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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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독서 삼매경 /김영덕

ydkim 2018.08.01 21:05 조회 수 : 67

수필 

                                 독서 삼매경

 

                                          

                                                                           김 영 덕

 

 

 

물독 위에 떨어진 나뭇잎, 귀뚜라미 우는 소리, 그리고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불어...’ 가을은 깊어만 간다. 가을은 과연 우수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심지어는 보약의 계절, 식욕증진을 위한 설렁탕과 추어탕의 계절, 고향방문단과 결실의 계절 등등이 아닐 수없다.

 

삼라만상이 변화되고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간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는 조용히 소리를 죽이고 만물을 영글게 한다. 가을은 이러한 결실, 수확과 더불어 사람의 마음을 소슬하게 하는 속성을 지닌 것 같다.

 

1930년대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의 저자 T. 울프(Thomas Wolfe)는 인생은 야만스럽고 잔인하며, 고상하고 정열적이며, 고통스럽고 즐겁고 또 그 이상이나, 인생을 진실하고 아름답게 미화시키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가을은 우리에게 사색의 기회와 환경을 만들어주며 독서욕을 일으켜 세워 준다. 평소 독서에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무감각한 나마저도 독서 삼매경이 되어 몰아의 경지에 빠지게 되었다.

 

최근 때를 같이 하여 평소 존경하던 선배 한 분이 마침 한학과 한시에 몰입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뵈었다. 이태백의 시 한편을 소개하며 이 시에 대한 해석과 설명을 자세히 들려주셨다. 집에 돌아와 몇 시간에 걸쳐 외우고 음미하여 보았더니 갑자기 유식해진 것 같고 당나라 시에 대해서는 해박을 넘어 황홀감에 빠져들어갔다. 독서를 통한 아름다운 마음과 쾌락을 독서 삼매경에 몰입치 않아 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런지...

 

이제 이름 있고 좋다는 책들은 과거에 이미 읽었던, 처음이던, 거의 읽게 되었고 이 순간에도 내 곁에는 몇 권의 책들이 대기하고 있다. 문을 숭상하던 우리 옛 선조들의 뜻을 다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故 존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은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기 위하여 속독법을 배웠다고 한다. 인도의 지도자 故 마하트마 간디도 영국을 상대로 비폭력 무저항 단식투쟁을 벌이는 동안 많은 책을 독파하였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도 아침에는 묵상을, 오후에는 독서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또 故 김대중 대통령도 옥중생활동안 많은 독서로 나중 크게 성장한 인물이 되었다. 이웃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문무를 겸비하고 독서를 즐기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천하를 통일하여 명치유신을 통한 근대 일본을 이룩하였다. 우리의 역사 또한 책을 즐기며 개혁에 부응한 실학파 사상의 갑오경쟁을 분기점으로 근대 한국이 문을 열게 되었음은 모두가 주지하는 바이다.

 

독서의 부재, 교육의 부재는 문화의 부재로 연결된다. 문화 부재의 사회는 구심점 없는 사회가 되어 그 사회의 파멸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가 증오하는 공산사회도 이러한 논리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국의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고 불노장생초를 찾다가 저승행이었다. 로마의 영웅 시저는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심복 부루터스의 칼자루를 피하지는 못했다. 수많은 유태인들을 학살하고 세계를 전쟁과 공포로 내몰았던 독일의 히틀러도 종래는 제 수명을 지킬 수 없었다.

 

미국인들이 피상적으로는 파티를 즐기는 퇴폐적인 국민 같은 느낌을 풍기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잠시라도 무엇이든 읽지 않고는 못 견디는 국민임을 알게 된다. 일본 대소도시의 서점이나 도서관을 가 본 사람이면 그들의 독서열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가을 귀뚜라미 소리를 벗삼아 호롱불을 켜놓고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이러한 조상들의 아름다운 마음과 슬기가 후손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음을 가슴 뿌듯하게 느껴본다. 가을이 다 가기 전, 다시 한 번 독서삼매경이 되어 몰아의 경지에 빠져볼까 한다.