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한국어

글모음 2

詩가 있는 방

 

             [필자는 소방 재임기간 중에 4권의 소방관 시집을 발간했다.]

                                                                   - 註: 편집자 -

1불길 따라 사는 용감한 사람들

                                   - 1990113일 도서출판 소방저널사 발행 -

 

 

   삶

 

산다는 건

거미줄처럼

큰 것에 망가지고

작은 것에 걸려들어

사는 거다

 

산다는 건

그저

작은 벌레만 먹고 사는 거다

 

온종일 그것마저

걸리지 않을 때도 있다

어느 땐

세찬바람이 불어와

줄이 끊어질 때도 있다

 

산다는 건

그저

거미마냥

작은 것만 걸려들기를

기다려야 하는 거다.

 

 

   아버지와 아들

 

꽃가루가 날린다

눈물이 난다

아지 못할 길목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만난다

 

이건

살기위한 싸움이 아니다

로마병사처럼 한발 한발 꺾어서

역사를 잡을 뿐이다

 

내일을 열지 못하는 눈빛으로

가슴에서 솟는 피눈물로

방패를 씻으며

한발 한발 나아간다

 

최루가스 그득한 길목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만난다

 

살아 꿈틀거리는 젊은 영혼이

사슴의 목을 느리고

울음을 터트리는데

눈물은 겨우 방패에 부딛어

핏빛으로 번지고

사과탄은 아버지의 가슴팍에서 터진다

 

나 때문이 아니오

당신 때문도 아니오

그저

빈 수레바퀴 굴러가는 달구지의 소리인가 보오.

 

 

    동창회

 

먼 옛날이 그리워

그때에 가 있다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동창회에 나가면

가시 돋친 몽둥이가

내 맘 속에 들어와

춤을 춘다

 

낙오자

낙오자라고 노래를 한다

 

억센 바위 위에서

돌 던지며 바람 잡던

그때에 가 있다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동창회에 나가면

회오리바람을 타고

먼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바람아,

회오리바람아

다시 돌아가게 해다오

나를 그때로 돌아가게 해다오.

 

 

    醉時歌-고려시인 김극기

 

낚으려면 바다 속의 자라를 낚아내고

쏘려면 해 속의 까마귀를 쏴내야지

자라가 거동하면 어룡이 배겨 못나고

까마귀 나타나면 초목이 말라 시드니

대장부 놀라운 절개를 세울바에는

병아리 송사리 잡아 뭣하노

 

귀한 자손으로 태어났으니

자라서 웅장한 포부를 펴

돌달치 구멍 난 하늘 때우고

산 뚫어 바른 길 동한다더니...

 

 

2불사조” - 19911020일 도서출판 외길 발행

                   (국가기록원에 영구보존)

 

머리글                    

                        *아래 글은 불사조의 머리글임.

                         조병화 선생님께서 친히 써주신 글입니다.

 

    생활의 기쁨

 

    서울특별시 소방본부에서 홍보일을 맡아 일을 하고 있는

김종대님은 즐겁던 나의 서울고등학교 시절의 제자입니다.

   그 김종대님이 오래간만에 시의 보따리를 가지고 혜화동

나의 작업실을 찾아왔습니다.

  전국에 있는 소방서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의 시를 모아

가지고 한권의 시집을 묶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 참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들을 박봉에 시달리면서 일하고

있는 소방관들의 시들을 모아 시집을 낸다니, 참으로 가상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글을 쓰는 겁니다. 시는 실로 생활의 기쁨이며,

생활의 용기이며, 생활의 꿈이며 생활의 위안입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의 위안과 꿈과

보람과 기쁨으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곳은 참으로 살기 어렵고 슬픔과 어려움이 기쁨

이나 즐거움보다 더 많은 쓸쓸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그 쓸쓸하고 외로운 것을 이겨내는 힘을 나는 일과 시에서

얻어내고 있습니다. 그 일과 시에서 얻어내는 힘을 가지고

인생을 열심히 나는 살고 있습니다.

