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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번역’은 ‘반역’ 

 

잘못된 ‘번역’은 ‘반역’이란 말이 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몇 개 추려본다.

 

미국의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유진 오닐에게는 ‘Over the Horizon'이란 작품이 있다. 이것이 전쟁 후에 ’수평선 넘어‘와 ’지평선 넘어‘란 제목으로 한국에 소개된 적이 있다. Horizon은 지평선도 되고 수평선도 된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저 둘 중 하나려니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영어로 읽다 보니 해답이 나왔다.

 

필자는 오래 전에 자동차로 미국 횡단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를 지나 로키 산맥에 들어서면 산세가 웅장하고 경관이 수려하다. 그러나 일단 덴버 시를 벗어나면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에 도달할 때까지 며칠씩이나 옥수수 밭을 지나야하는 대평원을 가로 질러야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평선. 만일 작가가 중서부 지역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면 매일같이 지평선에서 해가 떠서 지평선으로 지는 모습을 수 없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뉴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했다. 선조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에 도착한 후 미 동북부 지역 사람들은 농사일에 실패하거나 인생살이에 좌절이 있을 때 대서양을 바라보며 포경선이나 상선을 타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꿈을 꾸었다. 이 작품에서도 한 여자를 두고 형제가 다투다가 한 명이 여자를 포기하고 아버지로부터 받을 유산인 농장도 마다하고 바다로 나간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수평선’임은 자명하다.

 

또 다른 미국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살리나스 출신 존 스타인벡은 ‘진주’란 소설을 썼다. 한 가난한 어부가 큰 진주가 담긴 조개를 발견하고는 이를 팔면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으며 아이를 학교에도 보낼 수 있다는 희망에서 진주를 팔기 위해 라 파즈란 이웃 도시로 간다. 그 도중에 진주 때문에 어부를 질투하는 사람, 이를 싼 값으로 살려는 상인, 강제로 뺏으려는 군인 등에 시달리다가 결국 진주는 복 덩어리가 아니라 화의 근원임을 깨닫고는 진주를 바다에 던져 버리고는 맨 손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애처롭고 슬프면서도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이 아름다운 소설이다.

 

그런데 작품 해설에서 역자는 라 파즈(La Paz)는 볼리비아의 수도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수도가 라 파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볼리비아는 남미에 위치한 사방이 육지로 둘려 쌓인 내륙국가다. 이런 안데스 산맥 고산지대에서 진주조개를 발견한 다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 같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진주조개를 잡으려면 바다가 있어야 한다.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 잡이’에서도 사방이 바다로 쌓인 섬나라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을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면 항구인 라 파즈가 따로 있을 것이다.

 

필자는 중남미 지도 해안선을 따라 조사해 보니까 그런 이름의 항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하 반도와 멕시코 사이에는 캘리포니아 만이란 상당히 긴 내해가 있는데 라 파즈는 이 만을 접해 위치한 유서 깊은 도시다.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는 너무 길어서 멕시코 정부는 이 반도를 북부와 남부 바하 주로 둘로 나누었는데 라 파즈는 남 바하 캘리포니아 주의 주청 소재지였다. 항구도시 라 파즈의 발견은 지도를 통해서만이 아니었다.

미국 작가면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살리나스 출신 존 스타인벡은 ‘Cannery Row'란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통조림 공장 지대’란 뜻이다. 어떤 해였든가 몬트레이 만에는 정어리 수확에 크게 풍년을 이루어 차고 넘치는 이 생선 떼들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들을 보관하기 위해 많은 통조림 공장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지금은 많이 철거되었지만 아직도 몬트레이에 관광을 가면 안내자는 이곳이 정어리 통조림 공장들이 있던 장소라고 알려준다. 소설에서는 이 시에 실험실을 가지고 있는 한 해양학자가 등장한다. 그는 실제 인물을 소재로 했다. 작가 스타인벡은 이 학자와 가깝게 지냈다. 어떤 해에 작가는 이 학자가 실습을 위한 여행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바하 반도를 따라 태평양 연안을 내려갔으며 반도 남단을 돌아 캘리포니아 만에 들어갔다. 이 여정은 북극 고래 떼들이 가을이면 남하하는 길과 일치한다. 그들은 매년 남단을 돌아 캘리포니아 만에 들어가 새끼를 낳고 겨울을 보낸다. 태평양과 캘리포니아만 사이에 염분 농도에 약간 차이가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했다. 이들은 봄이 되면 새끼들을 데리고 내려온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 북극으로 돌아간다. 고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관광거리가 된다.

 

필자가 서구 문학이나 예술을 접한 것은 20세기 후반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번역을 통해 이들을 한국에 소개했다. 대부분 좋은 자양분이 되었지만 그 중에는 ‘반역’이라고 할 만한 ‘번역’도 있었다. 이제는 이런 오류들도 많이 교정되었으리라고 믿는다. 위에 소개한 것은 그들 중 아직도 기억나는 몇 개의 예일 뿐이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