살이 넘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연주 기술 습득이 늦어진다. 그러니까 열 살이 넘어 아이들에게 바이얼린이나 첼로를 시작하게 했다면 쌔러 챙(사라 장)이나 해나 챙(장 한나)같은 천재 연주가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각종 운동은 물론 언어나 악기 연주 기능의 습득 능력도 새들이 노래하는 능력과 비슷해서 그 능력은 유전 인자에 의해 우리 모두 태어날 때 두뇌 안에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배워야만 할 「기회의 창」이 열려 있을 때 외부와 계속 접촉을 유지하면서 그 기술을 적시에 습득할 때에만 타고난 소질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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