  김종대님이 가지고 온 시집의 원고들을 읽어보니 놀랍게도

잘된 시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들은 실로 생활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고들 있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다소 표현기교가 서툴더라도

그곳에 진실한 시심이 있으면 되는 겁니다. 성실한 마음,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성실한 생활,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계속 나가면 언젠가는 좋은 시들이 쏟아져

나오리라고 믿습니다. 꾸준하시길, 생활의 기쁨으로...

 

                                                     1991 년 가을

 

                                                  경기도 안성 片雲齊에서 조 병 화

 

 

 

    아버지와 아들2

 

최루가스 그득한

5월의 길목

아버지와 아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민주는 무엇이고

백성은 어디 있냐고

전쟁놀이를 한다

 

북악은 파아랗고

인왕은 멀쩡한데

충무공 긴 칼을

한으로 갈고 있고나

 

아들아

우리 손잡고

아리랑 부르며

광화문에서 만나자

 

우리

손에 손잡고

통일로에서 만나자.

 

 

    저녁풍경

 

넌 본 일이 있니?

육지가 그리워 바다에 깃털을 떨구는 갈매기의 슬픔을

차라리 어둠 건너편 저만치 숨어 있을 시간을 보면 어떨까?

 

지금은 해 기울어 바다 끝에서 발갛게 물들어 가는데

길에서 놀던 아이 울음이 조금씩 작아지면

멀리서 흘러오는 저녁향기 그리워 비틀대며 소주잔을 기우리는

포장마차 속의 풍경들

 

그런 건 또 아무려면 어떨까?

내게 필요한 건 먼발치서 아물거리는 옛사랑인데

예전엔 그런 걸 낭만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의 파편을 거슬러 올라 생각하기조차 싫은 건

또 무슨 사연이길래

 

넌 들은 적이 있니?

저녁노을에서부터 흐르는 세레나데를...

 

 

    밤풍경

 

길을 베어 먹던 개미떼들이

터널 속으로

안식을 찾고 나면

어둠이 까만 아스팔트를

삼켜버린다

 

거리는 피로에 지쳐

네온에 휘말리는데

나신을 겨우 가린

여인의 짙은 분내음이

밤비 되어 내리고

덩달아 동그란 바람이

창문마다 짝지어 걸리면

술 취한 영혼은 허공 속에 춤을 춘다

 

별은 밤새워 노오랗게 물들고

초승달은 저만치서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밤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모

 

네가 내 곁에 없음을 확인한 뒤에

나는 바다로 가 철판 위에 떠 있었다

 

몸을 수평선에 던져도 잠기지 않는 마음이야

차라리 하늘을 나르고 싶은 타조마냥

쫓기듯 바다를 달려 나갔다

 

산들은 미친 듯이 날뛰었고

너의 긴 머리칼이 동그란 유리 속에서

해파리처럼 아물거리고

어느새 내가 뿜는 뽀얀 연기 속에서

바다는 이글거리는 유월의 태양을 머금으며 잠이 들었다

 

비틀거리며 갑판에 올라 너의 모양을 보려고

밤하늘을 바라보니 초승달에 네가 걸터앉아 있었다

 

소리 질러도 조금도 움직일 줄 모르는 마음이야

영원히 못 잊은 체 홀로 바다위에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나는 너를 그리는 사모의 긴 고통 참기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리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설레는 가슴으로 부딛기며 속삭이던 말

난 네가 좋다. 난 네가 좋아

그 말들이

빠알간 노을에 드리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너의 얼굴을 찾기에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덧없이 흐른 세월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도

돌아선 너의 그림자를 찾기에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샜는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던 말

난 네가 좋다. 난 네가 좋아

그 말들이

지난 세월만큼이나 멀어진 후에도

너의 부드러운 머리칼 속에 묻어 바람이 불때마다

너만큼이나 커진 내 아이의 얼굴 속에 새겨져

바다는 아직도 너의 그림자를 그리고 있다.

