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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업 60주년 기념식시간에의 반격 ]

   

                                                                                                          김 명렬

 

2018102. 저녁 5시가 지나면서부터 우리는 롯데 호텔 2층 연회장으로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서울고등학교 10회의 졸업 60주년 기념식 열리는 날이었다. 졸업한지가 회갑이 되어는 해, 이제 나이 80 고개를 넘으며 옛 학우들이 다시 모이는 것이다.

 

우리가 젊어서는 나라의 미쁜 일꾼이 되기 위해서, “이름을 네 바다에 휘날리기위해서 우리의 재능을 역량 껏 발휘했고 뜨거운 열정을 유감없이 불태웠던 역군(役軍)이었다.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는 높은 지위에 오른 친구, 영광스런 명예를 얻은 친구, 사업을 크게 일군 친구들도 다수 나왔다.

 

그러나 그 축하연에 자랑스럽게 모인 사람들이 어찌 이들 소위 영달한 인사들 뿐이랴. 80 평생 올곧게 살아왔고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원만한 가정을 이룩해 온 가장들이들 또한 누구 못지않게 그 연회장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현직(顯職)에 올랐던 전자는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또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당하지 못한 일을 보고도 피해버렸거나 앞에 나서서 바로잡지 않고 묵인했을 수 있지만, 후자는 그런 부끄러운 일에 연루되었을 개연성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므로 인생을 살아온 전 과정을 놓고 볼 때에 실은 전자보다 오히려 더 떳떳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시비비는 차치하고, 팔순이 되도록 건강하여 아내와 함께 그런 축하의 자리에 나올 수 있다는 것만이라도 우리 모두 얼마나 복되고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인가? “아내와 함께...” 그렇다, 그 자리는 우리만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반세기 동안 우리 곁을 지켜준 아내,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준 고마운 아내이들도 당연히 이날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우리가 살아 온 어려운 세월을 서울인의 대쪽 같은 자존심과 꼬장꼬장한 원칙주의로 일관하려 한 남편의 뜻을 좇아 고단한 살림을 꾸려온 이 갸륵한 여인들이들에게 어찌 우리에게와 똑 같은 축하가 받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일까? 우리는 자랑스런 아내와 더불어 응접대 앞에서 같은 이름의 명찰을 가슴에 달았다. 그리고 동창들이 모인 로비를 향해 돌아서는 순간부터 벅찬 희열을 휩싸였다.

 

얼굴은 웃음으로 퍼질 대로 퍼졌고 목소리는 한껏 고조되었으며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들고 어깨를 두드리며 오랜만의 만남을 즐겼다. 특히 해외로 나가 산지 오래 된 친구들을 만났을 경우 서로 너무 많이 변하여서 조금 멈칫 하다가 알아보기도 했는데, 그런 때는 즐거움이 배가하였다.

 

그런데 이날 우리를 들뜨게 한 그 희열에는 단순한 만남의 기쁨 이상의 것이 있었다. 그 특별한 희열에는 60년의 긴 시간을 뛰어넘는 쾌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시간은 모든 것을 생성하지만 또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희랍 로마의 신화에서 시간의 신()인 새턴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잡아먹는 신으로 기술되어 있다.

 

새턴이 주신(主神)이었을 때는 다른 신들도 이 절대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반기를 든 신이 주피터였고 그는 결국 새턴을 몰아내고 주신의 권좌에 오른 것이다. 이것은 그가 시간을 정복하고 영생과 무상(無上)의 복락을 획득한 것을 의미한다.

 

이날 참석한 동창들은 시간의 가혹한 공격을 비교적 선방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파손하고 간 흔적은 역력하였다. 우리의 머리는 빠져 없어지거나 성겨졌고 남은 것도 백발이 되어 있었다. 피부는 처지고 주름졌으며 허리는 구부정하고 걸음은 느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날 우리는 시간에게 당하기만 하는 무력한 희생자가 아니었다. 옛 친구들을 만나 , 너 오랜만이다!” “, 너 아무개 아냐?”하며 파안대소를 했을 때 우리는 6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떠꺼머리 소년들로 되돌아가 있었다.

 

몸까지 젊어지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소년이 되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졸업 후 각자 60년간 자기 나름으로 인생을 경영하여 생긴 사회적 지위, 학식, 재산의 차이도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고 모두가 , 로 평준화되었다. 60년의 시간이 무화(無化)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의 절대 권력을 일거에 무력화한 것이다. 이즈음 와서는 우리를 마치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은 것처럼 핍박해 온 시간에 대해 이 얼마나 통쾌한 복수인가?

 

이것은 비록 불완전한 것일망정 시간의 정복이었다. 시간의 정복이 신의 영역이라면 우리도 이때 신의 영역에 가까이 이른 것이고 그래서 신의 복락을 조금 맛본 것이리라. 그 승자와 같은 의기양양함, 그 특별한 희열은 바로 여기에 그 연원이 있었던 것이다.

 

6시가 지나자 우리는 식장으로 들어가서 좌정하였다. 200개의 좌석이 꽉 들어찬 가운데 식순과 여흥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 고양된 흥분과 희열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 기분은 그 다음 이틀간 여행하는 동안에도 우리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모든 행사가 끝나고 각자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시간에게 통렬한 반격을 가할 여력이 있다는 자신감으로 남을 것이고, 그리하여 여생을 꿋꿋이 살아나갈 수 있게 해 줄 강력한 활력소가 될 것이다.

(201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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