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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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음 2

김세신 시조

승소와 객담/김세신

2015.04.12 09:17

원방현 조회 수:488

♡ 僧笑와 客談 ♡

 

오늘은 옛 선인으로서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드높여 준

통쾌한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 한다.

 

고려의 이 색(李 穡, 1328 ㅡ 1396)이

중국(당시는 元나라 시절)에 들어가

과거에 壯元及第하니

그 영예가 온 중국에 떨쳤다.

 

그 무렵

이 색이 어느 절(寺刹)에 갔다.

 

스님이 禮를 표하고,

듣자하니 선생께서는 東方의 文士로서

우리 중국의 과거를 보아 제일이시라 하더이다.

 

이제 뵙게 되니

어찌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조금 후 한 信徒가 떡을 가지고 왔다.

스님이 떡을 권하며, 한 句節을 읊어 가로되,

승소(僧笑)가 적게(조금) 오니

스님의 웃음도 적네(僧笑小來 僧笑小)

하며,

이 색에게 對句를 지어보라고 했다.

 

僧笑는 떡(餠)의 별칭이라 했다.

위의 글은

떡이 적어 스님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읊은 것이나,

 

승소가 중국에서의 떡의 別稱인데다

창졸간에, 더구나 고려 사람이

승소를 알지 못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이 색은

댓구를 짓지 못 하고 물러나며,

다른 날에 아땅히 다시 찾아와 갚겠다고 했다.

 

그 후에도 이 색은

천릿길을 멀다 않고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어느 客舍에서 주인이 술을 들고 들어왔다.

 

이를 보고 이게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客談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客談은 술의 別稱이라 했다.

 

이에 이 색이

전날 그 스님의 僧笑句에 對를 놓고,

객담이 많이 오니 나그네 말도 많네

(客談多至 客談多)

라고 속으로 읊었다.

 

그 후 약 반세기가 지나

이 색이 중국에 가서 스님을 찾아가

댓구 이야기를 꺼냈다.

 

스님은 이에 크게 기뻐하며,

얻으신 댓구가 실로 妙하니,

나이 늙은 것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며,

 

한 마디 묘한 구절을 얻으시고

불원천리 이렇게 오셨으니

실로 기이하고 기이한 일입니다 하였다

(於于野談 卷之三, 文藝條; 於于野談은 柳夢寅

<조선조 선조 때 文臣, 호는 於于堂>

의 호를 딴 文集임).

 

중국말 僧笑가

떡의 별칭이라는 것을 몰랐다 해서

고려의 선비에게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 乖愎(괴퍅)한 별칭을 아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댓구를 못 지은 것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그럼에도 선비는

다시 훗날 마땅히 갚겠다 하고 떠나서,

정말로 다시 와서 갚았다.

 

천리 길을 머다 않고 왔다.

스님의 말대로 참 기이한 일이다.

傲氣가 없는 선비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문을 하던 예술을 하던 무엇을 하든,

적어도 무언가를 成就하려면

좋은 의미에서 위와 같은 오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이 색의 이름이 오늘날에 전해진 것이

어찌 偶然이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