 

이제,

모든 순간이 꿈이 되어 기다림도 없고

너의 그림자마저 흩어져 바람에 지나쳐 간다면

목마름에 기대어 세월이 가겠는데

그리움에 밀려 세월이 가겠는데...

 

 

3불길은 잡을 수 있어도 사랑은 잡을 수 없네

        -19921217일 민예사 발행

 

 

    시간여행

 

기차바퀴는 내 심장에 달려

차창 밖으로 열리는 밤의 기운을 품고 있다

행여 내 맥박이 낯선 하늘 아래 멈춰 선다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에

두려움만 별빛만큼 다가오는데

동행한 친구는 피로에 취해 졸고 있다

 

시간은 나와 함께 조그만 언덕 위에 멈출 듯 뛰어 간다

때로 마주쳐오는 지친 기적에도 깜짝 놀래어

덜컹이는 객수가 유리창에 부딪는다

 

나지막히 흔들리는 나의 노래는

아늑히 뻗은 철길 뒤로 멀어져간다

돌아앉아 큰 숨을 내쉬면 기억이 저만치 밀려가고

소리죽여 계속되는 시간여행은

남으로 남으로만 향하는 마음에

어느새 입추를 건넜다

 

멀리서 부는 바다내음에 종점이 보이는 듯하다

이제 기차가 멈추면 같이하던 내 호흡이 그칠 것 같아

간절한 기도에 영혼을 맡기는데

아아, 동행한 친구가 잠에서 깼다.

  

   

     아내의 자리

 

당신을 믿듯

하늘을 믿었더라면, 벌써

천국을 날았을 거야

 

하늘만큼

당신을 믿었기에, 당신 따라

늙어만 갔지

 

당신의 지위가 낮아 받은 설음

못 벌어 빈 그릇에 담고, 먼 훗날

그보다 높은 자리

아이들의 자리를 위하여

쓰린 가슴 곱게 여미며

흘린 눈물들...

 

당신을 믿듯

하늘을 믿었더라면, 영영

눈물 아니 흘리었을 텐데...

 

아내여

나의 아내여!

하늘을 보오, 저기

당신의 자리를 보오.

 

 

    개봉동 시절

 

개봉동 길모퉁이

제재소 옆을 지나면

언제나 송진 냄새가 난다

아침 출근길이면

그 송진 냄새는

애기릉을 지나

고향마을로 간다

 

솔잎 씹고

송화가루 날리던

어릴 적 산길로

소꿉친구 만나러 간다

 

개봉동 길모퉁이

제재소가 있어

마음속으로

고향을 오가며

그 길로만 다녔는데...

 

어느 날 불에 탄 제재소는

새까만 추억만을 남기고

하얀 칠을 한 여인네가

분내움 속으로 몰아갔다.

 

 

4사랑의 불길” 

       -19941021일 누리원 발행

 

    상심의 바다

 

바다에는

파아란 내움이 있습니다

상하지 않아 살아

펄떡이는 고기떼의

비린 내움이 있습니다.

 

조개껍질과 모래성

다리가 잘린 말미잘

그리고 추억을 부르는

바다 내움이 있습니다

 

갈매기의 울음소리

만선의 뱃고동소리

하얀 파도는

붉은 태양을 쓸어안고

누우런 황금을 토해내고는

붉은 수평선에 잠들고

잃어버린 전설을 그리는 인어는

이끼 낀 바윗돌에 앉아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나를 부릅니다

 

바다에는 지금도

이별의 여인이 부르는

슬픈 사랑의 노래가 있습니다.

 

 

    비행기 속에서

 

눈을 뜨고

당신을 그립니다

작은 기창을 통해

새털구름에 맺히는

당신을 그립니다

 

해맑은 얼굴

초록의 마음

 

눈을 감고

당신을 그립니다

눈치를 보며

설음에 찌들린 삼십년

 

주름진 얼굴

희끗한 머리칼

 

눈을 꼭 감고

당신을 그립니다

저어 푸른 하늘에서

울고 계신

마리아님 같은

당신을 그립니다.

