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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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 2

♥ 李白과 그의 詩(靜夜思) ♥


   (五言節句)

 

李白(701 ~ 762)은 字를 太白, 號를 靑蓮居士라 하며,

蜀 지방이 고향임.

 

그의 선조는 중국의 隴西 成紀 사람이

罪를 지어 西域으로 유배되었으나

약 10년 후(705년 경) 그의 아버지가 蜀으로 돌아와 살았기 때문에

그를 蜀 사람이라 함.

 

그의 어머니도 漢人 또는 胡人 양설이 있어

이백도 漢胡 혼혈이란 견해가 있음.


어려서부터 부유한 부친 덕에 이백은 호탕한 자질에

검술 · 무예에까지 능했고,

제자백가의 詩書를 독파하여 詩 · 賦에도 능했다 함.


이백은 타고난 방랑벽으로 일찌기 洞庭, 湘水 등지와 金陵(남경), 楊州 등을 거쳐

吳 · 越을 돌아 安陵에 머무름. 거기에서 일찌기 재상을 지낸 許圉(어)師의 손녀와 결혼,

정착하기에 이름. 


그는 정치 현실에의 참여라는 이상을 구현하고자 몹시 갈망하였으나

뜻대로 안 되어 노상 실망만 하게 됨.


山東에서 孔巢父 등 5명의 隱士들과 俎萊山에 은퇴, 술과 詩歌로 나날을 보냈으며

이에 竹溪六逸의 한 사람으로 불리게도 됨. 뜻을 이루지 못 한채

낭만적인 10여 년 간 遊歷을 거듭한 이백은 마침내 浙江으로 남하 道士 吳筠을 만났고

그와 함께 염중에서 仙述을 닦고 있던 중 오균이 唐 玄宗의 부름을 받게 되자

이백도 그의 천거로 현종에게 발탁,

翰林學士로 임명됨.

 

그의 나이 42세로 탁월한 자질, 해박한 학식, 고매한 이상과 대범한 성품 등을 두루 갗춘 그였지만,

그 당시 황실의 간악한 절대권력자인 高力士와 부딛쳤고,

그 결과 그는 長安에서 퇴출당함.

 

이로써 이백의 고매한 이상과 불타는 정열의 현실참여는 끝맺게 됨.


이백이 長安을 떠나 洛陽에 온 이후 그에게는 失望만이 남아 있을 무렵

승천하던 唐 帝國도 기우러지기 시작함. 

 

궁중에선 부패와 타락이 만연했고,

임금 주위엔 간계와 음흉한 간신들이 발호했으며,

이를 겪은 그는 이리하여 약 3년 간의 궁중생활에서 실망과 분노만 느끼게 됨.


그 후 그는 放飮酣歌만 일삼게 되었으며,

마침내 자기보다 11세 아래인 杜甫를 만나게 됨.

 

이들의 만남으로

중국 문학사상 불후의 두 시인이 不朽의 友情을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됨. 


이백이 詩仙이라면 두보를 詩聖으로 불리는 이유가

이들이 중국문학의 최고봉이며 달과 해의 관계처럼

로맨티시즘과 리얼리즘의 빛을 마주대고 찬란하게 빛냈기 때문이라 함.

 

이들의 交遊期間은 약 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으나

그래도 역사에 빛날 友情의 塔을 쌓았음은

이들 두 시인의 偉大한 일면을 증명해 줌.

 

그러는 동안 부패와 타락을 거듭하던 唐 나라는

드디어 安祿山의 亂으로 파탄이 노출되었고,

무고한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음.

 

이러한 과정에서 이백은 분통해 했고,

'安社稷', '濟蒼生'하던 평소의 정치참여 의식이 되살아나,

또 다시 永王 때 기회가 생겨 參謀로 기용됨.

 

그러나 영왕이 반역으로 몰리자 이백도 몰락의 대열에 서게 됨.

그러나 死刑까지 받은 처지에서

요행히 減刑을 받고 夜郞(貴州省 桐梓縣)으로 유배됨.

 

때는 그의 나이 58세.

이미 황혼기에 접어든 그는 절망과 곤궁에 시달린 때였음. 


그러나 그의 詩人으로서의 기질은 더욱 세차고 날카롭게 빼어났고,

야랑 유배에서 巫峽까지 갔다가 大赦되어 潯陽으로 돌아온 그는

李光弼의 수하에서 역적 史朝義 討伐에 참여했다가 병으로 좌절을 맛 봄.


그는 높고 찬란한 빛을 발했으나 그만큼 좌절도 컸으리라.

이미 60이 넘은 그는 피곤했고,

그 즈음 세상도 혼란을 거듭한 상황이었음. 


그의 사상은 종교, 철학, 예술 등 각 방면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그 중에서도 호탕 방일하고 탈속 초연한 기풍이 넘치는 면에서

역시 道家的인 기질이 풍부했다고 하겠음.

 

그러나 한편 현실 정치에 관심이 컸고 낭만주의자였던 그는

역겨운 현실의 귀족통치자들이나 추잡한 관료배들을 매도하기 위하여

유학자 및 儒學의 道를 공박한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격분한 끝에 나온 怨聲일 뿐

결코 근본적으로는 修己治人, 經世濟民의 유교정신을

부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할 것임.

 

그리하여 그의 작품을 통해 보면

정의감, 박애정신, 악에 대한 저항정신,

자유 존중, 자연귀일의 道家思想에 심취했고

또한 정열적이고 행동적인 성격도 충분히 나태내고 있다고 하겠음. 


한 평생 쉴 새 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방랑한 이백은

조국 중국의 山川과 自然의 美를 힘차고 거창한 筆致로 묘사했고

만인에게 감동을 주었다 함.

 

이백의 詩 속에는

술 · 사랑 · 즐거움 및 신선사상이 풍부하게 나타나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할 것임.

 

♡ 靜夜思(고요한 밤에 생각한다) ♡

 

牀前看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침상 머리의 달빛 보니
혹 땅에 내린 서리인가 싶네.
머리 들어 산마루 달을 보자 
문듯 고향 생각에 스스로 머리 떨구네.

 

술에 취해 쓸어져 잠들었다가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나니
침상 머리 달빛이 휘엉청 훤하게 비췬다.


혹시나 서리가 내린 것 아닌가 짐짓 의아해서 놀라며,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산 위에 뜬 달을 처다보다가,
문듯 나도 모르게 고향 생각에 고개가 수그러든다.

 

참으로 감상적이고 또한 섬세한

센티멘털한 생각에 푹 젖은 느낌의 詩作品이다.


술 좋아하는 이백에게 한 층 더 있음직한 정경이리라.

즉, 간 밤에 술에 얼근히 취해 정신없이 쓰러져 자다가

새벽녘 으스스 한기를 느껴 잠과 술기운이 동시에 깨어나 보니

침상 머리 달빛이 너무나도 훤하게 비치고 동시에

객지에서 느끼는 나그네의 외로움 같은 것을 느끼며

혹시 벌써 서리가 내린 것은 아닌지 의아했으리라.


차차 정신이 들어

밝은 달빛이 산정을 훤히 비치고 있는 달에 눈을 두자

고향생각에 절로 머리가 숙여 진다.

(霽山 김세신 편, 2017.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