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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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현 論檀

나의 歸去來辭 / 노오현 글

admin 2010.06.23 21:46 조회 수 : 12203

                            

                                              나의 歸去來辭

                                                                                                                                               

                                                                                               盧 五 鉉

 

 

    2005년 2월 말 서울대에서 정년을 하고 서울서 지내다가 내가 태어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을 잊지 못해 오래 동안 방치되어 폐허가 된 살던 집을 허물고 작은 집을 짓고 2009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 고향은 ‘경북 예천군 호명면 한어리’이다. 호(虎)명(鳴)은 '범'호자와 '울'명자로서 범이 운다는 뜻이고 한어리의 '한(閒)어(漁)'는 한가하게 고기를 낚는다는 뜻일 진데 이름과는 달리 범이 살만한 험준한 산도 없고 가까이에 고기를 잡을 만한 강도 없는데 어떤 이유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알아보려고 한다. 단지 우리 집 북쪽으로는 예천읍을 굽어 흐르는 '내성천'과 남쪽으로는 '하회마을'을 감싸고 돌아 흐르는 '낙동강'이 있기는 한데 각각 우리 집에서 삼십리와 이십리나 떨어져있다. 내 고향은 철저히 내륙 농촌마을이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내 이야기는 2010년 3월부터 이 글을 마치게 되는 6월까지의 내 시골 고향 생활이다. 나의 하루 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매일 거의 정확히 아침 5시에 이웃집 촌로가 농사짓기 위하여 들로 나가는 경운기 소리에 잠을 깨면 밤새도록 애달프게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가 나를 잠자리에서 일으켜 새운다. 아침이 되면 뻐꾸기가 소쩍새 소리를 이어 받아 애잔하게 울어댄다. 울어대는 놈은 다 수놈이라 하니 사랑이 그리워 짝을 간절히 찾는 소리이리라 짐작한다. 5월 달부터 모내기가 시작되면서 논에 물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 개구리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이들 또한 소쩍새에 지지 않을세라 밤새도록 울어 댄다. 처음에는 아름답게 들리더니 잠 못자게 밤새도록 목이 쉬도록 시끄럽게 울어대는 데는 짜증이 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에 님을 찾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생각에 애달프기까지 하다.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나면 나는 50여평으로 된 마당 관리로 들어간다. 마당중앙에 잔디를 심었고 잔디밭 주위에는 각종 꽃나무와 과수나무를 심어 놓았다. 백일홍, 장미, 라일락, 목단, 작약, 살구나무, 매실나무, 불루베리 그리고 대추나무를 작년 11월과 금년 3월에 심었었다. 열심히 물을 주면서 줄기와 뿌리에 새싹이 돋아 나오고 있는지 열심히 관찰한다. 나무마다 뿌리마다 새싹이 돋아 나오는 시기가 다르다. 어떤 것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빨리 새싹이 나오는데 어떤 것은 지금까지도 줄기 그대로 있어 새싹이 돋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나를 무척이나 애타게 한다. 나무를 심고 새싹을 기다리는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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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과 5월이면 이곳 농촌은 모내기로 바쁘다. 옛날(내가 어릴 적)의 소와 사람이 어우러져 하는 농사는 간대 없고 기계로 하고 있으니 옛날 같은 정겨운 농촌 풍경이 아니다. 강냉이, 고추, 토마도와 가지등 어린 모종들을 사서 심었는데 물을 열심히 준 탓인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잘못하여 다 죽여 버렸다. 이야기는 이렇다. 옆집에서 쓰다 남은 분무기에 나는 당연히 비료가 녹아 있는 성장촉진제로 알고 이웃 사람이 들에 나간 사이 가져다가 뿌렸다. 그것은 비료가 아니고 제초제(除草劑)액이었으니 순식간에 각종 꽃나무와 농작물이 다 말라 죽었다. 나의 무지를 한탄하면서 하루 종일 죄책감에 울었다. 오늘 밤은 잠이 안 올 것 같다.

 

    일 년 농사는 씨 뿌리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한번 망치면 그해 농사는 끝이다.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한다. 나무도 아무 때나 심을 수 없다. 늦은 가을이나 봄에 심어야 뿌리가 땅속에서 삶의 길을 찾는다. 우리 나이가 얼마인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나. 우리에게 일 년이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들인데 내 잘못으로 일 년을 더 기다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없다. 내 고향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마을은 약 40여호 되는 조그마한 마을인데 60대 중반이 3-4명 있고 나머지는 70-8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은 젊은 시절에 가사와 농사일로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대부분 허리가 구부러지고 관절이 좋지 않아 걷기를 힘들어 하신다. 그래서 어린 아이용 카트를 사서 지팡이 대신 의지하고 살아간다. 할아버지들도 허리가 아프다고 야단들이다. 그래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신다. 씨 뿌리고 가꾸면서 가을에 수확할 즐거움의 기다림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식들에게 직접 손수 가꾼 쌀과 각종 채소를 보내주고 싶은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하루 종일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지만 몹시 피곤해도 아파도 시지 못하고 아무리 날씨가 불순해도 일을 해야만 하는 농촌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그지없다. 나는 오늘 못하면 내일하고 그저 가꾸는 즐거움에 그리고 가을에 수확의 기쁨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또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고향 주위에는 몇 군데 가 볼만한 곳들이 있다. 우리 집에서 반경 약 15km이내에 있다. 명승 제16호의 ‘회룡포’(내성천이 육지 속 마을을 350도 휘감아 돌아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원형에 가깝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전통주막으로 유명한 경상 북도 민속 자료 제134호의 ‘삼강주막’( 三江은 예천읍을 통과하는 내성천, 점촌읍 옆을 따라 지나가는 금천 그리고 하회마을을 원형으로 싸고돌아 흐르는 낙동강이 만나는 곳) 에는 만이천원으로 고향의 고유한 맛의 토속막걸리, 칼국수, 파전과 도토리묵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토지를 소유하고 세금 내는 육백년을 묵묵히 살아온 천년기념물294인 소나무 '석송영'이 있다. 그리고 중요민속자료122호인 유서 깊은 민속촌 ‘화회마을’이 있다. 언제든지 동문들이 찾아오면 만사 제쳐놓고 안내하겠소이다.

 

    그러므로 별 특색 없는 내 고향은 명승지로 둘러싸인 중심에 위치하였으니 그런 연유로 유명하다고나 할까? 내년에는 올해의 실패를 거울삼아 내 고향생활을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가꾸어 보려고 한다. 농촌 생활의 여유를 맛보고 싶은 동기들께서는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 

   

 

 내 연락처는 다음과 같다:

                주소: 경북 예천군 호명면 한어리 207-1

                이매일 주소: aero@snu.ac.kr

                Cellphone: 010-2374-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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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편집실 (사진자료) --

 

     2009.10.17   낙향한 노오현동기의 예천 집 앞마당에서 홍시 감을 수확하는 자원봉사 작업에

                                   동원되었던 매화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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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범상         김대호        현용문         노오현

 

                 동영상 보기    ( 홍시 감을 수확하고나서,  삼강주막에서 농주를 즐기는 매화회 회원들 )

 

               -- 편집실 註 --

  

 글쓴이  노오현 교수의 소개

 

           서울대학공과대학 졸업

           뉴욕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박사

           서울대학공과대학 항공우주공학과교수 역임

           한국항공우주공학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민국 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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