 

  

    눈물

 

슬픈 연속극만 보아도

눈물이 납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진실이 흐르는

눈빛만 보아도

눈물이 납니다

우리

슬프게 살아온

우리가 자랑스러워

눈물이 납니다

 

슬픈 연속극만 보아도

눈물이 납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예절바른

교동마님이지

 

아니야

 

철부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장님일 꺼야

그도 아니면

떠난 님 그리는

성춘향일 꺼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나 땜에 울고계신

마리아님이지.

 

 

그리고 고희 기념 사랑의 지붕70”

-20084. 21일 민예사 발행

 

 

     불의 꽃

                -김종대 님 퇴직날에-

                -시문학 동인 허 연 씨가 보내준 축시임.-

 

님이사 불 위로 물 쏟을 제

아낙은 고이 쌀 씻어

불 위로 물 따라 밥지었나니

다툼 없는 소방인의 삶 엮으셨네

실과 바늘이듯

다스림 없이 서로 따르는 생활이니

그리도 곱게 사시네

보는 이마다 웃음 짓는

수제비 같은 여인(성춘향)곁을 지키는

하 많은 시간

즐거운 날들

아침 햇살 한 입 물고

해로(偕老)하는 노을처럼

물되어 낮게 흐르다

불되어 솟구치다

시보다 더 진한 불의 꽃 피우시겠네.

 

 

    추한세상

 

더럽다

모두들 더러운

돈을 먹고 산다

 

대통령도

대학교수도

판검사도

공무원까지도

시꺼먼

돈을 먹고들 산다

 

송충이 갈잎 먹으면

탈이 난다는데

나 같으면

그 껍데기

명예만 먹어도

평생을 살겠는데...

 

대통령이 되고

대학교수 판검사

그도 아니면 공무원 되라고 일렀는데

어이할꼬 아이들 부끄러워

어이할꼬?

 

 

     사랑하는 당신은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당신은

노란 양귀비꽃이었습니다, 하얀

상처의 눈물로 아품을 달래주는, 당신은

아름다운 양귀비꽃이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사랑을 나눌 때, 당신은

붉은 장미꽃이었습니다, 이따금씩

내 가슴을 따끔따끔 찔렀던, 당신은

가시 돋친 장미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생기거 우리 행복할 때, 당신은

향기 짙은 백합꽃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는, 당신은

순백한 백합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떠난 지금, 당신은

달님 같은 해바라기가 되었습니다

하늘을 보아도 부끄럼이 없는, 당신은

해님 같은 해바라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세월이 가 황혼이 오면, 당신은

예쁜 달맞이꽃 피워, 밤이 새도록

우리들의 길을 환하게 비치시겠지요?

 

 

    소방관

 

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을 떨어야 했다

 

30여년의 긴 세월을

사이렌이 울적마다

불길 속에 타들어가는

슬픔을 헤집으며

시꺼먼 아스팔트 위를

숨가쁘게 달려야 했다

 

허리띠를 조여

지어올린 2층집

부풀었던 꿈과 희망을

순식간에 태워버린, 슬픈

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눈물을 뿌리며, 모두

잿더미 속에 묻어야 했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향해 내밀었던

구조의 손길과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지샌 숱한 밤들과 사이렌 소리를

가슴에 담으며 붉으레 동트는

새벽을 기다려야 했다

 

그 누가 우리를 안다고 하지 않아도

실 같은 가느다란 소방호스를 부여잡고

우리의 새로운 내일을 위하여

아침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그렇게 긴 세월이 간 지금도

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는

가슴 떨리는 까닭은 알 수가 없다.

 

 

    길

 

덕수궁 돌담길

정동으로 가는 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십자가 따라 가는 길

 

사랑의 종소리

참회의 기도소리

70 고갯길

오늘도 내가, 그 길을

아내와 같이 걸어가고 있다.

 

                          살다보니 어느덧 80 줄에 접어들었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